강해, 제24과
막벨라 동굴
김태정 목사창세기 23:1-20약 40분 분량
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20절)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의 매장지로 쓰기 위해서 그곳 주민 ‘에브론’으로부터 ‘헤브론’의 ‘막벨라’ 동굴을 은 사백 세겔이라는 값을 치르고 사야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땅은 유대인들이 ‘가나안’에서 최초로 획득한 땅입니다. 그는 상당 기간 ‘헤브론’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내를 위한 조그만 한 치의 땅을 사는 데에도 값을 치러야 함은 물론이고, 그 지역 주민들의 동의와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 거래와 관련해서 의례적인 인사와 위선, 가식적인 정중함과 완고함, 그리고 끈질긴 흥정을 훌륭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왜 이런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것일까? 당시 땅을 사고파는 일이 단순히 땅의 주인이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의 변화까지 수반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임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현실적인 측면에서 ‘아브라함’은 이미 그 지역 사회에서 유력자로서 무시하지 못할 인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사회적이고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 스스로도 그 점을 인정하고 있음을 봅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일찍이 ‘아브라함’을 이곳으로 불러내실 때부터, 이 땅이 그와 그의 후손의 것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 이 약속에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까? 그 땅을 그냥 준다는 뜻이 아니었습니까? 그냥 얻는 것은 고사하고 아주 힘들게, 그것도 값을 치르고 사야했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과 관련해서 화자가 본문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는 무엇입니까?
더 나아가서 우리 역시 오늘을 살아가는 ‘아브라함’이라고 볼 때, 우리가 받은 약속은 무엇이며,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오늘 내가 사야 할 ‘막벨라’ 동굴은 과연 무엇입니까?
문학과 역사
단락과 구조. <창세기> 23장은 ‘사라’의 죽음과 매장에 관한 짧은 언급으로 시작과 끝을 맺고 있습니다(1-2절, 19절). 그리고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아브라함’이 아내의 매장지를 구입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3-18절, 20절). 이 세 개의 단락을 중심으로 전체 내용의 단락을 세분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라’: 나이와 죽음(1-2절상)
2. ‘아브라함’: 애도(2절)
3. ‘막벨라’ 동굴: 협상과 거래(3-15절)
1) ‘아브라함’의 첫 번째 제안: 매장지 사용(3-4절)
‘헷’ 족속의 승락(5-6절)
2) ‘아브라함’의 두 번째 제안: ‘에브론’의 동굴을 요구함(7-9절)
‘에브론’의 동의(10-11절)
3) ‘아브라함’의 세 번째 제안: 지불 의사를 밝힘(12-13절)
‘에브론’의 가격 제시(14-15절)
4) ‘아브라함’의 가격 지불과 땅의 매입(16-18절)
4. ‘사라’: 매장(19절)
5. 요약(20절)
전체 이야기의 분량에서 볼 때, 화자의 주된 관심사가 ‘사라’의 죽음과 매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데 있음을 금방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아브라함’이 아내의 매장지로 사용할 땅을 구입하기 위하여 그곳 주민들과 벌이는 길고도 끈질긴 협상과 거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거래가 진행되고 성사되는 과정을 보면, ‘아브라함’이 먼저 조건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서 주민들이 승낙하고 받아들이는 식입니다. 이런 과정이 세 번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다시 한 번 히브리 이야기의 전형을 보게 됩니다.
협상의 전 과정과 내용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공적이고 합법적인 것이었고, 이 거래에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어떤 언급도 없습니다. 다만 대화 내용 중에 주민들이 ‘아브라함’을 향하여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부르는 것 외에는(6절), 어디에도 하나님에 관한 언급은 없습니다. 폴 존슨(P. Johnson)은 이 거래에 대해서 “의례적인 인사와 위선, 가식적인 정중함, 완고함과 끈질김으로 가득 찬 흥정”이라고 규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Johnson, P. 「유대인의 역사 1」. 김한성 옮김, 서울: 살림, 2005.
근동 사회 특유의 시대상을 반영해주는 지극히 세속적인 상거래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이라는 뜻이겠지요.
자료와 편집. 본문의 자료적 성격은 어떠합니까? 일반적으로 <사제 전승>으로 규정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문체나 내용에 있어 다른 <사제 전승>과 많은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예로써, 이야기의 시작부터 ‘사라’의 나이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1절), <사제 전승> 특유의 연대기에 관한 관심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따라서 전체 이야기를 <사제 전승>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대개 다른 본문에서는 연대기에 관한 언급은 이어지는 내용과는 분리해서 서론적 언급으로 처리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일부 단어들이 <사제 전승> 특유의 문학적 상수에 속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백”(חאמ, 메아); “헷”(תה, 헤트); “방백”(אישׂנ, 나시); “소유하다”(הזחא, 아하츠). 그러나 서로 다른 본문에서 같은 단어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동일 저자, 즉 동일 전승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다른 전승이라 할지라도 다루는 주제가 비슷하다면 동일한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본문의 스타일만으로 볼 때, 1절의 나이에 대한 언급만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야훼 전승>에 더 가깝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특히 주로 이야기 체로 이루어진 땅 거래 내용이나 분위기 등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국 이 두 상반된 주장을 수용할 수 있는 길은 두 자료의 혼재를 인정하는 것일 것입니다. 예로써, 사제 기자가 그에게 친숙한 보다 오래 된 <야훼 자료>를 거의 수정함이 없이 그대로 자신의 기록 속에 포함시켰다고 보자는 것이지요.
본문은 과연 언제 형성된 것일까요? 이에 관해서도 상반 된 견해가 상존하고 있습니다. 두 견해 모두 본문에 나타나는 일련의 관습들과 고고학적인 비교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것이라 어느 한 쪽을 지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17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헷’ 족속 ‘에브론’의 요구, 즉 ‘막벨라’의 동굴뿐만 아니라 그 동굴이 있는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도 함께 팔고 싶다는 언급 등은 ‘헷’ 족속의 매매 법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본문을 과도하게 해석한 것으로서, 오히려 본문의 대화 내용은 ‘신 바벨론’ 시대의 매매 법을 반영하고 있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또 다른 학자는 본문 내용만으로 이런 결론을 내리기에는 불충분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즉 본문에 등장하고 있는 거래 내용은 어느 특정 시대의 관습을 반영하기보다는 오랜 세월을 걸쳐 통용되어 온 관습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대체적으로 합의를 이루고 있는 부분은, 본문이 바벨론 포로 전후에 형성된 <사제 자료>의 형성 시기보다는 훨씬 오래 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본문에 소개하고 있는 땅 거래와 관련하여, 거래 당사자로 ‘아브라함’과 ‘헷’ 족속및 ‘에브론’의 세 당사자를 거명하는 것이라든지, 또 ‘끼워 넣기 식’의 매매 등은 주전 이천 년 당시의 ‘유가릿’ 문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과 많은 유사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Westbrook).
그렇지만 고대 근동지방의 관습이나 법에 대해서 제한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본문의 형성 시기와 관련해서 독단적인 결론을 내리기에는 무리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본문을 전적으로 <사제 전승>으로 규정짓는다든지 또는 후대의 자료로 단정지울 만한 근거는 희박하다는 사실입니다.
신학과 신앙
1. 사라의 죽음(1-2절상)
자료 설(문서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아브라함 이야기>의 마지막 세 장, 즉 22-24장을 각기 다른 전승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1) <엘로힘 자료>(22장); (2) <사제 자료>(23장); (3) <야훼 자료>(24장). 따라서 이들 각 장은 각 전승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주장의 진위 여부는 별개로 치더라도,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로서 각 장들의 상관관계는 모호해 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야기의 선적인 흐름에서 볼 때, 22장과 23장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있을까요? 두 장은 모두 죽음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합니다. ‘이삭’이 죽음 직전까지 갔던 이야기와(22장)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사라’의 실질적인 죽음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삭’ 이야기에서 ‘사라’는 전혀 무대에 등장하지도 않았고, 이번에는 ‘이삭’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 화자가 각각의 이야기에서 가족의 핵심 구성원 한 사람씩을 제외시키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경우 모두 ‘아브라함’ 만이 무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주도해 가도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브엘세바’에서 ‘모리아’를 향해서 떠났고, 이번에는 다시 ‘브엘세바’에서 ‘헤브론’을 향해 가야합니다. 이번의 여행은 죽은 아내의 매장지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이삭’이 태어난 이후 ‘사라’의 행적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해 오던 화자는 그녀의 죽음에 관한 언급을 마지막으로 ‘사라’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사라’의 마지막 37년(90세-127세 사이) 동안에 관한 행적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삭’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뿐입니다. 이 기간 동안 ‘아브라함’의 행적에 대해서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데, 그의 마지막 38년(137세-175세) 동안에 그의 행적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들을 위해 며느리를 구해 준 이야기와, 자신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사라가 일백 이십 칠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1절)
‘사라’의 향년 127세에 대해서 실질적인 숫자라기보다는 오랜 세월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숫자일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예로써, 120은 두 번의 60과 또 다른 완전 수 7의 합이 된다는 것이지요. <다니엘>은 ‘페르샤’ 제국 내의 고을의 수가 120라고 소개하고 있고(단 6:1), <에스더>에서는 이에 7을 더하여 127개 성읍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1:1; 8:9; 9:30). 제국의 규모와 위엄을 드려내려는 화자의 수사로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내에서도 사람의 수명이 120이 되리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6:3), ‘사라’는 이에 7년을 더 산 것이니까, 충분히 장수를 누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이삭’은 그의 어머니가 죽은 지 3년 후에 ‘리브가’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사라’의 죽음과 관련하여 보다 중요한 사실은, <족장 이야기>에서 각 족장의 죽음과 관련하여 나이를 언급하기는 하지만(‘아브라함’-25:7; ‘이삭’-35:28; ‘야곱’-47:28), 여자의 나이를 밝히고 있는 것은 ‘사라’가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없으며(그녀의 매장에 관한 기사가 49:31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야곱’의 아내 ‘라헬’에 대해서도 아주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갑니다(35:19). 그만큼 ‘사라’는 ‘아브라함’에 버금가는 여 족장으로서 손색이 없는 인물임을 강조하려는 것 같습니다.
‘사라’의 죽음과 관련해서 화자는 22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시점을 ‘현재화’하는 일에도 관심을 쏟고 있는 듯합니다. ‘사라’가 죽음을 맞이한 곳, ‘기럇아르바’를 화자는 당대의 이름인 ‘헤브론’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습니다: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2절상)
‘기럇아르바’는 ‘네 성읍’을 의미하며, ‘아르바’의 이름을 따라 그렇게 불렀습니다(수 15:54).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로서(수 15:13), 이스라엘이 두려워했던 ‘가나안’ 원주민의 조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신 2:10-11, 21; 9:2). 이 땅과 관련하여 <성경>에서 소개하고 있는 다른 역사적 사실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갈렙’에게 이 땅을 기업으로 주었고(수 14:14), ‘아르바’의 아들인 ‘아낙’의 소생들이 이곳에 거하였으며(수 15:14), ‘갈렙’이 이들을 쫓아내기도 했습니다(수 15:14). 후에 ‘유다’ 지파에서 ‘레위’ 자손 ‘그핫’ 가족에게 이 땅을 주었으며(수 21:11), 도피성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수 20:7). ‘유다’가 이곳에 거한 ‘가나안’ 사람을 쳐서 정복한 바 있습니다. <여호수아>에 의하면(수 15:13-14) ‘헤브론’의 정복은 ‘갈렙’의 업적인데, ‘갈렙’은 ‘유다’ 지파에 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자손의 일부가 이곳에 정착하기도 합니다(느 11:25).
네 성읍을 네 부족의 연맹 내지 연합으로 이해한다면, ‘헤브론’ 역시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헤브론’을 <마리 문서>에서 등장하고 있는 ‘히브룸’과 연결시켜보면, 화자 당대에 ‘헤브론’을 ‘기럇아르바’의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히브룸’을 “부족 내의 소규모 지파 연맹” 정도로 정의내릴 수 있는데, 이런 가까운 연합은 유목 생활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은 또한 여러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기도 한데, 그 이유는 시대에 따라 전쟁이나 노획 등을 통해서 이 지역을 차지했던 자들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헤브론’ 역시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중요한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이 그곳에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단합시키고 그곳에서 칠년 반 동안 통치하였으며(삼하 5장), 이 지역에서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 대항하여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이곳은 아마도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였던 것 같습니다(해발 3,040피트). ‘다윗’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신정-왕국을 건설하였는데(삼하 2:4, 삼하 5:3), 나중에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에도 예배의 중심지로 남아 있기도 했습니다(삼하 15:7, 삼하 15:8). 당시 ‘실로’의 성막은 파괴되었으며 ‘솔로몬’의 성전은 아직 세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여 예배드리던 다른 공식적인 장소가 있었는데 하나가 ‘헤브론’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브온’이었으며, 그리고 또 다른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G. V. Groningen)
2. 아브라함의 애도(2절하)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2절하)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여 ‘아브라함’이 보이고 있는 행동을 그리면서 화자는 세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들어가다”; “슬퍼하다”(사파드); “애통해 하다”(바카). 첫 번째 행동은 아마도 ‘아브라함’이 아내의 시신이 안치된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애도 기간이 끝나고 다시 나왔다는 표현을 3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 두 동사는 분명 서로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데, 특히 첫 번째 동사, “슬퍼하다”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애도하는 이상의 다양한 방식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맨발로 걷는 것, 옷을 벗는 것, 수염이나 신체를 베는 것, 금식하는 것(혹은 대접하는 것), 재를 뿌리거나 혹은 몸의 어떤 부분을 치는 것 등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아브라함’은 아내의 죽음을 단순히 슬퍼한 것이 아니라, 당시 전통적인 장례 관습을 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3. 막벨라의 거래(3-15)
애도 기간이 끝나고 아내를 묻는 일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매장지를 구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아브라함’이 지역 주민 ‘헷’ 족속과 벌이고 있는 거래 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추적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사라’의 죽음으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그 문제는 이제 화자는 물론 ‘아브라함’이나 다른 등장인물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듯합니다. 오직 매장지를 놓고 벌어지는 상거래가 핵심 주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거래는 세 단계에 걸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매번 ‘아브라함’이 거래 조건을 먼저 제시하고, ‘헷’ 족속은 이를 수락하는 형식입니다. 그는 우선 아내를 그 지역 어딘가에 묻을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봅니다. 다음으로, 매장지로서 ‘막벨라’ 동굴을 매입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물어봅니다. 마지막으로, 동굴 소유자 ‘에브론’에게 가격을 정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점진적인 이야기 진행 방식은 ‘히브리’ 식 이야기 서술의 한 전형임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이 단락의 두드러진 문체는 의례적인 인사와 위선, 가식적인 정중함, 완고함, 그리고 끈질긴 흥정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예로써, ‘아브라함’이 땅 거래의 조건들을 제시하기 위하여 ‘헷’ 족속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장면이라든지(3, 7, 12절), ‘헷’ 족속은 이런 그를 “하나님의 방백”으로 부르면서(6절),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 주여 들으소서”하면서(6, 11, 13절) 마치 ‘아브라함’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저 줄 수 있다는 식의 겸양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등이 그렇습니다. 이런 태도는 동양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허례허식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 한 점은 이 거래가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공적 거래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10, 11, 13, 16, 18절). 이 점은 실로 중요한 것이, 이 땅은 이후 ‘아브라함’의 소유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주도한 거래의 첫 단계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3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 4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3, 4절)
당시 ‘헤브론’ 지역은 ‘헷’ 족속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들은 ‘가나안’의 후손입니다만(10:15), ‘헤브론’과 같은 ‘가나안’의 남쪽 지역에 이르기까지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과연 이 족속이 소아시아 지역에서 주전 2천 년 경까지 큰 제국을 이루고 있었던 ‘헷’ 제국과 연관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기도 합니다만,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참고도서 2, 4.
‘아브라함’은 이곳에 상당히 오래 살았을 터인데도 스스로를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회적이고 법적인 신분을 드러내는 이 두 단어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Wenham). 오히려 이곳에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법적인 권리 주장을 할 수도 없고, 언제 추방당할지도 모르는 주변적인 존재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먼저 그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땅과 후손에 관한 언약과 공증까지 받은 그가 이런 딱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전에 ‘아비멜렉’을 만났을 때도 이렇게 자신을 비하해서 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듣는 이의 동정심을 유발시키기에는 충분한 듯합니다. 자기소개에 이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 지를 공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위한 매장지를 소유하고 싶다는 청원입니다. 태도는 공손했으며, 아마도 아내를 잃은 비통한 모습까지 내비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요청은 쉽게 거절할 수 없는 법입니다. 대중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5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6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5-6절)
‘아브라함’이 기대했던바 그대로입니다. 아주 진지하고도 동정어린 태도로 자신들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 주여, 들으소서.” 그리고 계속해서, ‘아브라함’이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방백”(나시 엘로힘, !yhila> aycin])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을 그들 중에서 아주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스스로를 나그네이자, 그들에 빌붙어서 일개 이민자로 살아가는 주변인으로 규정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입장의 차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태도를 단순히 의례적인 수사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네가 복의 근원이 되겠고”
이런 막강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에게 그들이 쓰는 매장지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태도입니다. 이런 입장을 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승낙해주고 있습니다. 화자의 수사가 돋보이고 있는데, 형식적으로 시적 동의 반복으로, ‘아브라함’의 요청이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오고 있는 듯합니다(긍정문으로 한 번, 부정문으로 한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주민들의 이런 태도를 미루어 볼 때, ‘아브라함’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편에서 볼 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는 단순히 이 사람들의 매장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라, 매장지 자체를 요청한 것입니다. 이들 주민들의 답변을 곰씹어보면, 비록 아주 공손하고 관대하긴 하지만, 매장지를 양도해 주겠다는 암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나그네로 살아가는 이주민이 땅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썩 마음이 내키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반응은 일단은 긍정적이었습니다. 이에 힘을 얻어 ‘아브라함’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그동안 흥정을 위한 대화는 않은 자리에서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이는 상당히 의도적인 행동으로서, 무엇인가 중요한 제안을 할 것 같은 암시입니다(그가 ‘소돔’을 위해 간구할 때에도 하나님 앞에서 일어선 적이 있습니다, 18:22). 과연 그렇습니다. 그것은 두 번째 요청을 내놓기 위한 제스추어였습니다:
7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7-9절)
“그 땅 거민”들이 그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은 정도의 공손함과 정중함으로 그가 원하는 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땅 거민”들은 아마도 족속 전체를 대표하는 장로회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로부터 땅의 사용에 대해서 원칙적인 승인은 받아놓았으니, ‘에브론’이 소유하고 있는 ‘막벨라’ 매장지로 대화를 옮겨가고 있습니다. ‘막벨라’(또는 막펠라)는 동굴이 있던 지역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만(17절), 이 단어가 ‘겹치다’ 또는 ‘포개다’는 의미의 ‘카팔’(לפכ)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이층 동굴’로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에서 이 단어는 6회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지역은 ‘헤브론’에 있는 큰 회교 사원 ‘하람 엘-칼릴’이 소재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그 땅을 사고 싶다고 말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아브라함’의 노련미가 돋보이고 있습니다. 이들 주민은 처음부터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땅의 사용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으나, 그 땅을 파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해왔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선 그는 ‘막벨라’ 매장지가 밭머리에 있다고 언급함으로써(9절상), ‘에브론’이 양도해야 할 땅은 지극히 미미할 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쯤이야”하고 경계심을 늦추는 효과를 주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뿐 아니라, 땅의 크기에 상관없이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상대가 내심 원하는 바를 먼저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이런 제안을 누가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땅 주인 ‘에브론’은 동료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공손하고 따뜻한 태도로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나섭니다:
10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11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10-11절)
세 번에 걸쳐서 그 땅을 주겠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동양 사회 특유의 과장과 허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 땅 가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한편으로 보면 이 사람 역시 그 땅을 팔 생각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상으로 사용하는 것은 좋은데 영원히 소유권을 넘기고 싶지는 않은 것일까요? 파는 것이 아니라 무상으로 제공해 주는 것이라면, 두 사람의 관계는 일종의 채무자와 채권자가 되는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에브론’의 제안은 그냥 주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팔겠다는 것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하고 있는 사실은, ‘에브론’의 제의가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이루어진 공적인 선언이라는 점입니다: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10절하). 성문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란 달리 말하자면, 법적 절차를 수행할 일단의 장로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브론’ 역시 그의 제안이 공적인 구속력을 갖고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11절상).
이에 ‘아브라함’은 다시 한 번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어 대응하고 있습니다:
12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13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12-13절)
그러나 거래는 어디까지나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법. ‘아브라함’은 이점을 분명하게 하면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제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에브론’이 제시하는 가격을 주고 원하는 땅을 사겠다는 것입니다. ‘에브론’이 그 땅을 주겠다고 한 의도가 무엇인지 상관없이 그 땅을 사겠으니 가격을 제시하라고 하면서 ‘에브론’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침내 ‘에브론’이 마지못해 가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4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15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14-15)
그러면서 그가 땅 값으로 사백 ‘세겔’이나 제시한 사실이 아주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듯, 가격을 별 것 아니라는 듯이 평가 절하하고 있습니다. 뭐 이런 식이겠지요: “우리 사이에 거래가 무슨 말입니까? 이런 것 가지고 사고팔고 할 정도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사용하세요.” 이런 식의 거래는 오늘날에도 이 지역에서 남아있다고 합니다. 예로써, 이런 것입니다. 사려는 자가 실제보다 낮은 가격을 먼저 제시하면, 파려는 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보세요. 우리 사이에 무슨 흥정은... 그냥 가지세요. 선물로 드릴 테니 아무 부담 갖지 마세요.”
그러나 동양 사회의 관습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16절)
과연 은 400 ‘세겔’이 땅 값으로 충분했는지 아니면 과도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아브라함’은 아무 흥정이나 군말 없이 다 지불합니다. 아마도 이 액수는 ‘아브라함’ 편에서 보면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Hamilton). ‘다윗’은 ‘아라우나’로부터 성전 터 매입을 위해서 불과 50 ‘세겔’의 은을 지불하였을 뿐입니다(삼하 24:24). ‘예레미야’는 그의 조카 ‘아나돗’으로부터 밭을 사는데 17 ‘세겔’의 은을 지불하였습니다. ‘오므리’는 ‘사마리아’의 넓은 언덕 지역을 사기 위하여 ‘아브라함’이 지불한 가격의 15배에 해당하는 은 2 ‘달란트’(6000 ‘세겔’)를 지불하였습니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 그 동굴은 가격이 문제가 안 될 만큼 중요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공증을 얻어내고 있습니다: “헷 족속의 듣는데서 말한 대로...”
이렇게 해서 장황하게 끌어오던 대화는 끝나고 거래는 성사되었습니다. 화자는 거래의 내용을 상세하게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17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18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 19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20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17-20)
‘아브라함’이 구입한 땅이 ‘마므레’ 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다든지, 그 땅에 부속된 동굴과 주변 수풀에 관한 언급이라든지, 그 땅의 매수자와 매입지가 각각 ‘에브론’과 ‘아브라함’이라든지, 거래의 증인들에 관한 언급 등이 모두 상세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비로소 자신의 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땅과 관련하여 그가 받은 엄청난 약속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하고 보잘 것 없지만(12:7; 13:15; 15:7-8, 18; 17:8; 22:17), 위대한 성취의 첫 단추가 꿰어지게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는 앞으로 이스라엘이 그 땅을 취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의 모델로 제시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보듯이, 그 땅은 그저 자동적으로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굴러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에브론’과 힘든 거래를 통해서 겨우 그 땅을 살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후손들 역시 힘든 싸움을 통해서 겨우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처럼 한 편으로 보면 그분의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한 편으로 언약 당사자가 치러야 할 대가도 있는 것입니다. 그 대가란 ‘아브라함’이 치른 것과 같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도덕적인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인 것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사라’의 죽음으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그녀의 죽음과 매장에 관한 언급은 처음과 끝에 각각 한번 씩 등장하고 있을 뿐입니다(1, 19절). 그리고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브라함’에 대해서도 단 한 번 언급하는 것으로 더 이상의 언급은 없습니다. 이후 이곳에 ‘아브라함’ 자신도 묻히게 될 것이고(25:9), ‘이삭’도(35:27-29), ‘야곱’도(49:30; 50:13) 뒤이어 묻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경우와는 달리(신 34:6), 이들 족장들이 아무도 모르게, 이름도 없는 곳에서 그냥 죽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두고두고 기억하게 하려했음일까요?
이야기는 다시 한 번 그 매장지가 ‘아브라함’의 소유임을 강조하면서 결론으로 대하고 있습니다(20절). 사실 이 구절은 오히려 19절 앞에 오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 상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화자의 요지인 즉은,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사라’의 죽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그 지역 주민들로부터 땅을 매입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론은 이어지는 이야기의 배경이자 단초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교훈과 적용
1. 사라와 아브라함
사라. ‘사라’는 본문에서 핵심 등장인물은 아닙니다만, <창세기> 전체적으로 볼 때, ‘하와’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와’가 <기원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이었다면, ‘사라’는 <족장 이야기>에서 동일한 지위를 누려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기원 이야기>에서 화자는 그의 이야기를 남자들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으며, 여성에 관한 언급은 기껏해야 남편과 더불어 언급할 때에만 간혹 등장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족장 이야기>에서 ‘사라’의 역할과 지위는 각별합니다. 이스라엘의 여 족장으로서의 명성에 걸 맞는 영웅적인 역할을 부여하고 싶다는 화자의 의중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사실 그녀의 일생은 순탄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나이 아흔이 되도록 자식 하나 출산하지 못해서 겪어야 했던 수모와 수치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이기적이고 편의주의 식 처세술로 두 번씩이나 이방 왕의 아내가 될 뻔도 했습니다. 자신이 데리고 있던 여종과 그의 아들과도 두 번씩이나 가정 파탄의 직전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수난도 자기가 낳은 아들이 남편이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하여 떠나는 것을 보아야 했던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대가일까요? <성경>의 화자들은 한 결 같이 그녀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버금가는 어머니의 전형으로서,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의 전형으로서 그리고 있습니다. <성경>의 화자들이 그녀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으며, 어떤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지 파악해 볼 수 있습니다:
1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2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사 51:1-2)
3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벧전 3:3-6)
그러나 ‘사라’는 결코 완전함과는 거리가 먼 여인이었습니다. 여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 아들을 낳게 하였다가, 나중에서 이들과 갈등하고 급기야는 비정하게 내쫓아버렸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이삭’을 낳게 될 것이라고 전해주었으나 오히려 불신하며 비웃기조차 했습니다. 천사가 왜 비웃느냐고 나무라자 “나는 웃지 않았습니다”하며 거짓말까지 거침이 없었습니다(18:15). 이런 정도의 잘못쯤이야 그녀의 전체 생애 127년에 비한다면 지극히 작은 한 일부분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사라’를 극찬하기에 아낌이 없습니다:
11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이같이 말하는 者들은 本鄕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히 11:11-14)
수없이 많은 허물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사라’가 이처럼 위대한 믿음의 영웅의 반열에 들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녀가 가진 믿음과 소망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열 가지 장점 가운데서 한 가지 단점을 찾아내는 일은 열 가지 단점 가운데서 한 가지 장점을 찾아내는 일보다 훨씬 쉬운 일입니다. 도대체 <히브리서>는 무슨 근거로 ‘사라’에 관한 이런 비현실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화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사라’가 가진 열 가지 단점보다 한 가지 장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대해서도 동일한 관점을 유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라’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남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아브라함’과 함께 60 년을 넘게 동고동락 했습니다. 나이 127에 죽었으니,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가 65이었고, 따라서 두 사람은 이미 그 이전부터 함께 살아온 셈입니다. 결혼과 가정의 의미가 퇴색되어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들은 훌륭한 역할 모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사라’는 그렇다 치고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그는 남편으로서 과연 ‘사라’를 아내로서 제대로 취급이나 해주었을까요? <아브라함 이야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에피소드를 통해서 볼 때, 그는 남편으로서는 낙제점에 가까운 듯합니다. 그의 관심사는 늘 자신과 그리고 소위 하나님을 섬기는 것뿐이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이스마엘’을 내쫓는 이야기에서도 그렇고, ‘이삭’을 바치러 떠나는 장면에서도 화자는 ‘아브라함’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그가 두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래서 이별에 대해서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등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을 뿐입니다. 상대적으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라’가 당했을 고통 따위에는 별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으로 비칩니다.
이런 비난은 필자가 본인의 아내로부터 끊임없이 듣는 것이기도 합니다. 휴가 한 번 제대로 함께 간 적도 없고, 매일 연구하느라 항상 늦은 밤에 귀가하는 관계로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는 적도 거의 없으면서도, 무슨 <성경> 공부 모임이나, 주일 예배나, 기타 교회 모임 때만 되면 빠짐없이 신들린 사람처럼 열정을 품고 덤벼대니 아내로부터 원성과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필자가 생각해도 아내를 마치 짐짝처럼 내버려두었다는 자책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정년을 하고 나면 오붓이 단 둘만의 시간을 내어 그동안 진 빚을 좀 갚겠다고 하면, 예의 “내 죽고 나면 그렇게 하라”는 핀잔만이 돌아올 뿐입니다.
너무나 역설적으로 아내를 향한 ‘아브라함’의 사랑을 보게 되는 것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난 뒤입니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2절하)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여 ‘아브라함’이 보이고 있는 행동을 그리면서 화자는 세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들어가다”; “슬퍼하다”(사파드); “애통해 하다”(바카). 첫 번째 행동은 아마도 ‘아브라함’이 아내의 시신이 안치된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애도 기간이 끝나고 다시 나왔다는 표현을 3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 두 동사는 분명 서로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데, 특히 첫 번째 동사, “슬퍼하다”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애도하는 이상의 다양한 방식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맨발로 걷는 것, 옷을 벗는 것, 수염이나 신체를 베는 것, 금식하는 것(혹은 대접하는 것), 재를 뿌리거나 혹은 몸의 어떤 부분을 치는 것 등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아브라함’은 아내의 죽음을 단순히 슬퍼한 것이 아니라, 당시 전통적인 장례 관습을 따라 그가 할 수 있었던 모든 행동을 통해서 슬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가 울었다는 언급은 이곳에서 처음입니다. 그가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과 가족과 친척을 떠났을 때에도 그가 울었다는 보고는 없습니다. 조카 ‘롯’이 남의 전쟁에서 사로잡혀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울지 않았고,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도 울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가 이곳에서 눈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까?
영원한 이별 때문입니다. 죽음은 우리의 마지막 원수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고전 15:26).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절망감이 그를 견딜 수 없게 합니다. 아내와 함께 한 지난 세월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부요했을 때나, 부족했을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고 할 것 없이 두 사람은 항상 함께 했던 것입니다. 죽어 싸늘한 시체가 된 아내 곁에 앉아 있노라면 이런 기억들이 되살아나서 그를 괴롭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아 애곡하고 애통해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법입니다. 죽은 자와의 관계가 깊었던 것만큼이나, 상실의 슬픔도 더욱 크고 깊게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슬픔이 깊어질수록 죽음에 대한 분노 또한 깊어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의 마지막 원수가 곧 죽음이고, 죽음의 형벌을 가져온 것은 다른 아닌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분노는 좌절이 아니라 꿈을 부를 수 있습니다(J. Stott). 죽음도 이별도 없는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그 시작일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가까운 자들을 잃어버린 성도들의 슬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살전 4:13)
눈물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한없이 슬퍼만 하고 있는 것도 결코 올바른 일일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는 그 꿈을 위해서 살아가는 일을 계속 수행 해 가야 할 것입니다.
2. 막벨라
적절한 애도 기간을 끝내고, ‘아브라함’이 수행한 첫 번째 일은 아내의 매장지로 사용할 ‘막벨라’ 동굴을 매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장차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것이었음을 ‘아브라함’ 본인도 제대로 알았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동굴을 구입한 일이 하나님의 언약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폴 존슨’이 지적한대로, 유대인들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기억력을 지닌 민족입니다. 이어지는 논의는 그의 책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Johnson, P. 16-18쪽.
‘헤브론’이 바로 이 점을 잘 증명해 줍니다.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쪽 32 킬로미터, ‘유대’ 산악 지대 해발 900 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고대 전승에 따르면 그 가운데 매우 오래 된 무덤 하나가 있는데, 이것이 ‘아브라함’의 유해가 묻힌 곳이라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사라’, 그의 아들 ‘이삭’과 며느리 ‘리브가’의 무덤 역시 각기 짝을 이룬 채로 함께 있습니다. 내부 안뜰 건너편에는 또 다른 한 쌍의 무덤이 있는데, 이는 ‘아브라함’ 손자 ‘야곱’과 그의 아내 ‘레아’의 무덤입니다. 건물 바깥 쪽에는 이들의 아들 ‘요셉’의 무덤도 있습니다. 이곳이야말로 4천년 유대 인의 역사가 시작된 곳, 시간과 공간 속에 닻을 내렸던 곳입니다.
심오하고도 유서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곳, 고대의 성소에서 느껴지는 평화와 고요함까지 갖춘 이곳, 그리고 이곳에 있는 돌 하나 흙 한 줌 조차도 지난 4천 년 동안의 끊임없는 정치․종교적인 분쟁과 갈등에 대한 말없는 증인이기도 합니다. 역사와 역사 사이에서, 대륙과 대륙 사이에서, 문화와 문화 사이에서, 기후와 기후 사이에서 이곳은 민족과 종교와 문화의 양파 껍질처럼 그 모든 사연을 다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거쳐 간 사원만 하드라도, ‘유대’인의 성전과 회당, ‘비잔틴’의 성당, ‘이슬람’ 사원, 십자군 교회, 그리고 다시 ‘이슬람’ 사원을 들 수 있습니다. ‘헤롯’이 지었다는 성벽의 일부는 현재까지도 남아있는데, 높이가 12 미터에 이르고 돌 하나의 기이가 7 미터에 이를 정도로 그 장엄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살라딘’이 설교단을 세워 그 성전을 장식했다고도 합니다. 이처럼 ‘헤브론’은 ‘유대’인들의 길고도 비극적인 불행과 이를 이겨낸 그들의 생존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곳에서 ‘유다’의 왕으로서(삼하 2:1-4), 나중에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삼하 5:1-3)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자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쫓겨나고 대신 ‘에돔’ 인들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다시 ‘그리스’와 ‘로마’가 이곳을 번갈아 점령하였으나, 혼란은 계속되어 “열심당”은 ‘로마’인들과 더불어 그 지역을 잿더미로 만드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이후에도 이 지역은 계속해서 ‘아랍’인들, ‘프랑크’인, 그리고 ‘맘루크’인들의 차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기도를 하는 전통이 있는데, 그것마저도 1266년에 ‘유대’인들의 출입이 금지됨으로써 불가능하게 되었고, 다만 동쪽 성벽 옆 일곱 개의 계단에 올라가는 것만이 허용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유대’인들은 네 번째 계단에 난 약 2미터 길이의 틈 속에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을 넣기 시작했는데, 이를 동굴 속으로 떨어뜨리기 위해서 막대기를 사용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런 일조차도 오랫동안 누릴 수 없었습니다. 1518년부터 ‘헤브론’ ‘유대’인들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무시무시한 대학살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공동체는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그 명맥을 이어갔으며, 시대에 따라 정통 ‘탈무드’ 편찬자들, 신비주의적인 ‘카발라’ 학자들, 그리고 ‘유대’ 금욕주의자들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금욕주의자들은 때로 자신들의 피가 그 신성한 돌 위로 떨어질 때까지 자신들을 가혹하게 채찍질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을 1666 년대에 이곳에서 ‘샤베타이 즈비’(Shabbetai Zevi)라는 거짓 ‘메시야’를 영접하기도 했으며, 18세기에는 최초의 현대 기독교 순례자들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그로부터 백년이 흐른 후 세속적인 ‘유대’인들이 그곳에 정착하기 시작했으나, 오래지 않아(1918년) 그들은 대영제국의 정복자들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별로 크지 않았던 ‘유대’ 공동체는 1929년과 1936년, 두 차례에 걸쳐 ‘아랍’인들의 잔인한 공격으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로부터 1967년 그 유명한 “6일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 군대가 ‘헤브론’에 입성할 때까지 단 한 명의 ‘유대’인도 그곳에 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에 정착촌이 재건된 이후로 지금까지 ‘유대’인 공동체는 여전히 많은 공포와 불안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잘 유지되고 있는 편입니다.
이런 ‘헤브론’의 역사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한 때 그 지역에 거주했던 민족과 나라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가나안’ 사람들은 어디에 있으며, ‘에돔’ 족속들은 어디로 갔는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 ‘비잔틴’ 제국의 사람들, ‘프랑크’인들, ‘맘루크’인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느 민족도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유대’인들만이 그 모습을 유지한 채 ‘헤브론’에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지역을 사수하기 위하여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이웃 국가들과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어떤 민족도 그토록 기나긴 세월동안 이 지역에 대해서 그렇게 까지 집요한 애착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그 어느 민족도 그처럼 강력하고 일관되며 고집스럽게 이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본능, 즉 뿌리를 향해 나아가며 재정착하는데 있어 용기와 기술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대도 너무나 역설적이게도 실상 자신들의 땅이라고 우기던 ‘유대’인들이 이 지역을 차지했던 시간은 그들 전체 역사에서 지극히 미미한 기간에 불과했습니다. 오히려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그들의 역사에서 3/4 이상을 다른 곳에서 흩어져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막벨라’ 동굴이 있던 ‘헤브론’, 이 땅은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에서 최초로 획득한 땅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으로부터 그저 얻은 것이 아니라, 값을 치르고 구입한 땅입니다. 거래도 한 두 사람이 관여하여 이루어진 밀실 거래나 비밀 협정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증인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헤브론’이 그들의 땅이라고 우기는 ‘유대’인들에게 있어, <창세기> 23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거래 본문은 <성경> 전체를 통해서 가장 중요한 근거이자, 가장 오래 된 전승 중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매매계약 원본에 해당하는 이 본문이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구전되고 기록으로 전해질 수 있었던 것도, 계약이 이처럼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진행되어 믿을 만한 세부 사항들이 잘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래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상세하게 살펴본 바 있습니다. 본문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을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4절). 법적인 권리 주장을 할 수도 없고, 언제 추방당할지도 모르는 주변적인 존재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먼저 그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원하는 땅을 소유했던 이는 ‘헷’ 사람으로서 ‘에브론’이라는 지역 저명 인사였습니다. 그 땅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 지역 사회의 동의를 얻어야 했으며, 그 후에야 비로소 은 사백 ‘세겔’(약 4.5kg)을 놓고 ‘에브론’과 흥정할 수 있었습니다. 대금 지급 역시 그 지역사회 장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인들이 사용하던 추로 은을 달아 지불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땅의 주인이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의 변화까지 수반하는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이 단락의 두드러진 문체가 이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의례적인 인사와 위선, 가식적인 정중함, 완고함, 그리고 끈질긴 흥정. 또 한 가지 주목할 만 한 점은 이 거래가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공적 거래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10, 11, 13, 16, 18절). 이 점은 실로 중요한 것이, 이 땅은 이후 ‘아브라함’의 소유라는 사실을 공적으로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비로소 자신의 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땅과 관련하여 그가 받은 엄청난 약속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하고 보잘 것 없지만(12:7; 13:15; 15:7-8, 18; 17:8; 22:17), 위대한 성취의 첫 단추가 꿰어지게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는 앞으로 이스라엘이 그 땅을 취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의 모델로 제시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보듯이, 그 땅은 그저 자동적으로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굴러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에브론’과 힘든 거래를 통해서 겨우 그 땅을 살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후손들 역시 힘든 싸움을 통해서 겨우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처럼 한 편으로 보면 그분의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한 편으로 언약 당사자가 치러야 할 대가도 있는 것입니다. 그 대가란 ‘아브라함’이 치른 것과 같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도덕적인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인 것입니다.
과연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아내를 묻기 위해 ‘막벨라’ 동굴을 산 행위를 두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이같이 말하는 者들은 本鄕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3-16)
그 영원한 나라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 나선 우리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을 위해서도 예비 된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울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마치 종말이 오지 않을 것처럼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살았을 때나, 죽음을 맞이할 때에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요 우거한 자입니다.” 더 나은 본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습과 토의
1. 본문의 핵심 주제는 무엇이며, <아브라함 이야기> 전체에서 갖는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2. ‘막벨라 거래’의 분위기와 내용을 요약해 봅시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서 그 땅의 일부를 값을 치르고 구입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3. 오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