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제4과
간증과 변론 (2): 회심 이전; 회심; 소명
김태정 목사갈라디아서 1:13-17약 22분 분량
제 4과: 회심 그 이전과 이후
4
간증과 변론 (2):
회심 이전; 회심; 소명
(1:13-17)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16하-17절상)
사도는 이 단락에서 그의 회심과 소명, 그리고 이를 전후한 그의 삶에 대해서 짧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회심하기 이전이나 이후 할 것 없이 그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섭리 하에 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인데, 이는 그가 “어머니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복음을 전하게 된 계기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리스도의 계시”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그가 전하는 복음이 ‘예루살렘’ 사도들로부터 전수받았거나 위임받았다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 부인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알리바이’ 때문인 것입니다. 회심을 전후해서 이들을 만날만 한 장소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지난 삶에 대해서 언급함으로써 그의 극적 회심과 소명에 대해서 밝히고는 있지만, 강조하고 싶은 핵심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복음과 관련해서 어느 누구를 만난 적도, 상의한 적도 없다는 사실입니다(16하-17절). 바로 이런 점에서 본문이 기능하는 바는 법정에서 흔히 사용하는 일종의 ‘알리바이’성 자기 변론입니다. 이런 식의 변론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1:18-24).
왜 사도는 이처럼 강력한 부정을 통해서 자신을 변론할 필요를 느꼈을까요? 그의 반대자들을 염두에 둔 발언임에 분명합니다.
문학과 역사
사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도직에 대한 논란과 그가 전하는 복음의 출처에 관한 논란이 그것입니다(1:1). 사도는 주제 선언에서 “그의 복음”이 사람들로부터 비롯되었거나, 사람들을 통해서 배운 것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1:11-12). 어떻게 그것을 입증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간증을 통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1:13-2:14). 예컨대, 유대주의자로서의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게 된 이야기, 회심과 함께 이방인 선교를 향한 소명, ‘예루살렘’ 방문 이야기,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그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갈라디아 교인들도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라는 말로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들었거니와...”(13절상). 그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란 좁게는 13-14절의 내용, 즉 사도가 회심하기 이전의 삶에 관한 이야기로 국한할 수 있겠습니다만, 보다 넓게는 1:13-2:14에서 밝히고 있는 그동안의 그의 삶 전체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사도가 이전에 ‘갈라디아’ 교인들과 함께 있을 때, 이 모든 일들에 대해서 세세하게 다 이야기해 주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만, 지금 다시 그간의 일들을 이처럼 상세하게 반복해서 들려주고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의 반대자들이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들을 날조하여 유포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를 반박하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전의 간증들을 다시 반복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가 본문에서(13-17절) 밝히고 있는 회심 이전의 삶과 회심에 이은 이방인 선교를 위한 소명에 관한 것입니다. 그가 원래 유대교인이었음을 먼저 밝히고 있는 것도 그를 향한 거짓 소문을 반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자신은 처음부터 이방인들에게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음”을 전하도록 준비된 자는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은 정반대였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철저하게 박해하고 파괴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을 정도로 유대교 광신자였다”고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해서 더욱 열심히 있었으나(13-14절)
주후 2-4세기경의 작품으로 알려진 일부 문헌에서도 ‘바울’은 유대∙기독교인들이 기피하고 혐오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습니다(Longenecker). 예컨대 「야고보의 승천」은 ‘바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폄하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소 사람이며 그의 부모는 모두 헬라인이다. 그러든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머물게 되자 그곳 (대)제사장의 딸과 결혼할 마음이 생겼고, 이로 인해 할례를 받고 (유대교로) 개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그는 격노하여 할례와 안식일과 율법을 거부하는 글을 썼다.
2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는 또 다른 책 「베드로의 설교」에서도 ‘바울’을 향해서 “불법적이고 어리석은 교리를 전하는 대적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작품에서 ‘바울’은 “전 세계를 향한 유대∙기독교의 선교를 단절시키는 자”로 비난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나 ‘야고보’ 사도들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시몬 메구스’(Simon Magus)와 같은 인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을 향한 이런 비난이나 공격이 1세기의 유대∙기독교의 한 종파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만, ‘갈라디아’의 유대주의자들 역시 이런 식으로 당시 교인들을 회유하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바울’이 자신은 원래 유대교인이었다는 점을 밝히면서 논쟁을 시작하고 있는 것도(13-14절), 반대자들의 이러한 시도 즉 유대인으로서의 ‘바울’의 삶과 경력은 무가치하며 별것 아니라고 하는 반대자들의 공략과 회유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어지는 회심사건이나 이방인 선교를 위한 소명에 관한 간증과 관련해서도(15-17절), 특히 반대자들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첫째는 ‘바울’의 신앙 고백은 인간적인 만남이나 가르침을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회심 이후 그의 활동에 관해서인데, 처음에는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졌으나 나중에는 그로부터 탈선해버렸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거짓 소문에 대해서 ‘바울’은 이방인 선교의 소명은 하나님의 예언적 계시에 따라 이루어진 초자연적인 사건이며, 이와 관련해서 ‘예루살렘’의 어떤 지도자들도 한참동안 만난 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15-17절)
신학과 신앙
회심 이전(13-14절)
‘알리바이’는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이 정당한 것임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사도는 자신의 입장을 먼저 밝힌 후(1:11-12), 자신의 입장이 정당한 것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자료들을 동원하여 ‘알리바이’의 자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서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으며, 그것도 그의 독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13절상)
이 구절은 실은 접속사 “왜냐하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해명성 발언에 적절한 접속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의 독자들이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란 무엇입니까? 구문론적으로 볼 때 이 동사는 13-14절만을 포함하고 있어, 사도의 회심 이전의 삶만을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의미론적으로 보다 포괄적으로 회심 이후 지금까지의 삶과 활동 전체를 지칭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참고, 1:13-2:14).
“유대교”란 “유대교적인 세계관과 행동 방식”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신약>에서는 13-14절에서 유일하게 두 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아마도 이방인들이 경멸하는 뜻으로 만들어낸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 유사한 경우로 ‘안디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르던 것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문헌에서도, 참고: <제 2 마카비서>(2:21; 8:1; 14:38); <제 4 마카비서>(4:26).
이 단어를 ‘헬레니즘’과는 대조되는 “유대교와 유대적인 삶의 방식”을 의미하고 있어, 그 유래가 어디든 적어도 유대인들에게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Longenecker).
사도는 이전에 그가 ‘유대교’인으로 있을 때 행한 일에 대해서 두 가지 예를 들어 그의 설명에 일관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13b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으나(13후-14절)
이 문장이 의미하고 있는 바는, “박해하고 멸하는” 사도의 행위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교회를 단순히 지역교회가 아닌(1:2, 22), 참고: 살전 1:1; 살후 1:1; 고전 1:2; 고후 1:1.
“하나님의 교회”로 호칭함으로써, 교회에 대한 그의 이해를 보다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문맥상 “하나님의 교회”(th;n ejkklhsivan tou' qeou)는 “유대교”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도가 이런 호칭을 통해서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분명해 보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자기 정체성은 당시 ‘유대교’의 그것을 뛰어넘는 보다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기인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가 박해한 교회는 주로 ‘유대인’들로 구성된 초기 유대∙기독교 공동체였음에도 주저 없이 “하나님의 교회”로 부르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인종과 지역의 벽을 뛰어넘는 우주적 교회에 대한 사도의 이해가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사도가 이러한 “하나님의 교회”를 왜 그처럼 광란에 가까울 정도로 박해하고 파괴하려했을까? 혹자는 그 이유를 ‘바울’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찾으려 합니다. 즉 바깥으로 드러난 살기등등한 모습은 실은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심과 갈등을 잠재우고 싶은 처절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상대를 누르기 위해서 그에 대해서 알아야 하듯이, ‘바울’이 신흥 종교 기독교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은 가졌을 것이고, 이에 종교적인 진지함이나 순교자적인 열정이 더하여 그를 고통스럽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회심을 설명하기 위한 이러한 심리적학적인 접근 방식은 오늘날 큰 인기를 얻고 있지는 못한 듯합니다. 오히려 더 나은 설명으로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만연해 있던 종교적 광신을 그 이유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바울’같은 종교적 순수성과 열정을 지닌 사람의 눈에는 새로 발흥하는 종교가 분파주의를 조장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이단으로 비쳤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이런 종교를 처단하는 일에 앞장선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사실은, 당시 ‘바리새 유대인’들에게 있어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는 일은 메시아의 시대를 맞이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었다는 점입니다. ‘바울’의 “광란”도 이런 맥락에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행동의 지표로 삼을 만한 예들이 <구약>이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 ‘모세’가 ‘바알브올’에서 음란한 이스라엘 인들을 처형한 사건(민 25:1-5); (2) 제사장 ‘비느하스’가 ‘모압’ 평원에서 ‘이스라엘’ 남자들과 ‘미디안’ 여자들을 처형한 사건(민 25:6-15); (3) ‘맛디아’와 ‘하시딤’이 그의 백성들 중에서 배교자들을 가려내 처형한 사건(마카비 1서 2:23-28, 42-48). 아마 ‘바울’의 귓전에는 이런 행동을 칭찬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민 25:11-13).
결론적으로 성경과 역사적 선례는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기대 심리 등이 한데 어우러져, ‘바울’로 하여금 배교자들을 색출하여 처형하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할 수 있게 했을 것입니다. 특히 그는 ‘메시아’의 도래를 앞두고 ‘이스라엘’은 율법에 대한 믿음과 충성에 있어 하나로 연합하여 순수함과 깨끗함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말할 나위 없이 바로 이런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칭찬을 듣는 일로 믿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두 번째 예로 제시하고 있는 지난 삶의 모습은 그가 동료 ‘유대인’들에 비해서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 동사는 원래 항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충돌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다”는 의미입니다. 이후 이 단어는 “영적∙도덕적 발전을 거듭하다” 또는 “배움에 있어 큰 발전을 이루다” 등의 의미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로 신약에서 사용되고 있는 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눅 2:52; 롬 13:12; 빌 1:12, 25; 딤전 4:15; 딤후 2:16; 3:9, 13.
본문에서 이 동사가 과거 진행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유대교’인으로서 ‘바울’은 영적∙도덕적으로 지속적으로 진전을 이루어 간 것으로 보입니다.
혹자는 사도가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다”는 고백을 두고, 그가 소위 “열심당”(Zealot)으로 알려진 극렬 ‘바리새파’에 속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나, 문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나치게”는 단순한 비교형 부사일 뿐입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은 그의 서신 다른 곳에서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고후 1:12; 7:13, 15; 11:23; 12:15.
그가 비교하고 있는 대상은 동 시대의 다른 유대인들로서, 엄격한 율법주의자 정도로 그를 이해하면 충분할 것입니다(참고, 행 22:3). 그리고 그가 말하는 “조상의 전통”이란 ‘유대 바리새’ 학파의 가르침이나 행습들로서 나중에 ‘미쉬나’(Mishnah), ‘미드라쉼’(Midrashim), ‘팔레스타인’이나 ‘바벨론’의 ‘게마라스’(Gemaras) 등으로 다양하게 분파해 간 전승을 의미합니다. 또한 ‘바울’과 동 시대의 회당에서 유래한 보다 대중적인 해석 체계도 그 속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인데, 현존하는 ‘타르굼’(Targumim)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인 즉은 그는 열렬한 ‘유대주의’자로서 신망을 얻고 있었으며(참고, 행 22:3; 빌 3:5-6), 그것을 버릴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회심(15-16절상)
그의 회심과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 사도가 간증하고자 하는 논지의 절정은 이 단락의 거의 끝부분에 가서야 드러나고 있습니다: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16하-17절상). 그러나 이처럼 강력한 ‘알리바이’를 펼치기 위해서, 그는 먼저 자신의 사역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긍정적인 톤(tone)으로 밝혀두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5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상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15-16절상)
그를 “부르고”, “택정하신” 이는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입니다. 이런 표현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부를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렘 1:5; 사 49:1-6). 사도가 자신의 사도직의 출처에 관해서 이런 표현을 차용하고 있는 것은 수차례 언급한 바 있듯이 분명 의도적인 것입니다. 사도는 <로마서>에서 그의 복음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미 예언 된 것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는데(롬 1:1), 이 논리를 조금만 연장하면 그는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이미 태어나기 이전부터 “선택”되었고 “소명”을 받은 자로서 이들과 같은 반열에 서 있는 것입니다. “선택”과 “소명”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는 선언은 이어지는 절정을 향한 토대와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회심 이후(16하-17절)
그 절정이란 두 번에 걸친 강력한 부정과 한 번의 긍정으로 이루어져 있는 ‘알리바이’입니다:
16하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16하-17절)
바로 이점이 사도가 강력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핵심으로서 회심 이후의 그의 행적에 관한 입증입니다. “혈육”은 원문에서 “혈과 육”으로 두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영어 번역에서처럼 단순히 “사람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이 구절은 따라서 그의 복음이 “사람들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11절의 선언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는 주장은 그의 복음이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는 12절의 선언에서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을 언급하면서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이라고 불러줌으로써, 그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열두 사도들과 같은 반열에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라비아로 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간증은 다소 애매모호합니다. 그가 정확히 ‘아라비아’의 어느 지역으로 갔는지, 그리고 왜 갔는지가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당시 존재하던 ‘아라비아’의 ‘나바틴 왕국’은 꽤나 넓은 지역에 걸쳐 있어, ‘요르단’ 계곡의 동쪽에서부터 남서로는 ‘사해’, 그리고 북동쪽으로는 ‘유프라데스’ 강까지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중에서 문화적 중심지로 왕국 남쪽의 ‘페트라’, 그리고 북쪽의 ‘보스트라’를 꼽을 수도 있겠지만, 이나마도 시대에 따라 ‘다메섹’과 같은 동쪽 ‘시리아’ 지역의 도시들이나 ‘요단’ 동편의 여러 도시들도 포함되기도 했기 때문에 위치 추정은 더욱 힘들어 집니다. 이 왕국은 주전 9년에서 주후 40년까지 ‘아레타스 4세’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의 재위 기간 동안 ‘다메섹’이 중심 지역이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참고, 고후 11:32). 왕국의 국경 역시 시대에 따라 변천을 거듭한 것으로 보이며, 사도가 “내가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는 언급에서 볼 수 있듯이 그가 서신을 쓸 당시에 ‘다메섹’은 더 이상 ‘아라비아’의 일부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가 간 곳이 ‘다메섹’은 아니었다는 사실 외에는 정확하게 그가 어디고 갔는지 알 길은 없어 보입니다. 나중에 그는 ‘시내 산’이 ‘아라비아’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어(4:25), 일부 학자들은 그가 간 곳이 ‘시나이’ 반도 부근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가 ‘아라비아’라고 할 때 아마도 ‘나바틴’ 왕국을 지칭한 듯 하며, 그리고 국경이 근처에 있다고 말한 듯합니다. 하지만 그가 ‘다메섹’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으로 갔는지 그의 짧은 선언을 통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은 그가 왜 그곳으로 갔는가 하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기로 이방인 선교를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듯한 추측은 또 있습니다. 즉 사색과 명상을 위한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그것입니다. 사실 그는 지난 삶을 돌아보고,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계시의 의미를 음미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유대교’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으로부터 될 수 있으면 멀리 벗어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나중에 “다메섹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언급은 <사도행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그의 회심과 소명에 관한 이야기를 간접적이긴 하지만 확인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참고, 행 9:1-22; 22:5-16; 26:12-20). ‘다메섹’은 주전 64년 이후부터 ‘시리아’에 있는 ‘로마’의 영지로서, ‘데가볼리스’로 불리는 열 개 도시 중의 하나로서 생활과 경제의 중심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현존하는 건축물이나 비명 등을 통해서 볼 때, 이 도시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광범위하게 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도시에는 ‘아랍’인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고, 한 때는 ‘아라비아’의 ‘나바틴’ 왕국의 통치 하에 들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유대인’들도 많이 있었는데, ‘요세푸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들 중 10,500여 명이 주후 66년 반 로마 소요 시에 ‘다메섹’ 사람들에 의해서 살해를 당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 도시로 ‘바울’은 공회의 허락을 받아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여 처단하러 떠났으며, 도중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그 도시에서 그가 처음으로 전한 ‘메시지’가 “예수가 곧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행 9:20-22). 그가 ‘아라비아’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곳도 바로 이 도시였다고 사도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라비아’나 ‘다메섹’은 어느 기준으로 보드라도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바로 이 부분이 그가 강조하고 싶은 점입니다.
교훈과 적용
회심 이전. 개인적인 간증은 때로는 강력한 복음 전도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그 간증이 극적인 변화를 수반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물론 이것이 복음 전도의 보편타당한 수단이나 방법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누구든 한두 가지 정도의 개인적인 <출애굽>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마땅히 그래야 할 것입니다. 극적인 변화로 말할 것 같으면 ‘바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셨다는 점에서 그의 회심은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맞먹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는 자신의 개인적인 ‘출애굽’ 에피소드를 먼저 언급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온갖 날조와 비방을 깨부수고 정당성을 확보하려 합니다.
그가 입증하고자 하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요약하자면, 자기가 전하는 복음은 결코 어느 누구로부터 전수받았거나 배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직접 받았다는 사실입니다(11-12절). 그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요? 즉 그에게 <출애굽> 즉 “하나님의 권능의 손길”이 미쳤다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 먼저 한 가지 합의해 두어야 할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든 하나님의 권능의 팔에 붙잡히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이런 합의가 가능할까요? ‘유대인’이라면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입니다. 십이 년 동안을 혈루증을 앓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졌을 뿐인데도 즉시 완쾌되었다는 이야기를 그들이 들어 알고 있든 모르든 상관없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족속입니다.
이런 합의를 바탕으로, 사도는 자신의 지난 삶이 어떠했는지 먼저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13-14절). 그가 ‘유대’인으로 살고 있을 때 자신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한 마디로 그는 1 세기의 ‘탈레반’이었습니다. 광신자였고, 전심을 바쳐 헌신했으며, 기독교인을 비롯한 이교도들은 멸망을 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며, 따라서 이들을 잡아 죽이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신의 소명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면서 그의 지난 행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기독교인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발견되는 대로 잡기 위해서 집집마다 돌아다녔고, 잡은 그들을 감옥에 넣었습니다(행 8:3). 이들을 죽이고자 할 때 찬성의 표를 던졌습니다(26:10). 단순히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아예 없애버리려고 돌아다녔습니다. 이것이 그의 지난 삶이었습니다.
회심(15-16절상).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인과율(因果律)은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로 시작하는 회심에 관한 간증은 이전의 삶에 대한 간증과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스토트’(J. Stott) 목사님은 이러한 대조를 다음과 같이 잘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죤 스토트, ibid.
즉 13-14절에서 사도가 자신에 대해서 말할 때,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다...내가 교회를 멸하려고 했다...내가 유대교에 열심이었다...내가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해 매우 열심이었다” 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심과 관련한 간증 문에서(15-16절상)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신 하나님”;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 “내 안에 그의 아들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 하나님”. 우리는 회심에서 밝히고 있는 하나님의 주도권과 은혜를 조금 더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신 하나님. 그의 회심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야곱’이나 ‘예레미야’처럼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사도가 될 자로 구별되어있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의 회심은 그 자신에게 속한 어떤 기질이나 특징과 상관없이 이루어진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었습니다.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 출생하기 전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사실은 역사적 소명으로 연결됩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과분한 사랑을 뜻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대항해서 투쟁해 왔습니다. 그는 자비를 받을 자격도 없었으며,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찾았고 은혜로 그를 불렀습니다.
내 안에 그의 아들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내신 것은 오직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이전에도 이 인물에 대해서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예수’는 사기꾼이었고, 미혹하는 자였습니다. 이런 지식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로부터 말미암은 것인가? ‘예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야말로 사람들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입소문이나 학교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계시를 통해서 ‘예수’에 관한 참된 지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의 구세주”요, “나의 주인”입니다.
회심 이후(16하-17절). 이것으로 사도의 ‘알리바이’는 충분하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회심 자체만으로는 그가 전하고 있는 복음이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에는 충분치가 않습니다. 회심 이후 다른 사도로부터 배웠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이 마지막 두 절은 사도가 제시하려고 하는 ‘알리바이’의 핵심이자, 절정이기도 합니다. 그가 말하고 싶은 요점은 이것입니다: “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어떤 사도들과도 복음에 관해서 논의해 본 적도, 배운 바도 없다.” 그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세 가지 알리바이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증거가 그가 ‘아라비아’로 갔다는 사실입니다(17절).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는 ‘다메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하면서 며칠을 보냅니다(행 9:20).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복음을 전하려고 선교사로서 그곳에 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크리소스톰’은 ‘바울’이 그곳에 있는 야만스럽고 미개한 종족들을 복음화 하려고 갔다고 말합니다만, ‘라이트푸트’(Lightfoot)가 쓰고 있듯이 “그의 아라비아 방문은 두껍고 어두운 베일에 쌓여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쩌면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가정을 상정해 봄으로써,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교훈으로 삼는 것도 전혀 무익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바는, 그가 ‘아라비아’로 간 것은 즉 사색과 명상을 위한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그것입니다. 사실 그는 지난 삶을 돌아보고,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계시의 의미를 음미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유대교’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으로부터 될 수 있으면 멀리 벗어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거기서 3년을 머물렀습니다(18절).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접촉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공 속에 그는 홀로 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함께 한 자가 있었다면 오직 그의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었습니다.
기독교 사역은 “관계의 사역”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중요한 간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를 물어야 할 때입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한 특별한 시간과 장소가 있습니까? ‘마르다’처럼 ‘그리스도’를 위해서 너무 바쁘게 일하느라 그분과 함께 할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닌가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이런 특별한 시간과 장소야말로, 나의 신학과 신앙을 폄하하거나 비방하는 나의 대적자들에 대한 변증에 필요한 기초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토의 문제
1. 본문의 문학적인 기능에 대해서 논의해 봅시다.
2. 본문은 그 형식에 있어 법정에서의 ‘알리바이’에 해당됩니다. 그가 제시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3. ‘바울’이 말하는 회심 이후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는 언급을 묵상해 봅시다.
4. 나의 개인적인 ‘출애굽 사건’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반대와 비방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