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기독자 교수의 영성과 리더쉽
김태정 목사막1:15약 20분 분량
-그리스도의 영성과 리더쉽을 중심으로-
김종렬 목사 (새고을기독서원, 목회교육연구원 원장)
http://cazang.hompee.com/
1.시작하는 말 : 동전의 양면과 같은 영성과 리더쉽
리더쉽(leadership)이란 무엇인가? 리더쉽의 사전적인 의미는 지도자로서의 지도ㆍ지휘ㆍ통솔력 이다. 그동안 리더쉽에 관한 연구가 다양했다. 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리더쉽 이란 한 집단의 목표달성을 위하여 기꺼이 노력하도록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며(Terry), 하나의 특별한 목표달성을 위한 설득력(의사소통)을 통해서 행사되는 대인간의 영향력이라고 한다(Tannenbaum). 즉 리더쉽이란 하나의 목표달성을 위하여 사람들이 따르도록 행사되는 ‘영향력’이다.(Koonz와 O'Donnell).
이 같은 정의를 한마디로 말하면 “리더쉽이란 한 공동체의 목표달성을 위해 행사되는 영향력“이라 하겠으며, 따라서 리더쉽의 문제를 푸는 열쇠말은 ‘영항력’ 이다. 이렇게 리더쉽이 곧 영향력이라고 할때, 그 영향력(지도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것은 권력(dunamis, power)과 권위(exousia, authority)를 통해서 규현된다. 권력은 제도적인 직위(status)에 따르는 직권적 영향력으로서 헤드쉽(headship)이며, 권위는 지위와는 상관없이 그 사람의 기능(function)에서 비롯되는 영향력으로서 리더쉽(leadership)이다.
권력이 일방성과 강제성이 그 본질이라면, 권위는 상호성과 자발성이 그 본질이다. 그리고 권력이 직권자(우두머리)와 피직권자(부하)와의 조직상 상하관계에 있을 때는 그 영향력이 존속 하지만 그 같은 관계가 끝나면 그 영향력은 해소된다. 그것은 양자 간의 심리적 공감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와는 달리 권위는 양자 간의 조직상 상하관계가 끝나도 그 영향력은 존속한다. 그것은 양자 간의 심리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권력으로서 헤드쉽과 권위로서 리더쉽의 질적인 차이가 있으며, 따라서 지도자의 영향력은 권력에서 보다 권위에서 더욱 그 지도력이 발휘된다는 것이 전통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권력과 권위를 통합한 최강의 창조적 리더쉽으로서 ‘빌더쉽’(buildership)이란 개년이 도입되었으며, 이것을 혁신적 지도자의 ‘슈퍼리더쉽’(superleadership)이라 한다(Jack Welch). 이 같은 슈퍼리더쉽의 모델로서 예수, 석가, 노자, 공자, 간디 같은 지도자들을 들고 있다. 이들은 모두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영향력을 가진 자 들이다. 이들의 특별한 영향력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영적권위(exousia)와 영적권능(dunamis)에서 비록된 것이며, 이것을 우리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영성’(spirituality)이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리더쉽이란 결국 그들의 영적인 것, 즉 그들의 ‘영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쉽과 영성은 떼어 놓을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으며, 따라서 영성과 리더쉽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오늘 우리는 ‘기독자 교수의 영성과 리더쉽’의 문제를 논의 하려고 한다. 여기에서 발제자는 기독교영성을 슈퍼리더쉽의 모범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에서 찾아보려고 하며, 동시에 참 지도력 곧 배우는 학생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특별히 대학이라는 학원공동체에서 기독자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슈퍼리더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예언자의 영성, 제사장의 영성, 종의 영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밝히려고 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과 리더쉽
2.1. 예언자의 영성-예언자적 감각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예언자 반열에 서 있는 예언자이다. 예언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의 ‘나비’는 ‘부름을 받은 자’ (召命者) 곧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이토록 하나님의 부르심(召命)을 받아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使命)을 부여 받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며, 하나님의 때- 심판과 구원의 때-, 즉 결정적인 종말의 때를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함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구원의 길로 가게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자이다. 달리 말하면, 이스라엘의 예언자는 하나님의 때와 시대의 징조를 미리 깨달아 아는 감각을 가진 자 이다. 이것을 ‘예언자적 감각’이라 한다(F.Novalis. R. Bohren). 예언자적 감각이란 그 시대정신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말하며, 그 통찰력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인간을 억압하며 파멸로 이끌어 가는 악령의 정체를 밝혀내는 영적 지각력. 이것이 바로 예언자의 영성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같은 예언자의 전통에 서 있다. 신약성서의 기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지막 때에 나타날 예언자요, 그가 곧 메사야 라고 증언하였다. 베드로는 그의 성전설교에서 모세가 언급한 그 예언자가 곧 예수라고 증언 하였으며(신18:15 ; 행3:22-23) 예수는 자기 자신을 선지자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막6:4 ; 눅13:17). 오히려 선지자 보다 더 큰 자라고 하셨다(마12:41 ; 13:17). 그리고 그는 가르치는 일에나 이적을 행하는 일에 있어서 그가 참 예언자요 메시야라는 사실을 직ㆍ간접적으로 나타내셨다(마21:11, 46 ; 눅7:16 ; 24:19 ; 요3:2 ; 4:19 ; 6:14 ; 7:40 ; 9:17등).
이토록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자로서 새 시대의 도래,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으며(막1:15), 때로는 장차 일어날 일을 예고하기도 하셨다(마24:3-31).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는 무서운 환난 날(심판의 때)이 예루살렘에 임할 것을 눈물을 흘리면서 예고 하셨다(눅19:41-44).즉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참 예언자들과 같은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의를 외치고, 하나님의 때- 심판과 구원의 때-, 즉 종말의 때(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 이 같은 선포행위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당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역시 유대인들의 미움을 싸게 되었으며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매를 맞기도 하셨으며, 고난을 받으시다가 결국은 십자가를 지셨다. 이 길이 바로 참 예언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는 예언자란 말씀의 봉사자로서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뜻)에 목숨을 걸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자임을 말한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말씀(뜻)에 목숨을 걸고 죽기까지 충성하셨다. 이것이 예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이다.
이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은 이 세상의 어떤 것이나 그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뜻에만 목숨을 걸고 죽기까지 충성을 다한 이스라엘의 예언자의 영성이며, 이것은 어쩌면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탐관오리에 빠지지 않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깨끗한 선비로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스승의 삶을 산 그들의 고고한 선비정신과도 같은 것이라 하겠다.
그 옛날 이스라엘의 참 예언자와 조선시대의 고고한 선비정신으로 올 곧게 산 선비들이 한 없이 그리운 이때에, 대학이란 학원 공동체에 부름을 받은 기독자 교수 여러분들은 이시대의 예언자이며 기독자 선비이다. 기독자 선비로서 또한 이 시대의 예언자로 부름 받아 대학 강단에 선 기독자 교수 여러분들은 역사를 내다보는 선비의 혜안과 시대정신과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예언자적 감각’을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선비적인 혜안과 예언자적 감각을 가지고 가르치는 일은, 이 시대정신을 비판하고 이 시대의 풍조인 물량주의(혹은 황금만능주의)와 성장제일주의, 세속주의와 성공주의, 실적주의와 형식주의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령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이다. 이 같은 가르침을 실천하는 기독자 교수는 제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것이고 존경받는 스승으로 오래오래 학생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게 될 것이며, 우리 사회와 역사를 변화 시킬 수 있는 강력한 영향력(지도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한 가지 남은 일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으로서 예언자적 감각을 갖는가 하는 것이다. 보렌(R.Bohren)은 예언자적 감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성령론적사고’를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고, 성령론적사고는 바로 ‘시대의 징조를 올 바르게 분별하는 사고’ 라고 한다. 그리고 바르트(K.Barth)는 말씀의 봉사자로서 예언자는 한 손에는‘성경’을, 또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들고 읽어야 하며, 그래야 이 시대정신과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수 있는 말씀의 봉사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을 듣고 간직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성경을 읽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일이며, 이것은 바로 이 시대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 가를 듣는 일이며,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무엇인가를 깨달아 아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자 교수들은 정열(고난)을 다하여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예언자로서 우리들은 이 시대의 징조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예언자적 감각을 갖기 위해서는 신문을 읽어야 한다.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사회과학자들과 인문과학자들, 그리고 자연과학자들과 만나 대화를 하고 그들로 부터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우리가 성령의 생각을 따라 성령론적인 사고를 하고, 또한 성경과 신문을 열심히 읽을 수 있을 때, 이스라엘의 에언 자 들과 예수 그리스도가 가졌던 예언자의 영성과 리더쉽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2.2. 제사장의 영성-제사장적 연대감
예수 그리스도는 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열에 서 있는 제사장이다.(시110:4).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범죄 한 백성들 사이에 서 있는 중보자이다. 즉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가로 막아 서서 백성들의 죄 용서를 위한 중보기도를 드리는 중보자란 말이다. 그는 백성들의 모든 죄악을 등에 짊어지고, 또한 백성들의 아픔과 고난과 상처를 가슴으로 끌어안고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중보의 기도를 드린다. 이토록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죄로 인한 백성들의 상처와 아픔,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외면치 않고 온 가슴과 몸으로 연대(solidarity)한다. 이것이 바로 ‘제사장적 연대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같은 제사장의 전통에 서 있는 우리의 영원한 대 제사장이다.그는 인류의 죄악과 인생의 무거운 짐과, 그리고 인간의 질고와 아픔, 인간의 절망과 죽음을 한 몸에 짊어지시고 대제사장으로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다른 대제사장과는 달리 단번에 죄의 용서를 위한 제사를 다 드렸다”(히7:27 ; 9:12, 25; 10:10)고 하였다.
우리는 이 같은 제사장의 모범을 보여준 영적 지도자들을 성서 속에서 찾아 볼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과 모세이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악과 하나님의 심판 사이에 서서 그 무서운 심판이 내려지지 않도록 탄원하는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창18:16-33).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金神)을 만들어 섬김으로 여호와를 배신한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로 막아서서 “합의 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데 주의 기록한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32:31-34)라고 목숨을 건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 이들 영적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타난 제사장적 연대감과 풍성한 영성을 발견한다.
기독자 교수로 부름을 받은 우리 교직자 들은 이 시대의 제사장이다. 우리 교직자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제사장적 연대감과 제사장의 영성을 갖는 일이다. 우리 교직자들에게 맡겨진 학생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영적 지도자들이 가졌던 그 같은 제사장적 연대감과 영성으로 돌봐야할 소중한 영혼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혼이란 영과 육을 갈라놓은 이원론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 곧 ‘생령’(창2:7)이며, 전인(全人)을 위미 한다. 우리 기독자 교수들의 사명은 우리에게 맡겨진 학생들, 한 사람 한 사람 살아있는,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가 처한 곤경에 연대하며, 그가 입고 있는 상처를 싸매주고 치유해 줌으로써 삶의 용기를 가지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이다.
우리 기독자 교수들이 이 같은 제사장적인 연대감과 영성을 가지고 학생들을 돌볼 수만 있다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할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서 보다 더 강력한 리더쉽, 즉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교수들이 아주 명석한 두뇌로 논리정연하게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뜨거운 가슴으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 한 영혼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돌봐주는 일이다. 이 같은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가 형성 될 때 놀라운 교육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고, 학생들의 변화는 물론이고 학원 전체가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요즈음 교육학에서 잘 알려진 IQ(지능지수)높이기보다 EQ(감성지수) 높이기가 더 교육적이라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하겠다.
몇해전 그린스타인(F.Greenstein)은 위대한 대통령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그의 책에서, 대통령이 반드시 명문대 출신일 필요도 없고, 학업 성적이 우수해야 되는 것도 아니며, 또한 가문도 대통령이 되는 척도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게 하는 여섯 가지의 지도력(능력)을 제시 하였다. 즉 감성지능, 조직력, 설득력,(의사소통), 정치력, 통찰력, 그리고 인식능력(상황판단력) 등이다. 그런데 이 6가지 능력 중에 가장 비중을 크게 차지한 것이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t)이였다. 감성지능이란 지능지수(IQ)와는 다른 감성지수(EQ)를 말한다. EQ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감성을 말하는데, 하나는 자기감정을 절제하는 ‘극기’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감정에 이입하여 ‘공감’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감정 을 절제하는 ‘극기’(self-denial)란, 고독과 절망의 감정, 분노와 증오심,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감정, 이기심과 탐욕 등의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타인의 감정에 이입하여 ‘공감’(sympathy)하는 것이란, 타인의 고통과 아픔, 좌절감과 절망감, 불안감과 소외감을 아주 민감하게 감지하여, 그 같은 타인의 감정에 ‘연대’하는 풍성하고 따뜻한 감정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다(마9:36).
최근에 우리의 눈길을 끌게 하는 것으로서 여성의 리더쉽을 강조하는 엄마형 리더쉽(우경진, 명진출판2004)이란 책이 소개 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여성의 리더쉽은 21세기 감성의 시대에 맞는 리더쉽으로서 감수성과 서비스정신(섬김)에서 출발하는 엄마 형 리더쉽이란 것이다. 엄마 형 리더쉽은 생명을 잉태하여 해산의 고통을 통해 낳은 자식을 양육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 곧 감수성과 섬김과 희생정신에서 비롯되는 리더쉽으로서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의 섬세함과 유연성과 따뜻함을 가지고 가정과 자식을 지키고 살리는 힘을 가진 리더쉽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머리보다 가슴이 사람의 마음을 더 움직이고, 지성(IQ)보다 감성(EQ)이 사람을 더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서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적인 연대감과 영성이 얼마나 하나님을 감동 시키고 상황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았으며, 또한 기독자 교수들이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써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제사장적인 연대감과 영성을 가져야 한다고 피력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기독자 교수들이 어떻게 제사장적 연대감과 영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보렌은 ‘고뇌하는 사고’로서 ‘성령론적사고’를 하라고 가르친다. 그는 “성령론적사고는 전 세계에 대하여 고뇌하며, 세계의 비참함에 동참한다. 성령이 없는 사고는 이에 무관심 하다” 고 하며, “성령론적사고는 우리로 하여금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도록 인도하며, 이웃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은 성령을 거스리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기도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고난의 현장으로 인도하여 인류와 세계, 온 피조물의 비참함 때문에 고뇌케 하며, 그 고난에 동참하도록 하시는 성령(롬8:26)께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이 고난의 시대를 극복하고 이웃과 세계와 온 피조물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는 제사장적 연대감과 영성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2.3. 종(僕)의 영성- 비움과 섬김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왕의 계보에 속해 있는 임금으로서(마1:6-16) 만왕의 왕이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군왕들과 같이 군림하는 왕과는 전적으로 다른 섬기는 종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는 친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라 ”(막10:45)고 말씀 하셨으며, 그가 메시야 왕으로 등극하실 때에도 군마를 타고 입성한 것이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 ‘호산나’ 노래 부르는 백성들의 환호 속에서 예루살렘의 왕(통치자)으로 입성하신 것이다. 마태는 이 사실을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탓 도다(마21:5)라고 보도하였다. 이 같은 마태의 보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임금이지만 그 자리를 비우고 종의 자리로 내려오심을 말한 것이라 하겠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움과 섬기는 종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6-11).
우리는 이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움과 섬기는 종의 모습에서 그의 영성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으며, 동시에 그의 영성에서 비롯되는 참 리더쉽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비움이며, 사람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종의 영성’ 이다.
기독자 교수 여러분들이 대학이라는 학원 공동체에 부름을 받아 강단에 선 것은, 학생들로 부터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비움과 섬김의 영성으로 그들을 돌보고 섬기기 위해서이다. 진실로 우리 교수들이 스승으로서 제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비움과 섬기는 종의 영성으로 가르칠 수만 있다면, 그 영향력과 지도력은 강렬하게 발휘될 것이며, 학생들의 변화는 물론 학원 공동체가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도자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 특히 한 공동체를 조직, 운영하는 지도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 권위는 어떤 권위이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전통적인 사회에서 권위는 ‘직위’(status)에 따라 좌우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기능’(function)에 따라서 좌우된다. 최근 지도자의 지도력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지도력이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후천적으로 습득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도자가 지도력 개발에 힘써야 함을 시사해 준다. 이것이 바로 지도력이 주워진 ‘직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기능’에 따라서 발휘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말하면, 교수는 직위이고, 기능이란 교수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즉 섬기는 일이다. 이 시대의 랍비로서 부름을 받은 우리 기독자 교수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섬기는 종으로서 겸손하고 자기 목숨을 내 놓을 수 있는 희생정신이 있어야 한다(마20:25-28). 이것이 곧 자기를 비우고 섬기는 ‘종의 영성’이다. 이 같은 종의 영성에서 교수의 놀라운 리더쉽(영향력)이 발휘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남의 의견을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을 내 세우는 독선적이고 폐쇠적인 독제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들 주위에서 힘으로 다스리고 군림하려고 하며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탐욕스런 지도자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지도자가 카리스마적인 존재가 되어서 집단을 통솔하고 집단에 속한 자들을 노예로 만들어서 자신에게 굴종하고 순종을 강요하는 지도자의 행태이다. 이 같은 지도자의 모습이 대학이라는 우리 학원공동체에는 없는지 한번 살펴 볼 일이다.
바울은 그린도 전서 12장에서‘은사 공동체’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가지 특별한 재능(은사)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한 성령에게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직책은 여러 가지지 만 우리는 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 각 사람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주십니다”(고전12:4-7, 현대어 성경)라고 하였다.
이 같은 섬김의 원리, 즉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며, 이웃과 교회 공동체를 섬기는 이 원리는 가정공동체, 학교 공동체, 사회 곧동체, 민족공동체, 나아가 인류 공동체를 섬기는 일에 모두 해당 된다. 이 같은 섬김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일, 자기를 비우고 낮추고 남의 인격과 능력을 존중하는 일과, 욕심을 버리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자기 자신을 부인(희생)하는 일과, 또한 자신의 능력을 과신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무기력’(Ohnmacht)을 철저히 인식하고 하나님의 ‘절대능력’(Vollmacht)의 손에 자신을 의탁해 버릴 때 그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이것이 ‘비움과 섬김의 영성’이며, ‘가난의 정신력’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 우리 모두들과 특히 한 공동체의 지도자에게 이같은 자기 비움과 섬기는 종의 영성이 요청된다. 오늘날 이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은 높은 자리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남을 지배하고 군림하려는 것이다. 이 같은 시대정신을 극복하고 우리가 어떻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의 영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여기에 대하여 보렌은 또한 ‘성령론적사고’를 하라고 가르친다. 그가 말하는 성령론적사고 중에 ‘찬양하는 사고’라는 것이 있는데, 찬양하는 사고는 우리로 하여금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은사를 높여 찬양하는 사고로서 다음과 같다.
“성령론적사고는 상대방을 찬양하는 사고이다. 찬양하는 사고는 홀로 있기를 원치 않고 공동의 연대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찬양은 제각기 부르지 않고 함께 합심하여 부른다. 성령론적사고는 상대방을 판단 할 때 차별을 두지 않으며, 성령론적 사고는 자기 자신을 절대 위치에 두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대화를 촉구한다. 성령론적사고는 공동체의 일치를 추구하며, 성령론적사고는 자기를 낮추어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주하는 교향악에서 서로서로 협력하여 화음을 이루려 한다. 그러므로 성령론적사고는 그 본질에 있어서 교향악적이고 합창적이다”
3. 끝 맺는말 :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 지는 영성과 리더쉽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 지는 영성과 리더쉽’이란 영성과 리더쉽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훈련과 개발을 통해서 형성된다는 말이다. 발제자는 앞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으로서 예언자의 영성과 제사장의 영성, 그리고 종의 영성을 논의 하면서 ‘보렌의 성령론적사고’를 소개한 바 있다. 보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갖기 위해서 성령론적사고를 배우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성령의 생각을 따라 사고하는 성령론적사고를 할때, 시대의 징조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예언자적 감각’과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제사장적 연대감’과 그리고 자기를 비우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비움과 섬김‘으로서’종의 영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렌이 기독인의 영성생활과 영성 훈련을 위해 성서와의 깊은 대화를 하는 ’명상(meditatio)과 하나님과의 끊임없이 대화하는 ‘기도(oratio)와, 그리고 자기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고행‘(tentatio)을 하라는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강력한 예수 그리스도의 슈퍼 리더쉽을 행사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성령의 생각을 따라 성령론적인사고를 함과 함께 명상과 기도와 고행하는 일에 정열(Passion,고난)을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자 교수들이 그리스도의 제자(학생)로서 끊임없이 배우고(doctrina) 훈련(disciplina)하는 일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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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aertin & k.Boeck. 『EQ(감성지능개발 학습법)』홍명희 옮김(해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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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Welch, 『끝없는 도전과 용기』,이동현 옮김(청림출판,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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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렬, ‘새천년의 도전과 미래교회의 목회패러다임’『목회교육』13호(목회교육 연구원ㆍ한들.1999)
우경진, 『엄마형리더쉽』(명진출판,2004)
허호익, ‘목회리더쉽과 팔로우쉽’(www.theologia.pe.kr-논문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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