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제5과
간증과 변론 (3): 첫 예루살렘 방문
김태정 목사갈라디아서 1:18-24약 21분 분량
제 5과: 첫 예루살렘 방문
5
간증과 변론 (3):
첫 예루살렘 방문
(1:18-24)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18절상)
사도가 전해주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알리바이’는 회심 이후 (1) ‘예루살렘’을 처음 방문한 것과 (2) 이후 ‘시리아’와 ‘길리기아’에서 복음 전도 활동을 한 것에 관한 짧은 이야기입니다. 특히 ‘예루살렘’ 방문과 관련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기까지 합니다. 그만큼 이 방문과 관련해서 입증하고자 하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방문 그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즉 그 방문이 향후 자신의 권위와 복음에 아무런 도움도 영향도 주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데 있습니다. 그를 둘러싼 비방은 무엇이며, 이 방문 이야기를 통해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사도가 ‘예루살렘’ 방문 이야기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는 바는 세 가지입니다.
그가 들려주는 다섯 번째 이야기 역시 네 번째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예루살렘’ 교회가 있는 ‘유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방 지역 ‘시리아’와 ‘길리기아’로 복음 전도 여행을 간 이야기를 통해서 사도가 전해주는 두 가지 핵심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행의 결과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극적인 수사적 대비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엇인지 파악해 봅시다.
문학과 역사
사도가 이어서 들려주는 세 개의 이야기들은 모두 ‘예루살렘’과 관계된 것들입니다(1:18-2:10). 이들 이야기는 모두 접속사 “그리고 나서”(e[peita, 에페이타)로 시작하고 있어, 이들 이야기들이 시간적으로 연속적으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1) (그리고 나서) 그 후 삼년 만에 (1:18)
(2) (그리고 나서) 그 후에(1:21)
(3) (그리고 나서) 십사 년 후에(2:1)
물론 이 접속사는 대부분의 번역본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방문과 관련된 이들 사건들이 구체적으로 언제 이루어졌는가는 “삼 년 후”(1:18)와 “십사 년 후”(2:1)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선 이 두 시점이 각각 “다메섹 사건”을 기점으로 계산한 것이거나 또는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온 시점을 기준으로 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삼 년”과 “십사 년”은 하나의 사건을 기점으로 “그로부터 삼 년”과 “그로부터 십사 년”을 의미할 수도 있거나, 또는 서로 연속적인 시점 즉 “그로부터 삼년 후에 다시 십사 년” 즉 “십칠 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바는, 사도가 과연 “일 년”을 완전한 한 해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거나 아니면 한 해의 일부로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바울의 복음”은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사도들로부터 배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 사도가 제시한 증거는 “예루살렘 사도들과의 접촉이나 만남”과는 전혀 무관한 “다메섹에서 주님과의 극적인 만남”과 “아바비아 여행”에 관한 것이었습니다(1:13-17). 이어지는 세 이야기가(1:18-2:10) 모두 “그 후”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는 것도 그의 이야기에 어떤 단절이나 불연속성이 없음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는 이곳에서 그의 네 번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1) 회심 이후 ‘예루살렘’의 첫 방문과(18-20절) 이후 ‘시리아’와 ‘길리기아’로 돌아온 이야기(21-24절)가 그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앞에서 시작한 바 있는(16하-17절) ‘알리바이’성 변론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신학과 신앙
예루살렘 방문(18-20절)
사도가 들려주는 네 번째 이야기는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이 방문 이야기를 세 가지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18절)
삼년 만에. 이 방문이 정확하게 언제 이루어진 것입니까? “그 후 삼년 만”이라고 사도는 밝히고 있습니다. 이때 그가 사용하고 있는 접속사, “그리고 나서”는 시간적이거나 또는 논리적인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코이네 헬라어’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가 어떤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모호함이 남는 것은 사실입니다. 소위 “다메섹 사건”일 수도 있고,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 온 삼 년일 수도 있습니다. 전자(前者) 즉 “다메섹 사건”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16절하)는 사도의 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즉 그가 회심 이후 “곧바로” 아무나 만나지 않고 ‘아라비아’로 갔다면, “그 후 삼년”도 바로 이 사건을 기점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삼 년”이 완전한 년 수라기보다는 단순히 “삼년 째 되는 해”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 정확한 기간은 알 수 없을 듯합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자신의 사도직분이나 사역에 관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로부터 위임이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한 동안 ‘예루살렘’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가 주님을 만난 지 3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뿐이었습니다.
베드로와 15일을. 그렇다면 비록 한참 뒤이긴 하지만 그가 ‘예루살렘’을 찾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순히 ‘게바’ 즉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동사 “방문하다”(ίστορέω, 히스토레오)는 <신약>에서 이곳에서 단 한 번 등장하고 있는 단어로서, 고전 ‘헬라어’에서는 “조사하다” 또는 “질의하다”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다른 문헌에서는 “이야기하다”, “보고하다”, 또는 “교제를 나누다”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R. Longenecker, 37쪽.
사도가 이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례는 아마 이 마지막 의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피터슨’(E. Peterson) 목사님의 말대로 그가 ‘베드로’를 만나러 간 것도 무슨 강의나, 보고나, 선전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사적인 만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E. Peterson, 71쪽.
사도가 ‘베드로’와의 만남에서 또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15일을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이 기간은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 있었던 3년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사도가 ‘게바’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비록 그가 ‘게바’로부터 무슨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니라 사적인 “교제”를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서라든지 자신에 대한 평가를 탐색하기 위해서 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점 ‘피터슨’(E. Peterson) 목사님도 맑힌 바 있다고 위에서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의 연합을 강조하고 있는 ‘바울’이라면, 참고. 갈 3:26-29; 고전 1:10; 12:12.
‘게바’와의 만남을 통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이와 무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3년을 기다렸다는 사실도, 그가 ‘예루살렘’ 사도들과 차별성을 시도하려고 했다든지 또는 혼자서 고고한 척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은 ‘바울’에게 있어서는 방문지로서 가장 적합하지 않은 곳입니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그는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주의자들에게는 변절자로 낙인찍혀 있었을 것이며,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한 때 그들을 박해하던 자로서 기피인물이 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사람이 15일 간을 함께 하면서 나눈 대화의 주된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날씨 이야기나 하면서 15일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은 함께 머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의 체험과 지식, 그리고 소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특히 ‘바울’의 편에서 보자면 ‘베드로’가 들려주는 예수님의 생전의 삶과 가르침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듣고 배우는 기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베드로’를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고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되었다고 해서 그가 다른 사도들보다 열등하거나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의 사도직과 이방인 선교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입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우열을 가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야고보 외에는. 이어지는 사도의 알리바이는 무엇입니까?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19절)
이 구절은 구문론적으로 다소 애매모호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즉 ‘바울’이 ‘야고보’를 사도 중의 한 사람으로 보고 있는지, 또는 그들과 구별하여 언급하고 있는지가 문장 자체만으로는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전자의 입장을 취한다면, ‘바울’이 만난 사도는 두 사람이 될 것이고, 반대로 후자의 경우라면 해석은 다소 달라집니다. 즉 ‘바울’이 만난 사도는 ‘베드로’가 유일한 인물이며, 그 외 ‘예루살렘’에서 만난 인물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유일하다는 해석이 가능해 집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님의 네 형제 중 처음으로 언급하고 있는 바로 그 인물임이 분명합니다(막 6:3; 마 13:55).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같은 이름을 가진 자가 두 사람 있는데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그들입니다(막 3:17-18; 행 1:13; 12:2).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그의 형 생전에는 그를 믿고 따르지는 않았으나(참고, 막 3:21, 31-35; 요 7:3-5), 주님의 부활 이후에 회심하여 교회의 중요한 일원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행 15:13; 21:18-19; 갈 2:1-10; 고전 15:7). 이후 그는 교회의 지도자급 인물로 급부상하여(행 15:13; 21:18-19; 갈 2:1-10), ‘베드로’가 ‘예루살렘’을 떠난 후로는 교회의 중심 지도자가 됩니다. 그가 단순히 예수님의 친동생이라는 이유로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못합니다. 오히려 급격하게 성장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 지도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다윗’의 후손이자 예수님의 동생인 그가 자연스럽게 지도자로 부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주후 62년 ‘안나’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당시 순교하였으며, 이후 “의인”의 칭호를 받게 됩니다. 이후 ‘에비온 파(Ebionites)’ 추종자들은 그를 열두 사도의 반열에 놓기도 하였으며, 초창기 일부 ‘유대∙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 가지 ‘야고보’와 관련하여 격렬한 논쟁 점 중의 하나는 <신약>에서 호칭하고 있는 바, “주의 형제”의 정확한 의미입니다. 첫 번째 견해는 말 그대로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 형제로서 ‘요셉’과 ‘마리아’가 낳은 자식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견해는 ‘터툴리안’(AD 160-220)과 동 시대의 사람들 및 ‘로마’의 ‘헬비디우스’(Helvidius, AD 380) 등이 받아들였던 견해로서, 이 견해를 ‘Helvidian’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두 번째 견해는, 그를 예수님의 “이복 형제” 즉 ‘요셉’이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들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는 ‘에피파니우스’(AD 315-403) 등이 주장한 것이라 하여 흔히 ‘Epiphanian’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견해는 첫 번째와 대치되는 것으로서, ‘야고보’는 ‘알패오’와 ‘글로바의 마리아’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로서 예수님의 사촌 형제라는 것입니다. 이 견해는 ‘제롬’(Jerome, AD 347-420)이 처음 제기하였는데, 이 주장을 통해서 ‘마리아’가 예수님 출산 이후로는 아무 자녀도 낳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를 흔히 ‘Hieronymian’으로 부르고 있으며, ‘로마 카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주의 형제”에 대한 해석이 교리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교리적 차이만 아니라면, ‘야고보’가 예수님과 이모동부(異母同父)의 관계에 있다는 견해는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사도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합니다. 무엇입니까?
그가 누구든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만난 유일한 인물은 ‘베드로’와 ‘야고보’ 두 사람 뿐이며, 이들로부터 무슨 가르침을 받아 자신의 이방인 사역을 의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입니다. 결국 사도가 말하려는 요점은 이것입니다: “내 비록 예루살렘으로 가긴 했지만, 내가 주를 만난 지 3년이 지난 후였으며, 그곳에서 유명하다는 사도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지만 그것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었고, 그 기간도 15일에 불과했다. 이 기간 동안 무슨 길고도 상세한 복음에 관한 가르침을 전수 받을 수 있었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도는 신학적 논쟁의 법정에서 단순히 자신의 ‘알리바이’를 제시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듯합니다. 그만큼 고소인들의 악의에 찬 거짓 선전과 비방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이제 그는 ‘알리바이’에 이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더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20절)
사도의 이런 태도는 과연 온당한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도 그 어떤 이름으로도 결코 맹세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마 5:33-37)? 우리는 사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로마법” 제도 하에서 “(신의 이름을 건) 맹세”는 특별한 기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즉 민∙형사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법정에서 다루기 전에 피고나 또는 원고로 하여금 “맹세”를 하게 함으로써, 실제 재판의 전 과정을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관행을 말합니다. 이 때 어느 쪽이든 자신의 정당함이나 또는 무고함을 “맹세”함으로써, 문제를 법정에까지 가져갈 수도 있다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상대측에 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두고 맹세하건대, 내가 아무 잘못도 없으니 고소하려면 해보라”는 식이겠지요. 당시 ‘바울’이나 그의 독자들도 이런 법 관행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20절이 주는 메시지의 효과는 충분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비록 사도 자신도 ‘그리스도’인이 세상 법정에서 서로를 송사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기는 합니다만(고전 6:1-8),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법정에까지 가지고 가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도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고후 1:23; 11:31; 살전 2:5). 자신과 그의 복음을 향해서 쏟아지는 거짓 선전과 악의에 찬 비방에 대해서, 교회와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사도의 결의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시리아와 길리기아 방문(21-24절)
사도가 전해주는 다섯 번째 이야기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방문에 관한 것으로서, 이번에도 이 방문과 관련해서 그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두 가지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21절)
또 다른 접속사 “그리고 나서”가 암시해 주고 있는 바는 그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과 이어지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방문 사이에 그 어떤 장애 요인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사도가 방문한 두 지역은 행정적인 구역이라기보다는 보다 넓은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수리아’는 ‘안디옥’ 주변 지방을, 그리고 ‘길리기아’는 그의 고향 ‘다소’ 주변의 지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참고, 행 9:30; 11:25-26).
그가 이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두 번째로 방문하기 전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에 관해서는 23절을 통해서 추론할 수 있듯이, 복음 전도였습니다. 물론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이곳에서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전개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적어도 그의 초기 선교 사역의 시작으로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혹자는 그가 <고린도후서> 11:23-29에서 언급하고 있는, “수없이 많은 고난”은 이 기간 동안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로부터 다섯 번, 그리고 ‘로마’ 당국으로부터 세 번의 태장(笞杖)을 받았던 것도 이 시기에 있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사도가 ‘디아스포라’의 회당을 돌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때 ‘유대’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로마’ 당국으로부터도 많은 박해와 배척을 당했을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유대’ 땅으로도 전해졌을 것입니다.
나를 알지 못하고. 그러면 사도가 지금 ‘시리아’와 ‘길리기아’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진정한 의도는 무엇입니까? 그 첫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22절)
만일 사도가 ‘예루살렘’ 사도들의 지휘나 감독 하에 있었다면, 두 번의 ‘예루살렘’ 방문 기간 사이에 ‘유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런 곳에서 복음 전도 사역을 수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죽했으면 개인적으로 그와 일면식(一面識)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유대’의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아무도 없었겠습니까? 당연히 그의 사역은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과는 전혀 무관한, 전적으로 독립적인 행보였음이 다시 한 번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예루살렘’ 교회 회중들 중 아무도 ‘바울’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지는 못해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그가 무슨 활동을 펼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23)
하나님께 영광을. 이 소문은 사도가 날조한 것이 아니라, 그의 복음을 들은 ‘시리아’와 ‘길리기아’의 유대∙그리스도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것입니다. 이들이 확인해주고 있는 더욱 중요한 사실은, ‘바울’이 전하고 다니는 복음이 다른 복음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복음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전에 이 복음의 박해자가 지금은 수호자가 되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극적인 대조를 통해서 그의 다섯 번째 간증에 쐐기를 박고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24절)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의 권위와 “그의 복음”을 단순히 인정만 한 것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족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불만으로 일그러져 있는 ‘유대주의자’들의 얼굴과 함께 ‘오버랩’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그의 종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과 사상에 있어서나 어휘에 있어 맥을 같이 하고 있는 듯합니다: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사 49:3).
교훈과 적용
예루살렘 방문.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이야기는 모두 자유의 이야기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한 사람이 어떻게 이전의 생각이나 사상의 한계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죄책감이나 후회라는 감정적 감옥에서 벗어나게 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는 변화될 자유, 즉 우주와 역사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자유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들은 잘 정리된 수학 공식처럼 되어 있지는 않다.” 유진 피터슨(E. Peterson), 61쪽.
사람들은 곧잘 공식을 선호합니다. 우리를 모든 염려와 근심에서 해방시켜 줄 몇 주 내지 몇 개월 완성의 “처방전”을 기대합니다. 때로는 어떤 심리학적인 주문이나, 종교적인 의식도 이 속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많은 “자유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듣는 천편일률적인 공식들 중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난 뒤 사회적인 신분상승을 경험했다,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었다, 고통과 절망에서 벗어나 치유와 환희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곧 헌신의 대가라고 주장하는 듯합니다. 자신의 삶이 사회∙경제적으로나 육체∙정신적으로 이전보다 더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정말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아무튼 자유는 공식처럼 오지 않으며, ‘가공식품’처럼 급조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단순하지도 않습니다. 자유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전 생애에 걸쳐 진행되는 혁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방식입니다. 그는 정형화(定型化) 된 공식을 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역발상(逆發想)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네 번째 이야기는 ‘예루살렘’ 방문에 관한 것입니다. 이전에 그가 들려주었던 세 이야기는 모두 주로 개인적인 영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1) 이전의 삶; (2) 대역전; (3) ‘아라비아’에서의 고독의 시간. 그런데 사도는 이 네 번째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나누는 것에 관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느낌이 정당하고 건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경험은 자칫 신비주의나 독선으로 흐를 위험이 많습니다. 바로 이것이 공동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특수하고도 독특한 이야기가 공동체 안에서 나누어질 때, 하나님의 은혜의 공통적인 구조를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자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격상시키지 않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뿐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는 많은 차이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자라온 배경에 있어서나, ‘그리스도’인이 된 과정에 있어서나, 각자가 받은 소명에 있어서나,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세속적이고 거칠고 경건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바울’은 세련되고 도시적이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죄 된 삶에서 회심했고, ‘바울’은 종교적인 삶에서 회심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먹고 대화하고 일하며 그분과 밀접한 인격적 관계를 갖는 가운데 회심했습니다만, ‘바울’은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짧게 그분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이런 관계 때문에 자연스럽게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로 그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바울’은 수 년 동안 지도자로서의 권위는커녕 그리스도인들을 살인한 도살자라는 악명을 쓰고 살아야 했습니다(유진 피터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은 불과 1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만나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누면서, 경쟁자가 아니라 동역자가 되어 갔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그의 이야기”보다 낫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심의 방식이나 모델 같은 것은 없으며, 회심을 위한 네 단계의 공식 같은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의 방식이나 대상에도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 이시지만 서로는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일한 은혜의 선물을 받았지만, 서로의 삶 속에서 독창적인 이야기를 창조하고 계신 것도 알았습니다. 두 사도는 이를 발견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15일을 꿈같이 보냈을 것입니다. 서로를 주장하지도 않았고,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르다고 인정은 했지만 배척은 하지 않았습니다. 각자는 자신이 독특하다는 점을 알았지만 자신만이 독특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바울’이 들려주는 “예루살렘 이야기”가 “역발상”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왜 이것이 역발상인가? 사람들은 늘 권력이나 권위에 줄을 대려 합니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유력 인사로 인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강연이나 저술에서도 세계적인 석학들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이 정당함을 인정받으려 합니다. 사기꾼들도 청와대나 정부 고위 관리와 어떤 식으로든 친분이 있음을 과시하면서 접근합니다. 동국대학교 교수였던 신정아도 세계적인 예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사기를 쳤습니다. 선거 때마나 국회의원들 대선 유력 후보나 정당을 쫓아 줄서기에 바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유령 신학교라도 좋으니 신학 박사 학위를 받으려고 애쓰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필자 역시 만일 ‘바울’과 같은 처지에 있었다면, 필경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 있는 사도들과의 친분을 과시하거나, 그들로부터 중요한 가르침을 전수받았다는 일종의 학위증이나 또는 수료증 같은 것을 받으려고 안달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정반대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가기는 했지만, 가서 만난 사람이라고는 단 두 사람 ‘베드로’ 사도와 주님의 동생 ‘야고보’ 뿐이었지. 그것도 15일 간이라는 지극히 짧은 기간이었다네.” 도대체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시리아와 길리기아 방문. 그의 다섯 번째 이야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나의 이야기”를 “그들의 이야기”로 만들어 주는 것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회심의 이야기가 소명에 관한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것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물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로, 더 나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로 흘러 넘쳐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예루살렘’ 교회 식구들이 아니라, 사도 자신도 전혀 알지 못하던 상인, 선생, 외판원, 학생, 엔지니어, 군인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모두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삶 속으로 ‘바울’ 자신의 “나의 이야기”가 흘러 들어가서, 그들로부터 새롭고도 다양한 “나의 이야기”가 창조되어 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디도’일 것입니다(2:1, 3).
그런데 이런 일이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나 승인 하에 이루어진 것입니까? 사도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 만난 사람이라고는 단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외는 아무도 그의 얼굴도 제대로 알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그를 가르쳤겠으며, 이방인 선교에 대해서 논의를 할 수 있었겠으며, 승인이나 감독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히려 정 반대로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가 ‘수리아’와 ‘길리기아’에서 행하는 소식을 나중에 듣고 놀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역발상은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제 누가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것입니까? ‘바울’입니까 또는 그의 반대자들입니까? 이제 일그러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사도를 쳐다보고 있는 이 사람들 모습이 보입니까?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까? “나의 이야기”를 “그의 이야기”와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며 “우리의 이야기”로 공유해 본 적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로 만들어 본 적은 있습니까? 사람들이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습니까?
토의 문제
1. 사도가 들려주는 네 번째 ‘알리바이’는 무엇입니까? 그 이야기의 내용은 무엇이며, 사도가 의도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2. 다섯 번째 ‘알리바이’는 무엇이며, 의도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3. 자유의 이야기에 공식이 없다는 말에 대해서 소감을 나누어봅시다.
4. 공동체 안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그의 이야기”와 함께 나누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어본 적은 있었습니까? 아니면 각자의 이야기로 끝났습니까?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