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구약 개론 제3권 서론
김태정 목사약 9분 분량
<히브리 성경>의 두 번째 부분은 앞에서 배운 바처럼 <예언서>(the Prophets)이다. <예언서>는 다시 <전기 예언서>(the Former Prophets)와 <후기 예언서>(the Latter Prophets)로 나누어지는데, <전기 예언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그리고 <열왕기>로 이루어져 있다. <사무엘>과 <열왕기>는 후에 각기 상과 하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영어나 개신교식 분류 방식에 의하면, <전기 예언서>는 <역사서>로 분류되며, 이 속에는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가 추가로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다시 각 종교 별로 분류해 보면 아래 도표와 같다.

예언인가 역사인가?
신학화 된 역사. 위에서 언급한 바처럼 <여호수아>는 개신교 <영어성경>의 분류에 따르면 <역사서>의 첫 번째 책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히브리 성경>에서는 두 번째 부분에 해당하는 <예언서>(또는 <선지서>)의 첫 번째 책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위 도표 참조).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왜 이 책을 <예언서>로 불렀으며, 왜 기독교 진영에서는 <역사서>로 간주하고 있는 것일까? 흔히 개신교 <정경>의 순서는 ‘마르틴 루터’(M. Luther)가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적어도 고대 ‘유대’인들에게는 <예언서>가 역사적인 성격보다는 선지적인 성격이 더 많았던 것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역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며, 학자들마다 다른 견해들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든 역사에는 순수한 사실(事實)로서의 역사가 있긴 하지만, 모든 사실을 다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들을 취사선택하고 배열함에 있어 실제 사건과 후대의 독자 사이에는 기록자의 주관적 입장이 끼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한 연대기나 족보를 역사로 규정할 수 없듯이, <전기 예언서>의 책들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아무리 역사의 의미를 광범위하게 규정한다 하더라도 현대의 역사가들을 만족시키는 그러한 종류의 역사는 아닙니다. 오히려 “신학화 된 역사”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여호수아>의 경우만 하드라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건은 세부적인 면에 있어서 공평성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요단강 도하 이야기”, “길갈의 언약 의식”, “여리고와 아이성의 이야기” 등에 대해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만, “가나안 남부 지역 정벌”에 관한 기록은 매우 간결합니다. “북부 지역 정벌”에 관한 기록은 이보다 더 짧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정복된 민족이나 도시의 이름조차 생략하고 있습니다. <사사기>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구성이 반드시 연대기적으로 기록된 아니라, 후대 화자의 신학적 의도를 담은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사기> 역시 당대의 정확한 역사를 소개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 역시 이스라엘의 왕정에 관한 모든 사실(史實)들을 다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남북조 왕국에 얽힌 정치적인 이야기보다 신앙적인 측면을 더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전기 예언서>는 전체적으로 종교적인 관점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역사가들이 기록함직한 그런 종류의 역사가 아닌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선지자적 관점의 “신학화 된 역사”입니다. 선지자의 주된 목적은 우선 역사의 주관자로서의 하나님의 계획과 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며, ‘여호수아’를 비롯해서 ‘사무엘’, ‘나단,’ ‘엘리야’, ‘엘리사’ 등과 같은 선지자들의 활동을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으며, 언약이나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의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보여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 중요성.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경> 즉 <전기 예언서>의 책들의 역사적인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역사 기록은 선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매우 편향된 시각을 가진 ‘아시리아’ 왕들의 연보(年譜)나 ‘헤르도투스’ 및 ‘요세푸스’의 역사 기록은 당연히 많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들의 역사 기록이 역사적인 가치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해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역사가는 목적에 따라 자료를 선별할 뿐입니다. 그는 역사 기록을 창조하거나 왜곡시키는 것이 아니라(다른 목적을 가진 자들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목적에 따라 선별할 뿐입니다. <전기 예언서>의 선지자들 역시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역사적 자료들을 선별했던 것입니다.
<구약>이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르도투스’ 이전의 어떠한 책보다도 역사적인 기록을 더 많이 담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고고학적 발견들을 통해서 <구약>의 역사적인 정확성은 반감되기보다 오히려 더 인정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 예언서>나 <구약> 전체의 역사적인 요소는 종교적인 메시지에 종속 내지 결합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들 책속에는 예언(預言)과 하나님의 목적이 드러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를 통해서 그 메시지가 인식되고 있습니다.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 <히브리 성경>이 <예언서>를 이처럼 구분하는 것은 이 두 예언서 사이에 시간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前者)는 주로 ‘가나안’ 정복 시기와 초기 왕정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루는 내용은 포로시대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후자(後者)는 두 왕국이 종말을 고하는 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적인 차이가 두 <예언서>의 유일한 차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단순화 한 것입니다. 보다 본질적인 차이는 각 책의 성격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전기 예언서>는 더욱 “역사적”입니다.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비교적 연대기에 맞추어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로부터 <열왕기>까지를 통해서 우리는 “가나안 입성”에서부터 “포로시대”까지의 기간, 즉 주전 1250-586년 사이의 역사를 연결해서 재구성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영어 성경>에서 이 책들을 <역사서>로 분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후기 예언서>를 통해서는 역사에 대한 희미한 개요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입니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들이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순서를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전기 예언서>를 통해서 그 순서를 대략 파악할 수 있는 경우에도 <후기 예언서>에 등장하는 내용들을 연대기적으로 배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후기 예언서>는 그야말로 “예언적”인 성격이 더욱 강하다 할 것입니다. 내용적으로도 선지자들이 선포한 메시지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요소는 <전기 예언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컨대, <여호수아>는 주인공 ‘여호수아’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으며, 그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도 일부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와는 달리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서는 거의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전한 메시지도 <사무엘>에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나단’이 전한 메시지가 <예레미야>에 등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의미의 예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전기 예언서> 중에서 그나마 예언적인 내용으로서 가장 긴 것이 “엘리야 이야기”(왕상 16-왕하1)나 “엘리사 이야기”(왕하 2-9)일 것인데, 이들 선지자들의 예언을 ‘미가’나 ‘스바냐’의 그것과 같은 맥락에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기 예언서>가 원래는 예언적(또는 선지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역사적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 연속적인 기록을 제공해 주긴 하지만 항상 선지자의 눈을 통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신학적 주제-신명기적 역사관
이처럼 역사적으로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을 하나님의 개입이나 섭리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분명 <성경>에만 있는 독특한 개념임에 분명합니다. 고대 근동 지방의 문헌들 중에는 어떤 사건들을 특정 신들의 활동과 연결시킨 경우들이 더러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성경> 이외의 어디에도 이런 개념을 실제 역사 속에서 일관성 있게 전개시킨 경우는 없으며, 모든 사건들이 오직 한 신에게만 연결시키고 있는 경우도 없습니다.
이처럼 역사를 하나님의 목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거리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근 학계는 이러한 사상이 주전 7세기 경 “신명기적 역사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사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경우는 <사사기>입니다. 이 책에는 죄와 심판과 회개와 구원에 관한 신명기적 개념이 무려 열두 번에 걸쳐 나타남으로써 소위 신학적 윤회(輪回)를 이루고 있습니다. 죄는 심판 즉 외국의 침입을 부르고, 회개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사를 세워 구원을 가져오게 한다는 내용입니다.
역사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여호수아>나 <열왕기> 등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으며, 다른 나라의 경우에서 보는 바를 훨씬 능가하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 문헌에서 발견되는 것과도 현저하게 차이를 드러내고 있어 이스라엘 특유의 것이라 아니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탁월한 종교적 통찰력, 즉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는 종교적 통찰력을 필요로 합니다. 핵심적인 질문은 간단합니다. 즉 “신명기적 역사관”이 ‘모세’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이스라엘 왕국이 종말을 고하던 ‘요시야’ 시절 당시의 일단의 학자들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이도저도 아니라면 이 둘의 합작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게 간단치는 않습니다. 대개 역사철학을 전개시키기에 합당한 시기는 한 시대의 시작보다는 마지막 때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하심을 목도한 이후라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작의 시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나, 지혜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레미야’나 ‘요시야’의 시대야말로 역사철학을 발전시키기에 적합한 시기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위대한 천재 또는 선지자들의 이름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놀랍기만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은 놀라운 경험을 했던 자입니다. <신명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할 때, 이 책의 상당 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인과응보적 역사철학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힐기야’가 ‘요시야’ 시대에 발견한 “율법책”(왕하 22:8-13)이 바로 <신명기>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지나치게 단순해 보입니다. 그것은 이 책의 최종 단계에만 조명을 비춤으로써, 그 이전 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상적 뿌리들, 그리고 어떻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의 인과응보적 관점에서 해석하게 되었는지 등에 관한 과정을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종주-본주 간의 조약 양식이 ‘시내’ 산에서 계시된 ‘모세’의 율법 속에 나타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언약의 두 얼굴인 축복과 저주 즉 인과응보적 개념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개념은 <사사기>에서 보여주고 있는 동일한 사상에 대한 배경 내지는 뿌리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열왕기>의 여러 대화나 화자의 진술 속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심판과 은혜의 개념은 원래는 주로 개인에게만 국한되었습니다만, <아모스>에 이르는 동안 국가에 대해서도 적용되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후 “신명기 역사관”은 한동안 잊혀 있다가 ‘요시야’ 시대에 새롭게 조명 받게 된 것 같습니다. 국가의 종말과 더불어 이 역사관은 최종적인 형태로 “신명기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편집되기에 이른 것 같습니다. 결국 “신명기 역사관”은 ‘모세’ 시대에 배아의 상태로 출발하여, 왕국의 종말의 시대에 최고조로 발달된 형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