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나님, 그리스도, 교회
김태정 목사요 1:14-18약 9분 분량
<The Night>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198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의 대표작이자 자전적 장편소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열다섯 살 소년의 눈에 비친 ‘나치’ 강제노동수용소의 참상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화자인 “나”로 등장하여, 독일군이 자기 고향 마을 ‘시게트’를 점령하면서 시작된 운명의 장난을 독일군의 패배로 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아우슈비츠’ 수용소, ‘부나’ 수용소,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겪은 일과, 열차 이송 도중에 겪은 일을 섬뜩할 만큼 사실적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
호송열차 안에서 죽은 사람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열차 밖으로 내던지는 장면, 빵 한 조각을 차지하기 위해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광경을 보면서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디 계신가?” 하지만 이런 그도 정작 자기 아버지가 죽어갈 때에는 책임감을 감당하기 힘들어 그를 버리려고 마음먹기도 합니다. 그는 신앙심 깊은 유대인이었습니다만, 절대 악이 어둠처럼 휘감고 있던 절대 절망의 시간에 하나님을 향해서 이렇게 항변하고 있습니다:
어제 침묵을 지킨 사람은 내일도 침묵을 지킬 것이다. 16
왜, 내가 왜 하나님의 이름을 축복해야 하나? 내 속의 모든 세포가 반항했다. 수천 명의 어린이를 “그”의 공동묘지에서 불타게 했기 때문인가? 안식일이고 축일이고 없이 화장장 여섯 곳을 밤낮으로 가동시켰기 때문인가? 그의 무한한 힘으로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부나’, 그 밖에 많은 죽음의 공장을 만들었기 때문인가? 많은 민족 가운데 우리를 택해 밤낮으로 고문에 시달리게 하고 우리 아버지들과 어머니들, 그리고 형제들이 용광로에서 죽는 것을 지켜본 마당에 하나님에게 어떻게 축복받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126
사람은 하나님보다 강하고 위대하다. ‘아담’과 ‘이브’가 당신을 속였을 때 당신은 그들을 낙원에서 추방했다. ‘노아’의 세대에게 화가 났을 때 당신은 대홍수를 내렸다. ‘소돔’이 당신의 총애를 잃었을 때 당신은 하늘에서 불과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나 당신의 배반으로 날마다 고문당하고, 학살당하고, 독가스를 마시고, 산 채로 불태워지는 이 사람들을 보라.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신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다. 127
어제 대구에서 김 모 중학생이 동료 친구들의 집단 횡포와 억압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 아래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나이 불과 14세 밖에 되지 않은 중학생 아이들이 어쩌면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순진한 학생이 아니라 그야말로 마귀의 사악한 자식들이었던 것입니다. ‘가인’의 후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죽은 친구를 하루 24 시간 감시하며 잠도 못자도록 게임을 시키는가 하면, 온갖 어려운 요구나 명령으로 괴롭혀왔던 것입니다. 하루에 그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만 해도 40번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난 후 이들이 한다는 이야기가 참으로 우리의 피를 끓어오르게 합니다: “그를 괴롭힌 건 사실이지만, 그가 죽을 정도로 힘들어하는 줄은 몰랐다. 미안하게 되었다.” 이런 아이를 중학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괴롭힘을 당하던 아이가 죽으면서 남긴 유언에 보니, 부모님에게 아파트 문 잠금 번호를 아이들이 알고 있으니 이를 빨리 바꾸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 유서를 읽고 있는 그 부모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집단 따돌림으로 죽어가는 아이가 일 년에 백 오십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 학교가, 우리 미래가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서 정우 하사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서 하사는 지난 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휴가를 받아 인천행 여객선에 탑승하려다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해병 부대로 자진 복귀하던 중 파편에 사망했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미니홈피는 그대로 남아있었던 모양으로, 서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여사가 얼마 전 아들의 홈피에 글을 남겼습니다.
우리 아들 정우야. 오늘은 엄마가 마음 한편으로는 너를 이렇게 이 세상에서 살지 못하게 한 우리의 원흉 김정일의 사망 소식에 기쁘면서도... 몇 년 만 빨리 김정일 사망했다면 정우 네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았을 건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연평도, 천안함 당시는 조문은커녕 위로의 말 한 마디 안하던 사람들, 북한 눈치 보면서 한 마디도 안 하던 사람들이 김정일 죽음에 조문하는 게 도리라고 한다. 너도 억울하지? 우리가 억울하게 희생할 때에는 국화꽃 한 송이 올려놓지 않더니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이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흔히 진보로 자칭하며 스스로 속고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종북, 좌파들의 4대 원수가 있습니다(김홍도 목사). 첫째가 미국입니다. 그리고 둘째가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셋째가 재벌들입니다. 여기까지는 이념적 차이로 볼 수도 있어 그런대로 참고 견딜 만 한 합니다만, 네 번째가 문제입니다. 사실 네 번째가 아니라 첫 번째가 되어야 할 것인데, 다름 아닌 기독교입니다. 그런대도 이 나라의 소위 많은 기독교인들조차 그들이 타도하고 고쳐야 할 대상이 타락한 교회라고 하지, 3대에 걸쳐 세습을 이어가고 있는 김일성 왕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념이라는 아편에 취해있는 것이지요. 역설적으로 그들은 종교를 인류의 아편이라 말합니다.
김정일이 누구입니까? 도대체 역사와 현실을 몰라도 이렇게 모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나는 감히 묻습니다. 십여 년 전 서해교전 때나, 천안함과 연평도 피격 시에 전사한 우리 조국의 영웅들과 그들의 유가족을 위해서 단 한 푼이라도 성금을 보내신 적이 있습니까? ‘사탄’은 침묵하고 무기력한 자를 총애합니다. 딸 ‘디나’가 이방인에게 무참히 강간을 당했는데도 애비 ‘야곱’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습니다. 뚜렷한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않은 나약한 교회와 교인을 아주 우습게 여깁니다. ‘바벨론’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조롱하며 물었습니다: “너희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그가 너희를 버린 것이 아니냐?”
즐거운 성탄일에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했습니까? 아주 즐거운, 너무 감격적이라 한 가족조차도 감당할 수 없었던 한 사람 이야기를 오늘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박돈희 씨입니다. 이분의 별명은 “영등포 국밥 산타”이며, 직업은 목사입니다. 이분은 한 때는 아주 잘나가는 교회의 담임 목사였으며, 근사한 아파트와 아주 비싼 차, 그리고 아내와 두 딸을 가진 아주 행복하고 축복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분이 어느 날부터 노숙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주 교인들과 함께 김밥을 싸서 영등포 역사로 가서 그곳에서 노숙하던 사람들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러던 것이 점차 규모가 커져서 김밥이 국밥이 되고, 처음 수십 명이 수백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입니다. 교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가까운 사람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적당히 할 줄 모르는 그를 보고 가족들도 처음 한 동안은 말리다가 결국 부인과도 다툼 끝에 이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충격으로 왼쪽 귀가 멀었습니다. 이후 박 목사는 아예 모든 것을 다 던지고, 영등포 역 건너편 가난한 동네에 집을 얻어 노숙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곳에 노숙인 교회를 세웠습니다. 지금 이 사역을 하는데 필요한 한 달 예산이 2000만 원 정도인데 70-80명이 정기적으로 후원을 해주어서 계속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후 선배 목사들의 소개로 재혼도 하고, 아들도 생겼는데, 이 아이는 자기들이 낳은 아이가 아니라 도봉산 계곡에 버려져 있던 것을 등산객이 발견하여 고아원에 맡긴 아이인데 이분이 입양하여 키우고 있다 합니다.
박 목사님은 지금 한 가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숙자 대안학교”를 세우는 것입니다. 노숙자들이 이곳에서 배우고 훈련을 받아,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랍니다. 생선을 주는 것에서 생선 잡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1963년 12월 눈발이 흩날리던 밤. 충남 서산에서 무작정 기차를 타고 엄마를 찾아 서울 영등포역에 도착한 12세 소년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외삼촌이 쥐어 준 10원짜리 지폐 몇 장과 아빠에게 버림받은 엄마가 식모살이를 한다는 집 주소뿐이었습니다. 그때 얼굴도 본 적 없는 삼륜 용달차 운전기사가 떨고 있던 소년을 데려가 기사들이 머무는 좁은 방 한구석을 내줬습니다. 기사는 다음날 아침 따끈한 국밥을 사줬고, 어머니가 있는 집에 데려다 줬다. 소년이 기억하는 것은 그 사내의 성이 박씨라는 것과 얼굴이 얽었다는 것뿐이었다.
이 소년은 매출 2조원의 건설회사인 경남기업 성완종(59) 회장의 47년 전 모습입니다. 그는 서울 영등포의 한 교회에 머물며 신문팔이와 약국 심부름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습니다. 밤에는 교회 야학에 다니며 초등학교 중퇴의 한을 달랬습니다. 성 회장은 “언젠가 나도 낯선 이들에게서 받은 도움을 갚겠다고 다짐하며 돈을 벌었다”고 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도 “네가 어려운 시절 받았던 도움을 잊지 말고 꼭 다른 사람을 도와라”고 자주 당부했다고 합니다.
성 회장은 7년 뒤인 1970년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당시 돈 1000원으로 화물운송업을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돈이 모였고, 20대 중반이던 70년대엔 서산 토건 지분을 인수해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회사가 성장하고 안정되자 그는 1991년 12월 15일 사재(私財) 31억 원을 출연해 서산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지난 15일이 정확히 21년째 되는 날이었다.
서산장학재단은 지금까지 256억여 원의 기금을 조성해 장학과 학술·교육사업, 문화 및 사회복지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1만8600여명에게 130억여 원의 장학금을 수여했습니다. 그는 국내 장학 사업을 넘어 해외 장학 사업까지 나눔의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6·25전쟁 참전국인 에티오피아 대학생 120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고, ‘러시아’ ‘사할린’ 교포신문인 ”새 고려신문사“에도 매년 1만 달러(약 1150만원)를 지원합니다.
그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디든 달려갑니다. 2000년 12월 31일 충남 안면도에서 굴 따러 나간 어선이 전복돼 어민 9명이 숨지자, 그날 밤 눈길을 뚫고 달려가 희생자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가 위로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로 고아가 된 엄수미양 삼남매 소식을 들었을 땐 대구로 가 삼남매에게 대학까지의 학자금을 약속했습니다. 2007년 12월 태안 기름 유출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장학재단 회원들과 달려가 1주일간 기름 제거작업을 했고, 조선일보사를 통해 10억 원의 성금을 보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식들에게는 국민주택 규모 아파트 한 채씩만 주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겁니다. 저보다 어려운 사람이 많았을 텐데도 전 늘 도움을 받았습니다. 늘 선택받았고,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이젠 제가 받았던 도움을 사회에 돌려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디 계실까요? 오늘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어디 계십니까? ‘엘리 위젤’의 고통과 절규와 절망 속에 함께 하셨을까요? 서 하사의 어머니의 비통과 절망 속에 함께 하고 계실까요? 친구들의 집단 따돌림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끊어야 했던 김 모 학생과 그 부모님의 억울함 속에 함께 하고 계실까요? 박 돈희 목사님의 꿈과 비전속에 함께 하고 계실까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어디 계신 것입니까? 복음 속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복음 속에 계시며, 그 복음은 교회를 통해서, 오직 교회를 통해서만 들려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고요?
우리가 그 영광을 보았고,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