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제7과
간증과 변론 (5): 안디옥 에피소드
김태정 목사갈라디아서 2:11-14약 26분 분량
제 7과: 안디옥 에피소드
7
간증과 변론 (5):
안디옥 에피소드
(2:11-14)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2:14하)
사도가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자전적 이야기, “안디옥 에피소드”는 그 기능하는 바에 있어 앞선 이야기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의 반대와 도전을 제압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있습니다. 동시에 본문은 문학적으로 교량(橋梁) 내지는 전이(轉移)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도는 본문 이후부터 <갈라디아서>의 핵심 내용을 이루는 “복음과 율법”에 관한 대 강좌(大講座)를 펼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적 양식에 있어서도 “이야기”(narratio)에서 “해설”(propositio)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사도는 서신의 벽두에 자신의 소명과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다른 사도들을 비롯한 사람들의 가르침이나 위임을 통해서 온 것이 아님을 선언한 바 있습니다(1:11-12). 그리고 이 선언을 지지해 줄 일련의 ‘알리바이’들을 법정 진술의 형식으로 제시해 왔는데, 특히 직전의 이야기 즉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이야기에서는 그 유명하다는 ‘예루살렘’ 사도들과 합의까지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2:1-10).
이제 이 마지막 이야기에서 교회의 수장(首長)에 해당하는 ‘베드로’가 그 중요한 합의에 반(反)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복음을 위기에 빠뜨렸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입니까?
문학과 역사
흔히 “안디옥 에피소드”로 부르는 본문은 사도가 자기변호를 위하여 들려주는 일련의 자전적(自傳的) 이야기(1:11-214)의 마지막에 해당됩니다. 사도가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때마다, 연속성과 일관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동안 사용해 왔던 동일한 접속사-“그리고 나서”-가 이번 이야기에는 없습니다. 대신 어떤 불특정 시간을 뜻하는 새로운 접속사 “할 때”(o{te, 호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2:11상)
이런 차이 때문에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건이 “예루살렘 방문”(2:1-10) 이야기보다 오히려 먼저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정 반대의 입장 즉 그 이후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Longenecker).
본 사건이 일어난 시점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정작 이 사건의 배경이나 상황과 관련하여 본문을 통해서나 역사적으로나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본문에 대한 이런저런 해석들이 대부분 추측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복잡한 사건이었기에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기에 이르렀을까?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안디옥’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베드로’가 ‘안디옥’에는 언제 그리고 왜 왔을까? ‘베드로’와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식사를 하다말고 물러난 사실이 그들 자신은 물론 ‘바울’에게 어떤 신학적 문제를 야기 시킨 것이었을까? ‘바나바’의 입장은 왜 중요했을까? 이 논쟁에서 승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의 ‘안디옥’ 교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불행하게도 이 모든 질문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답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임스 던’(James. Dunn)이 지적한대로, “안디옥 에피소드”는 <신약>에서 가장 감질 나는 이야기 중의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만일 이 사건의 전모와 그 이후 미친 영향 등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초기 기독교 발전을 이해하는데 있어 귀중한 정보와 통찰력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의 첫 5 세기동안 내놓으라 하는 신학적 대가들이나 이단 및 이교도 저술가들이 “안디옥 에피소드”에 대해서 저마다 내놓은 해석들이 실로 다양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이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에비온’파(the Ebionites)는 이 이야기를 ‘바울’을 공격하기 위한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에비온’파는 ‘유대주의’적 입장을 고수했던 일단의 무리로서, ‘예수’를 ‘유대’인의 한 선지자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반면 ‘마르시온’파(the Marcionist)는 정반대로 동일한 이야기를 ‘베드로’를 비난하기 위한 근거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마르시온’파는 영지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일단의 학파로서, <구약>을 거부하고 <신약> 가운데서도 <바울 서신>을 비롯한 11권의 책만 인정했습니다.
한편 2세기 후반의 이교도 저술가였던 ‘켈수스’(Celsus)나 ‘포르피릴’(Porphyry; c. 230-305) 등은 ‘바울’과 ‘베드로’가 부끄러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전제 하에 기독교 전체를 매도하기 위한 근거로 “안디옥 에피소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들 이단이나 이교도 저술가의 입장 외에도 소위 정통 기독교 신학 내에서도 입장이 갈리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스’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터툴리안’(Tertullian)은 ‘마르시온’파를 반박하면서도, ‘베드로’를 비난하는 ‘바울’에 대해서는 반응이 지나쳤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는 이야기 속의 ‘게바’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오리겐’(Origen)이나 ‘크리소스톰’(Chrysostom)이나 ‘제롬’(Jerome) 등은 이 이야기가 ‘유대’주의를 보다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하여 ‘베드로’와 ‘바울’ 사이에서 꾸며낸 것이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Augstine)는 이런 해석을 반박하면서, “안디옥 에피소드”야말로 신분이나 지위를 초월하는 진리 선포의 한 전형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 속에는 교회 수장(首長) ‘베드로’의 실수, 이를 지적하고 책망하면서 복음을 변호하는 ‘바울’, 그리고 나이에 있어서나 교회 내의 신분에 있어 선임자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겸손한 ‘베드로’의 모습 등은 이런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들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견해들이 이런저런 수정이나 재해석을 통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도가 들려주는 “안디옥 에피소드”를 재구성해보면 대략 다음 다섯 단계에 걸쳐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1) ‘예루살렘’으로부터 대표단이 방문하기 전 이방인 신자들과 더불어 애찬(愛餐)을 나누는 ‘베드로’;
(2) ‘예루살렘’으로부터 대표단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슬그머니 물러나는 ‘베드로’;
(3) ‘베드로’에 이어 같은 행동을 보이고 있는 ‘유대’인 형제들과 이에 동참하는 ‘바나바’;
(4) ‘베드로’와 ‘바나바’의 행동을 위선적이며, 비겁한 행동으로 규정하는 ‘바울’;
(5) ‘베드로’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을 하고 있는 ‘바울’.
‘베드로’와 ‘바울’이 ‘예루살렘’ 회합에서 서로 “친교의 악수”을 나누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2:7-10), ‘바울’이 ‘베드로’를 비난하고 있는 이 장면은 일견 모순되거나 적어도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에피소드”를 그의 마지막 이야기로 전해주는 사도의 의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무엇입니까?
신학과 신앙
앞에서 간략하게 언급하였듯이, “안디옥 에피소드”는 기독교 초기 역사와 성경 해석사(解釋史)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바 있습니다. 누구나 인지할 수 있듯이, 본문 이야기는 그 자체로서 교회의 수장 ‘베드로’의 권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자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 교회를 비롯하여 일단의 교부들은 ‘게바’가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칠십 제자 중에 속해 있던 동명이인(同名異人)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루터’(M. Luther)에게 있어서도 이 문제는 결코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율법과 관련하여 이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사건은 기독교 초기 역사를 재구성함에 있어 반기독교적인 편견을 가진 진영에게는 더할 수 없는 호재(好材)가 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바울’의 비타협적인 태도나 두 사도 간의 갈등과 충돌을 필요 이상으로 확대할 경우 도달하게 될 결론은 뻔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오늘날까지 ‘튀빙겐’ 학파(the Tübingen school)를 비롯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진영에 가담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모든 해석들은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근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이들의 주장을 지지해주는 증거 본문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안디옥 에피소드”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의문은 이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게바’가 ‘안디옥’을 방문한 시점이 분명치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11절상)
이 구절에서 보듯이 시제 접속사는 불분명한 시점을 드러내고 있기는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혹자는 이 사건이 역사적으로 ‘바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2:1-10) 이전에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동안 연속적으로 사용해 오던 접속사 “그리고 나서”(1:18, 21; 2:1) 대신에 애매하게 “...할 때에”를 사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정 반대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 “예루살렘 공의회”(행 15)를 위한 방문이었든 또는 “기근 시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한 방문”(행 11)이었든 개의치 않습니다. 이 두 번째 입장을 지지한다면, “안디옥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아마도 ‘바울’과 ‘바나바’가 “제 1차 선교여행”(행 13:4-14:25)에서 ‘시리아’로 돌아온 이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그들이 선교여행으로부터 ‘안디옥’으로 돌아와 “제자들과 함께 한참을 머문” 시점에서부터(행 14:26-28) “예루살렘 공의회”(행 15:1-29) 참석을 위하여 떠나는 시점 어디쯤 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번째 입장을 지지해 주는 증거는 본문에서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즉 11절이 “그러나”(δέ)로 시작하고 있는데, 한글 성경에는 이 접속사의 의미가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이 접속사는 “단절”과 “연속”이라는 이중적인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절”이라 함은, 이제 본문에서 다루게 될 “안디옥 에피소드”(2:11-14)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예루살렘의 대타협”(2:7-10)과는 날선 대조를 보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연속”이라 함은, “안디옥 에피소드” 역시 원래의 목적 즉 ‘바울’과 ‘예루살렘’ 사도들 간의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에 충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논리적으로 ‘게바’는 ‘바울’로부터 책망을 받기 전에 이미 ‘안디옥’에 와있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가 ‘안디옥’에는 언제 그리고 왜 왔는지에 대해서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가 ‘안디옥’의 첫 번째 주교(主敎)였다고 하는데, 신학적으로는 유용한 이론이긴 하나 역사적인 증거는 불충분한 실정입니다. 물론 ‘안디옥’ 교회는 ‘바울’이 그곳에서 선교 활동을 하기 전에도 이미 있었고(행 11:19-26), ‘바울’ 당시 유대 배경을 가진 그리스도인들도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그렇지 않다면 “안디옥 사건”이 일어났을 리도 없었겠지요), <사도행전>에서는 이 지역을 ‘바울’의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로 그리고 있으며, <이그나티우스 서신>에서도 그 지역 ‘기독교’는 특성 상 “바울적”이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게바’의 안디옥 방문은 주교로서의 방문이 아니라, ‘바울’이나 그 지역 ‘그리스도’인 모두 잘 알고 있었던 방문이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유대인이나 기독교도나 할 것 없이 ‘예루살렘’과 ‘안디옥’을 왕래하는 일은 아주 흔하고 빈번했을 것입니다(행 11:19-26, 30; 15:1-4, 22, 30; 18:22). 그렇다면 ‘게바’의 방문도 단순한 방문이었을까? 아니면 ‘예루살렘’ 교회에 불어 닥친 핍박을 피하기 위함이었을까(참고, 행 12:17)?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격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 섞여 있는 하나의 교회였는지, 여러 개의 교회가 있었는지, 또는 이방인 따로 유대인 따로 모이는 두 개의 교회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추측컨대 유대인들과 이방인 섞여있는 여러 개의 교회가 산재해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한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른 교회들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입니다(Longenecker).
베드로의 행위(11-13절)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베드로’가 무엇을 잘못했으며, 왜 그렇게 행동했으며, 그가 끼친 영향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11절하)
‘베드로’가 한 행동은 한글 성경에서 번역하고 있는 바처럼 단순히 “비난”이나 “책망”받을 정도가 아니라, 원어에 따르면 “(하나님 앞에서) 저주(정죄)를 받을 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일부 영어 성경에서도 ‘베드로’의 행동에 대해서 “견책” 내지는 “비난” 정도의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1) I withstood him to the face , because he was to be blamed(KJV); (2) I opposed him to his face, because he was clearly in the wrong(NIV).
이 표현은 상당히 강력한 것입니다. 바로 이 표현이 ‘에비온 파’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해석으로서, ‘바울’을 배척하고 공격하는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베드로’에 대한 ‘바울’의 공격은 과도하다는 것이겠지요.
‘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 ‘베드로’의 행동이 왜 “정죄 받아” 마땅한 것이었습니까? 사도는 상황 묘사와 함께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12절)
여기서 ‘야고보’는 예수님이 분명하며, 주후 40 년경부터 순교할 때까지(주후 62년) ‘예루살렘’ 교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 정황들로 미루어 보건대,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낸 대표자들로서 ‘안디옥’ 교회에서의 신앙의 행습에 관하여 모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염려하고 있는 바를 전달하기 위하여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Longenecker).
이들이 와서 이런 문제를 언급했을 때 ‘베드로’가 보인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이방인 신자들과 함께 하던 식사 자리에서 “물러난”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바울’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기독교인들과 식사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안디옥’에 온 이후 계속 그렇게 해 왔다는 사실에 비하면 그의 이런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동사 “먹다”의 시제가 미 완료형이라는 사실을 통해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왜 식사를 하다말고 물러났을까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입니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도행전> 10-11장 사이에서 ‘베드로’는 두 번에 걸쳐 경이로운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 모두 이방인과 관계된 것들입니다(행 10:9-23; 10:24-11:18). 그는 어느 날 ‘욥바’의 집 지붕 위에서 환상 중에 하늘로부터 각종 불결한 짐승들(새, 짐승, 파충류)을 담은 보자기를 보았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이들을 잡아먹으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거절했으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을 세 번이나 들었습니다. 이 일이 있는 직후 ‘고넬료’가 보낸 전달자를 맞아 그의 집으로 갔을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았고, 이에 ‘고넬료’와 그의 온 식구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가 이 일을 통해서 깨닫게 된 사실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이방인에 대한 그의 입장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며, 예컨대 ‘안디옥’에서 이방인과의 식사를 하는 일도 그에게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 문제였을 것입니다. 이런 그가 이방인과의 식사 문제에 대해서 갑자기 입장을 바꾸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바울’이 전하고 있습니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할례자”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할례자”들이 정확히 누구인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능한 해석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할례에 대해서 민족주의적인 편견을 보이는 ‘유대주의자’를 포함하는 유대∙그리스도인들; (2) 같은 유대∙그리스도인들이기는 하나 민족적 편견이 없는 무리; (3) 단순한 ‘유대’인들 즉 비기독교 ‘유대’인들; (4) 이방인 ‘그리스도’인이긴 하나 ‘유대주의’적 사고와 생활 방식을 따르는 무리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들 “할례자”들이 유대∙그리스도인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입장에도 많은 의문이 남습니다: ‘야고보’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으로 인정받던 ‘베드로’가 무엇 때문에 이들 방문자들을 두려워했을까? 이들은 ‘유대’주의자였을까? 이들을 보낸 ‘야고보’ 역시 ‘유대’주의자였을까? 또는 자신들의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안디옥’ 교회와는 결별을 하겠다고 ‘베드로’를 위협하던 ‘예루살렘’ 교회 내의 보수적인 파벌이었을까? 요구 조건이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예루살렘’ 교회가 요청한 일련의 의식 및 윤리적 합의 사항(행 1520-21, 28-29)이었거나, 또는 ‘안디옥’ 교회에까지 미치는 ‘베드로’의 사도로서의 영향력 확대에 관한 문제였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가상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다면, ‘베드로’의 선택은 다분히 신학적인 동기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즉 그의 행동은, 비록 ‘바울’은 위선적이라고 몰아붙이고 있긴 하지만,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가 결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들 방문자들이 단순히 ‘유대’인들이었다면, ‘베드로’의 행동에 대한 설명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무관할 수없는 설명입니다. 즉 주후 40-50년대 당시 ‘유대’ 땅은 소위 열심 당원이 주도하는 배타적 민족주의적 열풍이 일던 시절로서, 이런 열광은 비단 ‘유대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유대∙기독교도 사이에서도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물론 이방인 기독교들에 대해서도 함께 어울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호감을 보이는 자들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보였음은 자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자연스럽게 배타적 민족주의와 결합하게 되고, ‘예루살렘’의 사도들이라 해서 이런 상황으로부터 결코 자유스러울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들 지도자들에게는 ‘안디옥’의 이방인 교회가 필요 이상으로 ‘유대’인들을 자극하는 일단의 신앙 행태를 보이는 것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통제나 규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이르렀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나리오를 전제로 ‘베드로’가 취한 행동을 새롭게 재구성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그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이방인과의 교제나 교류가 ‘예루살렘’의 열심당원들에게 전해져서 교회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깊어지게 되고, 그 결과 안디옥 교회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이 지역 이방인 선교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리를 뜬 것이라는 설명이 그것입니다. 이들이 누구였든, ‘베드로’의 동기가 무엇이었든, 그가 취한 행동은 전술적인 실수였습니다. 그 실수란 다름 아닌 신학과 신앙의 불일치를 말합니다. 즉 신학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고 자신도 옳다고 믿고 있었던 바를,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여, 포기하고 물러났던 행동이 그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실질적인 신앙의 행태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베드로’가 보인 행동은 결과적으로 심각한 신학적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것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식사 문제를 포함한 일련의 ‘유대’적 패턴을 따르지 않는 한, ‘유대∙그리스도’인들과는 ‘예수’ 안에서 진정한 하나 됨이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전제 하에서는 “바울의 복음”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당시 자신의 행동이 미칠 이처럼 심각한 결과에 대해서 인식했을 리가 없고,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가 당면하고 있었을 민족주의적 열풍과 ‘유대’인들을 향한 선교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취한 행동은 그 자신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13절)
여기서 “남은 유대인들”이란 ‘안디옥’ 교회의 유대∙기독교인들을 말합니다. 이들 역시 나름대로 어떤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했는지, 아니면 ‘베드로’ 사도에 대한 예우와 존경의 표시로 그렇게 했는지 분명치는 않습니다. 추측컨대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실 ‘안디옥’ 교회의 유대∙기독교인들로 말하자면 이방인과의 교제에 있어 ‘유대’ 지역의 민족주의적 ‘유대’인들에 비해 훨씬 자유스러운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을 것이며, 나름대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온 동료 유대인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그들 역시 ‘베드로’처럼 흔들리다 동일한 “위선”을 저지르고 맙니다. 사도는 이들의 행동 또한 “위선”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위선의 연쇄작용은 ‘바나바’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그리하여) ‘바나바’도”에서 ‘바울’ 사도의 고통과 배신감을 잘 느낄 수가 있습니다. ‘바나바’야말로 이런 일로 결코 넘어갈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바울’의 옹호자였으며(행 9:26-28), ‘안디옥’에서는 선배 기독교인으로 오히려 리더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이며(행 11:25-30), 제 1차 선교여행 시에는 그의 동역자이기도 했습니다(행 13:2-14:26). 그런 그마저 민족주의적 열광과 이념 앞에 흔들려 ‘베드로’의 행동을 따랐으니, 사도가 그의 이런 행동을 “위선”으로 부르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울의 반응(14절)
‘바울’은 이런 위선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 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14절)
14절은 강력한 대등 접속사 “그러나”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대부분 “그러므로”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도가 취할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 취한 행동과는(12-13절) 분명히 다를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행동을 취한 시점도 ‘베드로’를 비롯한 ‘안디옥’의 기독교인들이 취한 단 한 번의 “위선”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수차례 반복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난 뒤였습니다. 12-14절이 의미하는 바가 이런 것입니다.
이런 해석에 대해서 물론 의문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는 이런 위선이 계속해서 저지러지고 있는 것을 곧바로 개입하여 막지 않고 한동안 방치해 두었는가? 처음에는 자신조차도 이들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갈피를 잡지 못했단 말인가? 또는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기를 꺼려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안디옥’에 돌아온 뒤에 알게 되었을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 마지막 견해가 가장 그럴 듯해 보입니다(Longenecker). 만일 그렇지 않고, 사도가 처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한동안 침묵하고 있었다면, 그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들의 행동을 “외식” 즉 “위선”이라고 못 박았고,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는”(14절상)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가 취한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베드로’의 면전에다 대고 그를 비난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들은 단순히 유대∙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안디옥’ 교회의 모든 교인들을 망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공격한 사람은 이들 모두가 아니라 교회의 수장 ‘베드로’ 혼자였습니다. 사도가 극도로 실망한 대상은 단순히 ‘베드로’ 뿐만 아니라 ‘바나바’와 넓게는 ‘안디옥’의 모든 기독교인들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바울’은 왜 이처럼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베드로’에게 보이고 있습니까? 그가 결핍하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원리 때문입니다. 즉 그동안 ‘베드로’의 생활 방식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 하면서,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가 ‘유대’인답게 살지 못했다는 말은 ‘유대’법을 어기고 이방인과 교류하면서 식사를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고 했다는 말은 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떠난 행위로서, 이는 그들 역시 마찬가지 행동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런 행동은 단순한 자기모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허물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두 민족이나 두 계층이 있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교회는 둘이 되고, 복음도 둘이 되며, 믿음도 둘이 되는 것이지요. 사도는 이것을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훈과 적용
초대교회에서 교인들의 신앙의 행습 가운데 하나는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식사를 ‘아가페’ 즉 “애찬”(愛餐)으로 부릅니다. 이 자리에는 계급이나 신분을 막론하고 모두 모였으며,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러니 노예나 가난한 자들에게는 한 주간 내내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W. Barclay).
그러나 이 자리가 모두에게 즐겁고 유쾌한 자리만은 아니었습니다. 엄격한 유대인들에게 있어 ‘아가페’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죄악이며, 민족에 대한 배신행위입니다. 이방인들과는 사업은 물론 함께 길을 걸을 수도 없으며, 친절을 보여서도 안 되고, 집안에 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이방인 “지옥의 땔감”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민족적 편견은 비단 종교적인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영역에서도 소위 “열심당”(the Zealot) 등에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유대주의”도 실은 종교와 민족주의적 이념이 결합하여 낳은 일종의 사이비 종교였던 셈입니다.
“유대주의”적 광풍은 비단 “열심당원”이나 “바리새파”에게만 불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도가 된 자들에게도 민족주의적 압력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예루살렘’ 교회가 있는 유대 지역에서 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는 상대적으로 이런 ‘유대’적 편견이나 배타적인 민족주의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얼마동안인지는 몰라도 ‘베드로’ 사도는 이곳을 방문하는 동안 교회의 수장답게 이방인들과 자유롭게 만나고, 대화하며, “애찬”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보드라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전혀 거리낌이 없는 듯 보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는 하나이며, 복음은 ‘유대’인이고 ‘헬라’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미치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자유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한 일단의 형제들이 오기 전까지 만이었습니다.
베드로의 행동
행동. 이들이 왔을 때 그는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그의 자유는 흔들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바대로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해오던 것과는 정 반대로 행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그동안 자신이 해오던 생활 방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알고, 확신하며, 가르쳐 오던 그것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베드로’를 찾아온 사람들이 누구였기에 ‘베드로’와 같은 대 사도가 이런 행동을 했는가에 대해서 논의를 집중시키고 있지만, 이는 그렇게 중요한 논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들이 누구였든 무슨 주장을 했든, ‘베드로’는 이들에게 굴복하였고, 급기야는 자기모순에 빠져버렸습니다.
동기. 그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는 정말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일까요?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사도행전> 10-11장 사이에서 ‘베드로’는 두 번에 걸쳐 경이로운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 모두 이방인과 관계된 것들입니다(행 10:9-23; 10:24-11:18). 그는 어느 날 ‘욥바’의 집 지붕 위에서 환상 중에 하늘로부터 각종 불결한 짐승들(새, 짐승, 파충류)을 담은 보자기를 보았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이들을 잡아먹으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거절했으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을 세 번이나 들었습니다. 이 일이 있는 직후 ‘고넬료’가 보낸 전달자를 맞아 그의 집으로 갔을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았고, 이에 ‘고넬료’와 그의 온 식구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가 이 일을 통해서 깨닫게 된 사실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이방인에 대한 그의 입장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며, 예컨대, ‘안디옥’에서 이방인과의 식사를 하는 일도 그에게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 문제였을 것입니다. 이런 그가 이방인과의 식사 문제에 대해서 갑자기 입장을 바꾸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바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할례자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들 “할례자들”은 누구였으며, 그가 과연 무엇을 두려워했을까요? 참고: <신학과 신앙>
사도로서의 자신의 권위나 영향력이 줄어드는데 대한 두려움이었을까요? 이들 방문객들과 지나치게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오히려 ‘안디옥’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가 갈라지게 되어 그의 ‘유대’인 선교가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요? ‘베드로’ 자신의 입장을 들어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입니다.
결과. 그러나 이들 방문객들이 누구였든, ‘베드로’의 동기가 무엇이었든,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심각한 사실은 ‘베드로’의 행동이 혼자의 일로 끝나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그는 동료 기독교인들은 물론 ‘바나바’마저 흔들리게 했습니다. 그의 행동에 동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바나바’도 같이 행동했다고 함으로써 말할 수 없는 실망과 충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단순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전술적으로 일시 양보와 후퇴를 한 것으로 인정해 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드라도 그 전술은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베드로’가 보인 행동은 결과적으로 심각한 신학적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것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식사 문제를 포함한 일련의 ‘유대’적 패턴을 따르지 않는 한, ‘유대∙그리스도’인들과는 ‘예수’ 안에서 진정한 하나 됨이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전제 하에서는 “바울의 복음”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울의 행동
행동. 당연히 ‘바울’은 이에 대해 격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보인 행동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를 면전에서 공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조용하게 넘어가지도 않았고, 이전에 그를 만나 그랬던 것처럼 사적으로 만나 해결하려들지도 않았습니다(참고, 2:2). 양보와 타협의 대가답지 않는 사도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기. 어떻게 그가 교회의 수장인 ‘베드로’를 이처럼 몰아 부칠 수 있단 말인가? 왜 그의 성미를 조금 억제하지 못하는가? 평소 ‘베드로’와 무슨 원한이나 경쟁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왜 진리를 말하되 사랑 안에서 하지 못하는가? 왜 좀 오래 참으며 기다리지 못했던가? 그는 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단 말인가?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베드로’가 결핍하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원리 때문입니다. 즉 그의 생활 방식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 하면서,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유대’인답게 살지 못했다는 말은 ‘유대’법을 어기고 이방인과 교류하면서 식사를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고 했다는 말은 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떠난 행위로서, 이는 그들 역시 마찬가지 행동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런 행동은 단순한 자기모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허물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두 민족이나 두 계층이 있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교회는 둘이 되고, 복음도 둘이 되며, 믿음도 둘이 되는 것이지요. 사도는 이것을 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안디옥’에서 두 사람의 충돌로부터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지켜야 할 “복음의 진리”는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걸려 넘어진 무엇이었습니까? 사도가 그토록 치열하게 지키려 했던 대 원칙은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토의 문제
1. 사도가 들려주는 마지막 ‘알리바이’의 내용은 무엇이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2. 종교가 이념이나 사상과 결합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한 예를 들어 설명해 봅시다.
3. 나는 내가 지키지 못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지킬 것을 요구하지는 않습니까? 혹 있다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4. ‘바울’ 사도가 동료인 ‘베드로’에게 보이고 있는 이 행동은 과연 온당한 것입니까?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