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제6과
간증과 변론 (4):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김태정 목사갈라디아서 2:1-10약 38분 분량
제 6과: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6
간증과 변론 (4):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2:1-10)
(그리고) 십 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2:1)
사도가 들려주는 여섯 번째 ‘알리바이’는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기입니다. 그가 이 방문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아래 네 가지 정도인데, 이를 통해서 그의 반대자들은 그 존립 근거마저 무너지고 있음을 봅니다:
(1) 이번 방문은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지 14년이 지난 뒤였으며, 그가 만난 ‘예루살렘’의 사도들이나 다른 지도자들은 그의 사역에 아무 것도 새롭게 더하거나 가르쳐 준 것이 없다.
(2) 그가 간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지, ‘예루살렘’ 교회의 요청에 의한 것도 아니며, 그 교회의 권위에 승복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3) 그들은 각자가 맡은 사역에 대해서 상호 인정과 합의를 이루었다.
(4) ‘예루살렘’ 사도들은 ‘바울’로 하여금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계속 생각하고 돌보아 줄 것을 추가로 요청까지 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사도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무엇입니까? 사도가 추호의 양보도 없이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이며, 양보와 타협을 했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오늘날에도 자칭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 하나 실은 “거짓 형제”요 “속이는 자”가 있습니까?
문학과 역사
사도가 변론을 위해서 제시하는 여섯 번째 ‘알리바이’는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기입니다. 앞 과에서 이미 언급한 바처럼, ‘예루살렘’ 방문과 관련한 세 번의 언급이 모두 동일한 접속사 “그리고 나서”(e[peita, 에페이타)로 시작하고 있으며, 이러한 표현과 가장 가까운 영어식 표현은 “and then”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 이야기들이 모두 연속적으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의 이야기 역시 끊어짐이 없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그리고 나서) 삼년 만에 (1:18)
(2) (그리고 나서) 그 후에(1:21)
(3) (그리고 나서) 십사 년 후에(2:1)
이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과 관련해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두 번째 방문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으로 알려져 있는 사도들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만남은 첫 번째 방문이 있은 지 14년이 흐른 뒤의 일이었다. “십사 년”과 관련해서 앞 과에서도 다룬 바 있습니다만, 이 기간이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을 기점으로 한 것인지, 그가 ‘아라비아’로부터 ‘다메섹’으로 돌아온 시점을 기준으로 한 것인지, 또는 그의 회심 사건을 기점으로 한 것인지 분명치는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만, 십여 년은 짧지 않은 세월임에 분명합니다.
(2) 그나마 이 방문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지, ‘예루살렘’ 사도들의 요청이나 또는 그들의 권위에 승복하기 위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3) 방문의 결과는 소위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으로 알려져 있는 사도들과 이방인 선교와 관련해서 “친교의 악수” 즉 동의와 합의가 이루어졌다.
본문은 대략 두 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인데, 첫 번째 단락에 해당하는 1-5절은 방문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내용상 이곳에서 소개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사도가 주장하려는 논점과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갔다는 점, ‘헬라인’ ‘디도’로 하여금 할례를 받게 하라는 아무런 압력도 사도들로부터 받지 않았다는 점, 일부 거짓 형제들의 저항과 반대에 부딪혔다는 점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문장의 구성상 그가 소개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연결이 부자연스러우며, 특히 4절에서는 문법적인 “파격”(anacoluthon)이 보이기도 합니다. 문법적 파격이라 함은, 예를 들어 “He who has an ear to hear, let him hear”에서 두 번째 문장은 처음 문장과 다른 구문을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참고: 본문 내용).
구조적으로 볼 때, 3-5절은 일종의 괄호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좀 더 세분하자면, 이 부분은 두 개의 괄호로 연결되어 있는데, 3절에서 첫 번째 괄호가 있고 4-5절은 두 번째 괄호 속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입니다.
두 번째 단락(6-10절)은 내용상 ‘예루살렘’ 방문의 결과를 다루고 있는데, 문장의 구성이 여러 개의 진술들이 함께 모여 마치 긴 두루마리를 이루고 있는 것 같은 형국입니다. 그가 들려주는 방문의 결과란, ‘바울’이나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각자 수행하고 있는 선교 사역에 대해서 이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들은 일치를 이루었으며 서로를 인정하는 소위 “교제의 악수”를 나누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의 편에서 보자면 이러한 일치는 그가 “계속해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사역 속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었습니다.
신학과 신앙
두 번째 방문(1-5절)
십사 년 후에. 그동안 사도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자신의 이야기가 중간에 빠뜨린 부분이 없이 계속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곧바로”(εύθέως, 유데오스)(1:16) 또는 “그리고 나서”(ἒπειτα, 에페이타)(1:18, 21) 등의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제 여섯 번째로 들려주는 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기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삼 년 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1:18)
(그리고 나서) 십사 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2:1)
다만 두 문장 사이에는 적지만 미묘한 어휘상의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즉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각기 다른 전치사, “...만에”(μετά, 메타)와 “...후에”(διά, 디아)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자(前者)의 경우는 뒤따르는 명사가 대격(對格)이 되지만, 후자(後者)는 소유격(所有格)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그 자체로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보다는, ‘바울’의 문장 스타일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유사반복을 선호하는 ‘유대’식 표현과, 단조로운 반복을 기피하려는 ‘그리스’식 표현이 함께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자는 것이지요.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말하고 있는 “십사 년 후”가 정확히 언제인지 분명치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거듭 반복하지만, 그의 회심 사건을 기점으로 한 것인지(1:15), 또는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을 기점으로 한 것인지(1:18-20) 분명치 않다는 말입니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본 교재의 <서론>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십사 년 후”는 문맥상으로 보자면 직전의 진술 “그 후에 수리아와 길리기아” 방문(1:21)과 연결되어야 할 것 같은데,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는 진술은 역사적으로는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1:18)과 연결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일부 사본에서는 “다시”라는 단어를 생략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사도행전>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루살렘 공의회”(행 15)에 참가하기 위하여 사도가 그곳을 방문한 사실과 일치시키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따르면 이 방문은 세 번째에 해당합니다(만일 행 12:25에서 언급하고 있는 방문까지 포함시킨다면 네 번째 방문이 될 것입니다).
이 두 번째 방문이 “십사 년 후에” 이루어졌다는 진술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입니까?
바나바와 디도. 이어서 강조하고 싶은 점이 또 있습니다. 이 두 번째 방문에서 그는 혼자 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2:1)
‘바나바’는 초대교회에서 중요 인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그는 여러 번 등장하고 있으며, 이방인 선교와 ‘유대’인 선교 사이의 교량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행 9:27; 11:22-30; 13:1-14:28; 15:2-4, 12, 22, 36-41). 그가 ‘바울’의 서신에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으며(2:1), 곧바로 이어서 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2:9, 13). 그의 본명은 ‘요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행 1:23), 사도들이 그의 기질을 따라 ‘바나바’(위로의 아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의 구분을 위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출생지는 ‘사이프러스’이며 ‘레위’ 가문에 속하였고, ‘예루살렘’에 있을 당시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여, 이후 자신의 땅을 팔아 교회나 사도들을 재정적으로 돕기도 했습니다(행 4:36-37). 또한 ‘다소의 바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하였고, 그를 변호하는 일을 자임하기도 했습니다(행 9:27).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시리아’의 ‘안디옥’으로 기독교 선교와 감독을 위해서 보내는데, 이 때 그는 ‘바울’을 동역자로 데리고 갑니다(행 11:22-26).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헌금을 이 두 선교사를 통해서 보내게 됩니다(행 11:27-30). 그리고 이후 ‘안디옥’ 교회는 이 두 사람을 안수하여 ‘키프러스’와 ‘갈라디아’ 지역의 선교사로 파송하는데, 이것이 ‘바울’의 제 1차 선교여행의 시발이 된 것입니다(행 13:1-14:28). 이들이 이 지역에 대한 선교 여행에서 돌아오자, 교회는 다시 이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교회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관계라든지, 이방인에 대한 할례 문제 등과 같은 골칫거리를 다루도록 합니다(행 15:1-35). 이것이 그 유명한 “예루살렘 공의회”입니다. 회의가 끝난 후 두 사람은 각자의 선교 사역을 위해서 갈라지게 되는데(행 15:36-41), 중대한 견해의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전히 친구로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고전 6:9; 고후 8:18-19).
‘예루살렘’에 기근이 들어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보낼 당시만 해도(행 11:25-26, 30; 갈 2:1-10), ‘바나바’가 ‘바울’에 비해 선임자의 역할을 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갈 2:1-10) 사도가 계속해서 일인칭으로 당시의 일을 회고하고 있어, 자신이 오히려 선임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그의 지도자적인 역할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잘 드러나고 있기는 합니다(행 15:1-30). 제 1차 선교 여행 당시 메시지를 전한 쪽은 ‘바울’이었으며, 그런 점에서 그가 사실상의 선임자의 역할을 수행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가 지난 일을 회고할 때에도 자신의 입장에서 진술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뿐만 아니라, 특히 ‘바나바’가 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한 때 흔들리기도 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갈 2:13),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데리고 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디도’로서, ‘바나바’와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으며(3절), 사도가 ‘안디옥’에 있을 때 회심한 자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서신에서 그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는 이미 친숙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바울’과 ‘바나바’가 이 지역을 선교하던 처음부터 그들과 함께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후 그는 ‘바울’의 대리인으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도 했고(고후 2:12-13; 7:5-16),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 기금을 마련하는 책임자로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고후 8:6-24; 9:35; 12:18). 이러한 그가 <사도행전>에는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혹자는 그가 ‘누가’의 동생이라 형이 그의 책에서 일부러 누락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그럴 듯한 설명은, 오히려 연보 모금과 관련한 그의 역할 때문이라는 데 있어 보입니다. 즉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에 관해서 단 한 번 언급이 있기는 한데(행 24:17), 그 외는 이에 관해서 특별히 따로 언급해야 할 필요성이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후대의 전승은 그가 ‘크레데’의 감독이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참고, 딛 1:5).
‘디도’를 ‘예루살렘’에 데리고 갈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쪽은 ‘바울’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1절에서 사용하고 있는 동사를 단수형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왜 그를 데리고 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이 두 번째 방문이 언제 이루어졌는가에 따라 그 대답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즉 만일 이 방문이 <사도행전> 15장에서 다루고 있는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디도’를 데리고 간 것은 그 회의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쐐기를 박기 위한 의도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디도’를 데리고 간 것은 ‘마르틴 루터’(M. Luther)가 주장하고 있는 바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고 있는 자신의 자유를 과시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유대’인 ‘바나바’는 물론 이방인 ‘디도’와 함께 그 자리에 나타난 것 자체가, 그가 ‘유대’인 가운데서는 ‘유대’인이 되고, 이방인 가운데서는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몸소 보여준 셈입니다. 따라서 “그의 복음”에 따르면, 유대인으로서 할례를 받을 수는 있으나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한편 이 방문이 이보다는 앞선 시점, 즉 <사도행전> 11장에서 밝히고 있는 바처럼 “예루살렘 기근” 시에 어려움에 빠져 있던 ‘예루살렘’ 교회에 연보를 전달하기 위한 방문이었다면, 설명은 다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때만 해도 아직은 이들 신학적 문제가 큰 쟁점으로 부각되지도 않았고, “유대주의자”들의 반대도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을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디도’를 데리고 간 것은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는 단순한 동행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바울’과 ‘바나바’가 자신들의 1차 선교 여행 때부터 그를 데리고 다녔다면, ‘예루살렘’이 비록 선교 지역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곳까지 동행시켰다 해서 크게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그를 데리고 간 사실을 이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을 위해서 사도가 지난 일을 현재의 관점에서 회고하고 있다고 추측해 보자는 것입니다. 즉 이전에 ‘디도’를 데리고 간 것이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던 일이었으나, “그의 복음”에 대해서 비난과 반대가 쏟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그 대수롭지 않던 에피소드에 새삼 신학적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계시를 따라. 두 번째 방문에서 그는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독단적으로 계획하지도 않았습니다:
계시를 따라 올라가(2절상)
그는 서신의 벽두에서부터 자신의 회심과 소명이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조직 및 기관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1:1, 12, 16). 이 방문도 역시 같은 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그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에게 있어 이 계시는 그의 존재와 행동의 근거이자 동기이기도 합니다(고후 12:1). 그가 말하는 계시는 신비한 영적 체험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특별한 행동 방향과 관련해서 내리는 하나님의 지침이나 명령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은 사도가 받은 다양한 형태의 계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 꿈과 환상(16:9; 18:9-10; 23:11; 27:23-24); (2) 황홀경(22:17-21; 참고 고후 12:2-4); (3) 성령의 표적(13:2; 16:6, 7; 20:22-23; 21:4); (4) 예언자의 예언(11:28; 21:10-11). 사도가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된 것은 이중 어떤 계시에 의해서였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혹시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는 ‘아가보’의 예언을 듣고 방문하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참고, 행 11:28).
그가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예루살렘’을 방문해서 한 일에 대해서 2절의 나머지 부분은 밝히고 있습니다. 동기와 방식에 대한 정보도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2절하)
그가 한 일은 “그들 앞에 복음을 제시하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을 의미할 수 있겠으나, 오히려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를 총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동사, “제시하다”는 “생각해 보기 위하여 제출하다” 또는 “상담을 위해서 대화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가 제시한 “복음”은 지금 현재 사도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고 있는” 그 복음으로서, 그 본질이나 대상은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1:11-12). 이때 사용하고 있는 동사, “전파하다”는 그 시제가 현재형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바울’의 복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결 같이 동일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만일 이번 방문이 “예루살렘 공의회”와 때를 맞춘 것이라고 본다면, 사도는 이번 방문에서 두 번의 회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번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리고 또 한 번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과의 사적인 모임에서 자신의 복음을 변론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사도가 자신의 방문을 서술하는 방식은 2:2-10절 사이에서 볼 수 있듯이, 우선 일반적이고 총체적인 설명을 먼저 언급한 다음, 점점 세부적인 내용으로 확대해 가는 식입니다: (1) 일반적인 내용(2절하); (2) 회의 참석자들의 대상이나 신분(2절하, 6-9절); (3) 회의의 결과(7-10절). 물론 ‘예루살렘’이 방문이 언제 이루어졌든, ‘바울’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외에도 다른 사도들도 당연히 만났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사도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이들 세 사도들과의 사적인 회합 자체입니다. 결국 “유력한 자들”이란 직전에 언급하고 있는 대명사 “그들”을 말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인 서술에서 구체적인 내용으로 확대해 가는 첫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을 가리켜 “유력한 자들”로 지칭하는 저의는 무엇일까요? 사실 이 표현은 당시에 일종의 정치적 수사로서, 긍정적인 의미도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냉소나 역설의 의미를 드러낼 때 사용했던 표현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의도하고 있는 바는 아마 이 모두인지 모르겠습니다. 즉 사도들의 권위나 역할을 인정은 하면서도, 동시에 이들을 지나치게 추켜세우며 그 권위를 부풀리고 다니는 ‘유대주의자’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냉소와 조소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겠지요.
헛되지 않게 하려. 비록 하나님의 계시에 따른 것이긴 하지만, 이처럼 ‘예루살렘’을 두 번씩이나 방문하는 동기나 목적은 과연 무엇입니까? 2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를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는 자신이 그동안 한 일이 “헛되이 될까봐 두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다른 곳에서도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만(고후 6:1; 빌 2:16; 살전 3:5), 여기서 “헛되다”는 표현은 “무용지물이 되다” 또는 “아무 소용없게 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까? 그의 “달리기”입니다. 사도는 종종 자신이 하는 일이나 성도의 신앙생활을 마라톤 경주에 비유하곤 합니다(갈 5:7; 빌 3:14; 딤후 4:7; 히 3:1; 고전 9:24-27; 빌 2:16).
사도들과의 만남과 화합이 왜 이처럼 치명적으로 중요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사도직이나 소명이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계시로 말미암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른 사도들로부터 아무 것도 위임받은 것도 없고 배운 바도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브루스’(F. F. Bruce)가 이에 대해 적절한 대답을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R. N. Longnecker, 49쪽.
그의 소명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루살렘과의 교제가 없이는 결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이방인 선교가 예루살렘의 모 교회와 균열이 생긴다면 그것은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이는 곧 그리스도가 나누어지는 것이며, 이방인 선교를 향해서 쏟아왔던 바울의 헌신이나 앞으로의 헌신 역시 좌절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승인이 없다고 해서 ‘바울’의 선교나 그의 복음이 무위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어렵게 만들 것만은 분명합니다. 복음의 본질에 있어 ‘바울’과 ‘예루살렘’ 사도들이 분열한다면, 이방인 선교는 물론 유대인 선교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 교회의 연합은 교회의 다양성만큼이나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구제 헌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그토록 애쓰는 사도의 모습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기도 합니다(참고, 롬 15:25-32; 고전 16:1-3; 고후 9:12-15). 사도가 자신의 권위나 복음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없었으면서도, 그토록 두려워했던 바도 바로 이점 즉 “교회의 연합”이 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방문과 관련해서 1-2절이 방문의 동기나 목적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그 방문의 결과는 6-10절 사이에서 드러나면서 두 부분이 논리적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3-5절은 형식적으로는 괄호(括弧)로 구별되는 부분으로서, 그 내용은 일종의 삽입 ‘에피소드’로 볼 수 있습니다. 1-2절과 3-5절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이 기능하는 바는 분명해 보입니다. 즉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보강하거나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내용 상 한 개의 큰 괄호가 그 안에 다시 작은 괄호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에 따라 세 절을 다시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3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 하였으니, {4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그들에게서 우리가 한 시도 복종하지 아니 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3-5절)
이런 구분을 따르면 마치 사도가 두 개의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디도’의 할례 문제이고(3절), 다른 하나는 ‘갈라디아’의 유대주의자들의 거짓 주장에 대한 문제인 듯합니다(4-5절). 그러나 보다 그럴듯한 설명은 3-5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동일한 사건에 대한 것으로서, 4-5절은 3절에 대한 추가 설명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디도’를 두 번째 방문에 동행시켰다는 점은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1절). 이곳에서 그를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할례를 받지 않았음을 강조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인 디도조차도”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사도의 주장은 상당히 강력한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선교 사역을 하기 전까지는 다 할례를 받았다는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음을 주장하려는 의도처럼 보입니다.
다만 여기서 사도의 이어지는 표현에 다소 모호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3절하). 대부분의 학자들은 ‘디도’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일부 학자들의 이해는 이와는 다릅니다. 즉 ‘디도’가 할례를 받기는 했지만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장 속의 부사 “억지로”에 방점을 두게 되면, “억지로는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 하였으니”로 그렇게 해석 될 여지는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더 나아가 비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늘 양보와 타협으로 일관했던 ‘바울’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3절에서 방점(傍點)은 “억지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헬라인 디도)조차도...받지 않았다”에 있습니다. 그리고 5절에 따르면, ‘디도’가 할례를 받았을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 보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해석은 지나치게 인위적인 것이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해석상의 어려움은 4절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4절). 즉 이 구절을 3절의 연장선에서 이해하여 동일한 사건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지가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4절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곳에서 소위 문법적 “파격”(anacoluthon)이 일어나고 있어(필요한 주어와 동사가 없음), 구문(構文) 상 3절과의 관계가 명확치 않다는 점입니다. 3절과 4-5절 사이의 구문론 상의 관계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 R. N. Longnecker, 50-52쪽; (2) H. N. Ridderboss, 83-84쪽.
만일 4절을 3절과 동격으로 취급한다면, 결국 4-5절과 3절은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4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디도의 할례 문제) 발생하게 된 것은 결국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4절상). 여기서 “거짓 형제들”이란 자칭 헌신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주장은 하나 실은 그 행동이나 가르침에 있어 ‘바울’의 선교 사역에 훼방을 놓는 자들을 말합니다(참고, 고후 11:26).
이곳에서 형용사로 사용하고 있는 “가만히 들어온”의 명사형은 상대 진영에 침투해 들어가는 “첩자” 또는 “변절자”를 의미합니다. 이들이 침투해 들어간 진영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 교회’입니다. 비록 이런 자들이 ‘예루살렘’ 사도들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고 하드라도, 사도는 결코 이들을 교회의 정상적인 회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진정한 목적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4절하). 사도의 표현은 차라리 냉소적이기까지 합니다. 첩자들이 누구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와 복음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자유는 서신 전체의 핵심 주제로서 서신의 나머지 부분에서 계속해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가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문제는 단순히 ‘디도’의 할례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그 자체로서 순수하게 지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5절). 사도는 여러 경우에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 스스로의 주장이나 고집을 버린 바 있습니다(5:12; 고전 9:19-23; 행 16:3; 21:23). 그런 그가 이곳에서 이처럼 달라져 있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입니까?
방문의 결과(6-10절)
방문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본문의 두 번째 단락이 이에 대한 대답을 마련해 주고 있습니다:
6유력하다는 이들 중에(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 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은 것과 같음을 보았고, 8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6-10절)
다섯 절로 이루어진 이 단락은 원래 한 문장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내용을 전개해 가는 수사적 방식을 분석해 보면 마치 긴 두루마리를 따라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장이 부주의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고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즉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자신의 논지를 아주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펼쳐가고 있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이곳에서 다시 한 번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 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6절)
6절에서 다시 한 번 문법적으로 anancoluthon이 보이고 있어 구조 분석에 다소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사도가 의도하는 바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의 사도들에 관해서 처음 언급할 때(1-2절), ‘디도’의 할례 문제를 거론하면서(3-5절) 이들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아예 유대주의자들의 주장, 즉 자신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의 신학을 대변하고 있다는 주장을 뿌리 채 뽑아버리겠다는 의도입니다. ‘바울’이 의도하고 있는 바는 ‘예루살렘’ 사도들을 흠집 내거나 그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들을 “그 유력한 자들”이라고 부르면서 그 권위를 세워주고 있습니다. 그가 거부하고 있는 것은 “기둥”같은 사도들의 신분이나 지위에 관한 ‘갈라디아’의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6절에서 사도가 강조하려는 요지인 즉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그들이 누구이든, 과거에 어떤 지위나 신분을 누렸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사역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끼친 적도 없다는 점입니다. 이제 그는 7-10절에서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역할과 관련해서 정 반대의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6절에서 이들 사도들이 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밝히고 있다면, 7-10절에서는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한 일, 즉 ‘예루살렘’ 방문의 궁극적인 결과에 대해서 사도는 이 단락의 끝 부분에 가서 밝히고 있습니다만(9절하-10절), 그 전에 먼저 그러한 결과에 이르게 되는 배경과 근거를 소개하는 것으로 두 번째 단락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7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은 것과 같음을 보았고, (8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상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7-9절상)
다시 한 번 8절에서 괄호로 처리된 부분을 만납니다만, 전체적인 의미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사도들은 자신들이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기초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받아들이게 됩니다(9절하-10절). 그런데 문제는 과연 언제,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사도 자신의 소명에 관해서 듣고 난 뒤였습니까(1:11-12)? ‘바울’이 ‘시리아’와 ‘길리기아’에서 사역할 당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듣고 난 뒤였습니까(1:23-24)? 아니면 사도가 그들과의 사적인 회합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 뒤였습니까(2:2)? 이를 밝히기는 불가능합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이상에서 언급한 그 모든 사실들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림에 있어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루살렘’ 사도들이 먼저 깨닫게 된 사실이(본 것은) 7절하-8절 사이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평소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어휘와는 다소 다른 표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첫 번째가 “할례자를 위한 복음”과 “비 할례자를 위한 복음”에 대한 그의 발언입니다. 이는 “다른 복음”은 없다는 그 자신의 주장과는(1:6-9; 2:11-16) 동떨어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곳에서만 유일하게 ‘게바’가 아닌 ‘베드로’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7-9절 사이의 전체 내용을 삭제해 버려도, 6-10절 사이의 문장은 그대로 보존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대답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첫 번째 질문과 관련해서,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두 복음의 내용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대상과 전략의 차이일 것입니다. 그리고 ‘게바’와 ‘베드로’의 차이에 대해서도 별다른 구분 없이 그저 바꾸어가면서 불렀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바대로 따랐을 수도 있습니다(그는 때때로 자신이 의도하는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어휘나 표현을 그대로 차용하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사도들은 ‘바울’의 이방인 선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7절), 그가 받은 “은혜”를 인식하기에 이르렀습니다(9절). 바로 이 점이야말로 사도가 그의 반대자들과의 논쟁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일 것입니다. 이 은혜는 그냥 일반적인 의미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7-8절의 내용 자체만으로는 다른 사도들도 이 부분을 명시적으로 인정했는지, 그를 사도로 불러주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그런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다만 ‘예루살렘’ 사도들이 받아들였던 사실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유대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바울’ 역시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사도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세 사도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 이제 비로소 그동안 사도가 사사로이 만났다는 ‘예루살렘’의 유력한 자들이(2절) 누구인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들 세 사람이 등장하는 순서에 대해서 이런 저런 논의를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곳에서는 생략하기로 합니다. 참고: R. N. Longnecker, 56-57쪽.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바울’ 서신에서 사도 ‘요한’을 언급하기는 이곳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야고보’는 앞에서 밝힌 바 있는 ‘예수’님의 동생일 것입니다.
이제 사도는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방문의 결과, 즉 교회의 공식적인 반응을 소개함으로써, 여섯 번째 알리바이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9절하)
“친교의 악수” 즉 “오른 손을 내어주는” 행위는 당시 관용적인 표현으로서 단순히 서로를 인정하거나, 또는 우정을 과시하는 것 이상을 말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언약 의식입니다. 이런 행위를 통해서 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믿음과 동역 의식을 확인하게 됩니다. 서로는 동일한 언약 하에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상대에 대해서 주장하거나 요구하는 태도를 가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실을 놓고 엄숙하게 합의하고 인준함으로써 각자 언약의 요구 사항 아래 자신을 놓습니다. R. N. Longnecker, 58쪽; H. N. Ridderboss, 90쪽.
그들이 합의한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에게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9절하)
그들이 이해하고 합의한 사항이란 요약하자면, 하나의 신학에 두 개의 선교전략이 있을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합의는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우리”와 “그들”은 일차적으로 선교해야 할 대상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호 교차적으로 선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합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 선교를 해서는 안 되며, ‘예루살렘’ 사도들은 이방인 선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도가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10절)
이 구절은, “다만”이라는 부사의 사용에서 보듯이, 앞에서 이루 합의 내용에 포함되는 단서조건이라기보다는 추가적인 합의 사항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위에 합의한 것 외에 내가 그들의 요청에 한 가지 더 추가로 양보를 해준 것이 있지만, 그것은 나의 반대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것도 그들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탁에 의해서 양보한 것임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부탁한 것이란 다름 아닌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말고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즉 ‘바울’이 이방인 선교를 위해 행사하고 있는 그 자유를 가난한 ‘유대’인 형제들을 위해서도 행사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의 요청이 있기 오래 전부터 이미 이 일을 해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10절하). <사도행전>이나 <서신서> 여러 곳에서 이방인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구제 헌금을 거두는 것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롬 15:25; 고전 16:1; 고후 8:1; 9:1; 행 11:29; 12:25; 24:17). 이는 그만큼 ‘예루살렘’의 형편이 어려웠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고후 8:14). 일례로 <사도행전>에서는 ‘글라우디우스’ 황제 당시 닥쳤던 큰 기근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이른바 “기근을 위한 특별 모금”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기도 합니다(행 11:29). ‘바울’은 이런 일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 15:27). 그는 가난한 동족을 돕는 일에는 그의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교훈과 적용
필자가 잘 아는 후배 교수 이야기입니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기독 서클인 CCC에 가입하였고, 그곳에서 한 자매를 만나 결혼까지 하였으며, 그 후 지금까지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되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바울’을 사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약>에서 네 복음서나 다른 책들은 다 믿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바울’의 <서신서>들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문제를 자기 교회 목사님과의 성경공부 시간에 여러 차례 제기한 적이 있었고, 필자에게도 두어 차례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교회 목사님도 그랬겠지만, 필자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를 설득하려고 했습니다만 별 도움이 되지 못한 듯합니다. 그는 아직도 이 문제를 가지고 힘든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갈라디아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소위 “유대주의자”의 후예로 보아야 할지 난감합니다만, 본인 스스로는 절대로 그런 유의 사람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말이라곤 함께 성경공부를 좀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가 전부였습니다. 혹시 하나님의 계시나 은혜로 그가 새로운 눈을 뜨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이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그의 신분과 가르침을 인정할 수 없다고 야단들이었으니 말입니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필자의 후배 교수가 지닌 불신은 개인적이며, 지적인 회의나 고민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반면, ‘바울’의 반대자들은 공개적으로 그를 비방하고 중상모략하면서, 새로 태어난 교회를 넘어지게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도 친분이 있으며, 그들의 인정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강력한 대적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이에 사도는 그의 여섯 번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도 네 번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방문에 관한 것입니다만, 이번 방문이 두 번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여섯 번째 이야기를 포함해서 그동안 사도가 자신을 변론하기 위해서 들려 준 모든 이야기들이 필자가 방금 언급했던 후배 교수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게 합니다. 이 사람 역시 오래 동안 교회의 일원이었으며, 신앙에 필요한 웬만한 지식쯤은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사도가 역설하고 있는 바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서) 십사 년 후에. 무엇보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십사 년 동안 단 두 번밖에 찾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선언은 실로 놀라운 것입니다. 왜 이 선언이 놀라운 것일까요? 신앙과 신학의 진원지요 중심이며, 그의 반대자들이 그토록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들을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 이 기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만난 적이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발언은 자기의 경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앞세우며 덤비는 그의 반대자들의 공세에 대처하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발언인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리한 선택을 자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다만 ‘바울’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대상은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이 아니라, 이들 사도들을 필요 이상으로 대단하게 여기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의 태도인 것입니다. 그는 이들의 이런 태도에 대해서 냉소와 조소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두 번째 방문에서 그는 혼자 가지 않고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갔습니다. ‘바나바’는 전형적인 ‘유대’인이었고, ‘디도’는 이방인입니다. ‘바나바’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만, ‘바울’이 왜 ‘디도’를 데리고 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이 두 번째 방문이 <사도행전> 15장에서 다루고 있는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디도’를 데리고 간 것은 그 회의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쐐기를 박기 위한 의도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디도’를 데리고 간 것은 ‘마르틴 루터’(M. Luther)가 주장하고 있는 바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고 있는 자신의 자유를 과시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유대’인 ‘바나바’는 물론 이방인 ‘디도’와 함께 그 자리에 나타난 것 자체가, 그가 ‘유대’인 가운데서는 ‘유대’인이 되고, 이방인 가운데서는 이방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몸소 보여준 셈입니다. 따라서 “그의 복음”에 따르면, ‘유대’인으로서 할례를 받을 수는 있으나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유진 피터슨’ 목사님도 ‘디도’와 관련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이 값없이 받아 주시는 것에 대해서 이런 저런 전제 조건을 달려하는가? 왜 우리는 하나님의 받아 주심이, 그저 값없이 주시는 행위라고 선언할 수 없는가? 우리가 서로를 부분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 서로를 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사실은 거부나 마찬가지다. 그런 식의 받아들임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선물이 아니라, 어떤 길을 따르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내미는 당근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조건부 받아들임이 교회 안에서 너무 많은데 놀랄 뿐입니다: “옷은 이런 식으로 입으라.”; “기도는 이렇게 하라.”; “예배는 이런 식으로 하라.” 필자가 ‘대구 버클랜드 침례교회’에서 공동 목회자로 섬길 당시 동료 목사들과 사모들이 필자에게 이런 식으로 요구해 왔습니다. 필자는 그런 정해진 틀에 맞출 수 없었고, 결국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바울’ 역시 틀에 맞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실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역시 자신이 누리는 그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계시를 따라. 그는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독단적으로 계획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계시가 정확하게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 알기는 어렵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방문이 ‘예루살렘’ 교회의 요청이나 또는 그 권위에 승복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가 한 일은 “그들 앞에 복음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복음”은 지금 현재 사도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고 있는” 그 복음으로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결 같이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만남이 필요했습니까? ‘예루살렘’ 교회의 승인이 없다고 해서 ‘바울’의 선교나 그의 복음이 무위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어렵게 만들 것만은 분명합니다. 복음의 본질에 있어 ‘바울’과 ‘예루살렘’ 사도들이 분열한다면, 이방인 선교는 물론 유대인 선교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 교회의 연합은 교회의 다양성만큼이나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구제 헌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그토록 애쓰는 사도의 모습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기도 합니다. 사도가 자신의 권위나 복음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없었으면서도, 그토록 두려워했던 바도 바로 이점 즉 “교회의 연합”이 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방문의 결과
방문의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까? 사도는 방문의 결과를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언급으로써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부정문으로, 또 한 번은 긍정문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그들이 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언급이라면, 두 번째는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인지에 관한 언급입니다.
그들이 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그들이 누구이든, 과거에 어떤 지위나 신분을 누렸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사역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끼친 적도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친교의 악수”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친교의 악수” 즉 “오른 손을 내어주는” 행위는 당시 관용적인 표현으로서 단순히 서로를 인정하거나, 또는 우정을 과시하는 것 이상을 말합니다. 그들은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상호 인정하고 합의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들이 이해하고 합의한 사항이란 요약하자면, 하나의 신학에 두 개의 선교전략이 있을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것이었습니다. 즉 “우리”와 “그들”은 일차적으로 선교해야 할 대상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호 교차적으로 선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합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인 선교를 해서는 안 되며, ‘예루살렘’ 사도들은 이방인 선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누구든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사역을 발전시킬 자유가 있고, 하나님 앞에서 독창적인 사역을 할 자유가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교회에는 늘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는 길이 목사나 선교사, 신부나 수녀가 되는 것이라고, 혹은 의료직이나 사회사업이나 교육계에 관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정확하게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우리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못한다. 우리 각자는 독특한 은사를 가지고 있으며, 선례가 없더라도 주의 사역에 그 은사를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저항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다만 한 가지 힘없고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을 무시하거나 잊을 자유는 없다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사도가 추가로 합의한 내용입니다. 사도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위에 합의한 것 외에 내가 그들의 요청에 한 가지 더 추가로 양보를 해준 것이 있지만, 그것은 나의 반대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것도 그들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탁에 의해서 양보한 것임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부탁한 것이란 다름 아닌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말고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즉 ‘바울’이 이방인 선교를 위해 행사하고 있는 그 자유를 가난한 ‘유대’인 형제들을 위해서도 행사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은 이들의 요청이 있기 오래 전부터 이미 이 일을 해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동족을 돕는 일에는 그의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바울’의 자유는 종교나 의식으로부터의 자유였던 것이지 윤리나 도덕적 원칙으로부터의 자유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에서 가난한 공동체 회원을 위해서 그들의 재산을 일부 공유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교인들이 내는 헌금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교회> 역시 헌금을 어디에 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한 번 결정을 내리고 나면 계속해서 해야 한다는 문제 때문에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 때문이기도 하지만, 헌금의 일차적인 순위 또는 사용처는 공동체 내의 가난한 자를 위해서 쓰는 것이 옳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되 더욱 풍성히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풍성함”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한적이거나, 따분함이나, 무기력함과는 거리가 있는 단어입니다. 사도는 이 본문에서 우리가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저항할 자유”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풍성함”은 우리의 삶이 창조적이고 독창적이 될 자유를 염두에 두는 말입니다. 사도는 자신의 이방인 선교가 바로 이 자유, 즉 “사역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의 자유가 윤리나 도덕적 원칙으로부터의 자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토의 문제
1. 사도가 들려주는 여섯 번째 ‘알리바이’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2. 사도가 결코 양보할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며, 타협하고 합의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3. 내가 누리는 “풍성한 삶”에 대해서 토의해 봅시다. 그리스도인의 “창조적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 한계는 무엇입니까?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