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독서에 관하여
김태정 목사딤후 4:13약 14분 분량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족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 4:13)
수시로 신문에 발표되는 내용입니다만, 해가 거듭해도 크게 변하지 않는 통계 하나가 있습니다. 독서에 관한 통계로서, 얼마 전에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61%는 일 년에 단 한 번도 서점에 들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 년 평균 책값으로 지불하는 금액이 오천 원인데 비해 술값으로 지불하는 액수는 57만원이라고 합니다. 이런 통계는 구태여 수치화 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동의할 수 있는 통계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대학 캠프스나, 공원, 또는 지하철 안에서 혼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그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거나, 화투판을 벌이거나, 또는 자리 펴놓고 무언가 열심히 먹고 있는 모습입니다.
위에 언급한 통계를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시사 받을 수 있습니다. 책 읽지 않는 국민 61%의 약 1/4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우리나라 그리스도인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4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그리스도인의 약 절반은 일 년에 단 한 번도 서점에 들르지 않고서도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반 지성주의”(反 知性主義)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나마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독서 내용이, 마치 어린 아이가 편식을 하듯, 지극히 한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이 또 다른 통계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판매 순위 50위 이상을 차지하는 소위 ‘베스트셀러’는 미국에서 매년 발표하는 목록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판매되는 책들의 대부분이 주로 감성적이며 자극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진 것들이라 합니다. 예를 들면, 종말론이나 개인적 간증 등으로서, 사상이나 교양 등과 관련된 책의 판매 실적은 지극히 저조한 실정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성도가 <성경>만 열심히 읽으면 되었지 책은 무슨...” 지당한 말입니다. 그러나 대개 이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성경> 제대로 읽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령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고 해도, <성경>만 열심히 읽어서는 절대로 그가 읽는 내용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얼마 못가 흥미를 읽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요한 웨슬러’는 “그리스도인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총 사업은 한 세대도 못가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 그리스도인만이 진리를 아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독서인가?
지도자와 독서. 왜 독서가 이처럼 중요하며 독서를 위해서 따로 시간을 떼어놓지 않으면 안 될까? 너무 진부한 질문이라 답변 역시 진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통해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삼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는 ‘바울’의 글 중에서 현존하는 마지막 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지금 순교 수 주일 또는 며칠 전에 ‘로마’의 침침하고도 습한 지하 감옥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의 사도 사역을 이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표현대로 “전제와 같이 벌써 부어지고 떠날 시각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딤후 4:6).
‘존 스토트’ 목사님은 이 책에 대한 주해서의 서문(序文)에서, “눈시울 적시지 않고는 이 책을 읽을 수 없다.”고 했던 ‘핸들리 모울’의 고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글에서 이전에 그가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써내려가면서 보여주었던 위풍당당한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가 ‘디모데’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겨우 겉옷 나부랭이와 읽던 책 정도이니 말입니다.
사도 자신은 한 때 ‘디모데’에게 “읽는 일에 착념하라”고 권고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물론 그가 교회에서 회중들 앞에서 <구약 성경>을 읽어주라는 것이겠지만, 그의 권고는 다른 분야의 독서를 위해서도 아주 적절하게 적용해야 할 권면이기도 합니다. 사도가 ‘디모데’에게 가져오기를 바라는 책이 무엇이었을까에 대해서 이견이 분분합니다. 혹자는 사도 자신이 <구약>에 대한 주해서와 ‘유대’ 역사서 그리고 자신이 설교에 인용했던 몇몇 이교도 시집들 정도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또 한 편으로는 “주님의 말씀이나 사역에 대한 초기의 공식자료”(흔히 Q자료로 알려져 있는 것)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무엇이든 간에 이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는 ‘바울’은 죽는 날까지 배우고 읽기를 결코 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들의 한 결 같은 공통점은 독서에 대한 열의와 습관이라는 사실입니다. <디모데 후서>에 관한 몇몇 주해서를 읽어보면, ‘바울’보다 훨씬 훗날 1536년 역시 감옥에서 순교했던 ‘틴달’(W. Tyndale)이 그의 총독에게 보낸 편지와 함께 이 서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온열 모자, 양초 한 개, 내 정강이 받이를 댄 옷 한 번...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은 나의 히브리어 성경과 히브리어 문법책과 히브리어 사전이며, 내가 이것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에 재촉해 주시며, 그래서 내가 그것으로 공부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바울’과 ‘틴달’ 모두 순교하기 전, 하루하루를 독서하며 공부하는데 몰두했습니다. 두 지도자의 공통된 모습입니다.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독서를 즐겨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떠했을까요?
자아의 발전. ‘바울’ 사도는 어떻게 그처럼 멋진 서신과 신학 논문을 쓸 수 있었을까? ‘샌더스’(Sanders)는 그의 책에서 “영적으로나 지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계속적으로 책에 몰두해야 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베이컨’(Bacon)도 독서의 규율에 대해서 쓰면서 “반대하고 논박하거나 또는 믿고 동의하기 위해서, 또는 이야기 거리를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가치를 알고 연구하기 위해서 독서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렇게 할 때만이 우리의 영감의 우물이 채워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홍정길 목사님은 한 달에 꼭 두 권의 책을 읽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요한 웨슬러’는 적어도 수천 권의 책을 읽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 그 유명한 <그리스도를 본받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설적인 침례교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찰스 스펄젼’(C. Spurgeon)은 <천로역정>을 통해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존 스토트’ 목사님의 독서에 대한 열의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분은 설교를 위해서 선택한 본문에 대해서 적어도 200회 정도는 반복해서 읽고 연구한다고 했습니다.
이점과 관련해서 필자는 부끄러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에게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설교 준비를 위해서 <성경>을 마주하고 있으면, 서재에 참고할 만 한 서적이 절대적으로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이점 성경공부 준비를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부분입니다. 본인의 이런 안타까운 심정을 잘 이해하는 교인들도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는 설교를 영혼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양식으로 보기보다는, 예배에서 필요한 하나의 요식 절차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필자에게 “목사님 영혼뿐만 아니라, 우리교회 전체 성도들을 위해서 이 책을 읽고 설교에 참고하십시오.”하며 책을 선물하는 교인을 별로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목사가 책을 선정해서 소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제대로 읽으면 다행이겠습니다만. 참고로, 오래 전에 제 생일에 한 제자가 선물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제 일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 중의 하나임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독서는 실로 정신적인 자극이나 설교나 또는 자신의 스타일의 개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성공의 조건. 독서는 영적인 자아 발전 내지 성숙 외에도 과연 세속적인 성공도 보장해 줄까? 그렇습니다. 누구든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성공하기를 원하는 자라면 독서는 그 첫 번째 요건이 될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해서 참고한 책이나 타인의 논문이 대략 140여 권에 이릅니다. 물론 학위 과정 중에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참고 서적이나 논문들을 읽었지만, 이 수는 직접적으로 본인의 논문 작성에 필요했던 것들입니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대학의 운동권 진영에서 후배 운동권 학생들에게 이념 관련 서적 400여 권을 읽힌다고 합니다. 이 정도의 독서로 무장한 사람이라면 웬만한 논쟁에서 상대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우리가 가진 소망에 대해서 묻는 자에게 항상 대답할 준비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이들 운동권 학생들은 자신이 가진 소망에 대해서 이처럼 중무장을 하고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독서는 일종의 간접 체험입니다만, 우리가 얻을 수 없는 정보,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위대한 지도자들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독서를 통해서 그들이 구사했던 훌륭한 표현, 정확한 어휘 구사력, 상대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표현, 정곡을 찌르는 논리 등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 지도자들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선배 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유명한 과학자의 논문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무엇을 읽을까?
이 질문은 “왜 독서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버금가는 중요한 질문일 것입니다. 이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내가 가진 시간이 얼마나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유한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대답은 “가장 좋은 책들만 골라 읽으라.”가 될 것입니다. 가장 좋은 책이란 결국 인류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누군가 우스개로 고전에 대해서, “누구나 읽어야 된다고 말하지만 실은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는 책”이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만, 독서를 말할 때 고전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고전 중의 고전. 고전이란 시대를 두고 변치 않는 사랑을 받아 온 책들로서, 고전 중의 고전은 역시 <성경>일 것입니다. <성경>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라, 더 이상의 언급이 필요치는 않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선배 목사로서 후배 목사이자, 영적 아들이기도 한 ‘디모데’에게 강조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알다시피 목사의 가장 으뜸 되는 소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일 텐데, 이 구절에서 ‘바울’ 사도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다른 사도들 역시 말씀을 읽고 가르치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으면, 그 외의 모든 사역들은 집사들을 따로 떼어 맡도록 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내 자식들에게나, 이웃에게나, 제자들에게나, 또는 직장 동료들에게 얼마나 이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로 과연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 구절을 실천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고 있습니까? 내 인생의 의미나 목표가 과연 “대 위임령” 즉 “제자 삼기”입니까? 더 나아가 내 제자가 다른 사람을 제자 삼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늘 앵무새처럼 말로써만, 기도로써만,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타인에게는 없고 자신에게만 있는 것을 자랑하기 마련입니다. 부자는 돈을, 정치가는 권력을, 운동선수는 재능을.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자랑합니까? 내가 가진 복음을 단 한 번이라도 자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 지식을 자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해서 변변한 대답을 할 수 없다면 나는 정말 심각하게 내 자신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왜 하나님께 열심을 품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혹시나 하나님이 나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내가 하나님을 모르고 있든지 말입니다.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피상적인 성경공부의 위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늘 듣기는 하나 더 이상 내 가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뜨거워지거나 아프지 않습니다. 열심과 흥미를 가지고 절실하게 연구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 한 가지, 누구나 가르치면서 배우는 법입니다. 이번 주 설교할 일이 없다면 나는 성경연구에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대학에서 강의할 책임이 없다면, 강의 준비를 위해서 연구하고 독서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 공부 인도할 일이 없다면, <성경> 연구도 필요 없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간에 누군가에게 <성경>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단 한 번이라도 치열하게 싸워본 적이 없다면, 말씀 연구에 별 흥미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예배 시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건대, 그 이웃이 누구든 <성경>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요? 모르면 자랑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기이하게도 많은 성도들은 <성경>을 모르는 것을 자랑삼아 말하고 다닙니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겸손함을 드러내는 것인 줄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겸손할 일이 따로 있지,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주일에 한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그 일에 목숨을 거시기 바랍니다. 결단할 수 있겠습니까? 예배 후 결단의 시간에 나와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고전과 고전적 가치. 그런데 우리가 <성경> 가르치는 일에 목숨을 걸기 위해서는 <성경>을 제대로 아는 일이 필요한데, 아쉽게도 <성경>은 그 자체로 읽기가 아주 힘듭니다. 오늘날 성도와는 문화적으로나 시대적으로 너무나 다른 상황에서 기록되고 편집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성경> 외의 독서들에 대한 읽기가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 인류가 고전으로 꾸준히 읽어온 것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굳이 기독교 고전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설교는 <성경>만 읽어서는 어렵습니다.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 주해서만 읽을 수도 없습니다.
기독교 고전 외에도 수없이 많은 일반 고전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일반 성도의 경우에는 신학서적들을 읽는 시간에 일반 기독교 고전이나 일반 고전들을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인 독서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전이라 해서 반드시 오래된 것일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고전적 가치를 지니는 현대의 책들도 아주 많습니다.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해서 아주 깊은 통찰력을 갖게 해주는 책들을 이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최근 내가 읽은 책 중에 그런 것들이 있습니까? 한 번 소개해 봅시다.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읽어보셨습니까?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어떻습니까? ‘유진 피터슨’의 네 권의 영성 시리즈, <현실, 하나님의 세계>, <이 책을 먹으라>, <그 길을 걸어라>, 그리고 <비유로 말하라>는 어떻습니까?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은 어떻습니까? ‘프란시스 쉐퍼’의 걸작들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필립 얀시’의 책들은 얼마나 읽어보았습니까? 이들 작가들은 모두 오늘날 베스트셀러 작가들로 알려져 있는 분들입니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이들 책들을 통해서 영성을 새롭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읽을까?
마지막으로 어떻게 효과적으로 독서를 할 것인가에 관한 소고(小考)입니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독서 계획이나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만, 필자가 견지하고 있는 일련의 원칙들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첫째, 다양한 독서를 합니다. 다양함은 다양한 분야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역사, 철학, 문학 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심지어 영화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소설류도 꽤나 좋아했었는데, 목사가 된 후로는 시간에 쫓겨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가끔 읽는 소설이나 관람하는 영화는 필자의 설교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꿈과 용기를 심어줍니다. 그리고 <성경> 공부 교재를 만들 때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둘째, 쉽게 읽을 수 있거나 버릴 것은 읽지 않습니다. 이 중에 수필이나, 간증집, 기타 소위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것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셋째, 손에 펜을 들고 읽습니다. 이 말은 독서 중에 생각난 여러 가지 생각이나 의문 또는 아이디어들을 여백에 적어가면서 정리와 묵상을 겸하여 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한 권의 책에 대해서 두 번 이상은 꼭 읽습니다. 필자가 가진 책 중에서 어떤 책은 수십 번 읽은 것도 있습니다.
다섯째, <성경> 읽기는 조용한 새벽 시간에 묵상을 위해서 1-2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하며, 일반 독서는 저녁이나 쉬는 시간에 가볍게 합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여행은 주로 열차를 이용하려 하는데 독서를 위해서입니다.
여섯째, 좋은 책은 두 권을 삽니다. 독서 중에 펜을 가지고 책의 여백에 쓰거나 줄을 긋기도 하기 때문에, 고전적 가치를 지니는 좋은 책의 경우에는 한 권은 장서용으로 추가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비닐 등으로 겉표지를 싸둡니다.
신학교에서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책 한 권은 성도 한 사람”이라는 말을 합니다. 책 한 권 읽을 때마다 성도 한 사람 는다는 농담 섞인 충고입니다만, 목회지가 책을 읽지 않고 목회를 할 수는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어찌 목사에게만 국한될 수 있겠습니까? 독서는 우리 모두에게 꿈과 이상을 제공해 줍니다. 가벼움과 피상성에서 탈피하여 신중함과 깊은 영성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독서는 우리를 지도자로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전문인과 성공을 보장해 줍니다. 그래도 독서를 게을리 하시겠습니까? 필자가 만든 警句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Passion and Practice Promise Prosperity!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