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교회 학교
김태정 목사골 1:16약 26분 분량

모든 창조 세계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의 소유다!”라고 주장하지 않으시는 구역은 없다(Abraham Kuyper)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교회의 조직 및 기능과 관련해서 앞 장에서 제시했던 세 가지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교회는 가정이다; (2) 교회는 학교다; (3) 교회는 군대다. 이제 이곳에서는 두 번째 이미지에 해당하는 학교에 대해서 논의해 볼 차례입니다.
가정이나, 학교나, 군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이들 모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전인적인 훈련장이라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 기관 모두 나름대로의 독특한 방식과 강조점을 가지고 전인적인 학습이나 훈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만, 학교는 주로 지적인 학습을 담당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영성 훈련의 대가 ‘리차드 포스터’(R. J. Foster)가 지적한 바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학습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에 매여 있습니다. Richard J. Foster, <영적 훈련과 성장>, 권달천∙황을호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9.
‘포스터’의 말에 따르면,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또 종교적 의무를 열성적으로 수행하면서도 변화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로 그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데 사용하시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인 학습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아는 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그냥 진리가 아니라 진리를 아는 지식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학습을 통해서 비로소 얻어집니다. 교회학교의 목적과 기능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물론 학습은 단순히 지적 학습만을 포함하지는 않습니다만, 교회학교는 이를 중점적으로 다루게 될 것입니다.
‘포스터’의 구분에 의하면 지적 학습은 크게 두 가지 대상을 포함하는데, 하나는 말과 글로 된 책에 대한 학습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말과 글이 아닌 대자연에 대한 학습이 있습니다. 후자(後者)에 대한 학습은 주의(主意)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포스터’는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 때 필요한 자세나 태도는 세밀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관찰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이러한 학습 방식은 단순히 교실 안에서 주입식의 교육으로 단기간에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각자가 일생을 두고 이루어가야 할 과제인 만큼 개인적인 훈련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학교의 주된 학습 대상은 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독서에 관한 일반적인 이해를 구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단락은 독서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으로서, 교회학교에 관한 제반 사항들을 다루기 전에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독서의 필요성에서부터 독서의 내용이나 방법 등에 관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독서: 그리스도인의 지적 훈련
왜 독서인가?
지도자와 독서. 왜 독서가 중요하며 독서를 위해서 따로 시간을 떼어놓지 않으면 안 될까? 너무 진부한 질문이라 답변 역시 진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삼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는 ‘바울’의 글 중에서 현존하는 마지막 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지금 순교 수주일 또는 며칠 전에 ‘로마’의 침침하고도 습한 지하 감옥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의 사도 사역을 이제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표현대로 “전제와 같이 벌써 부어지고 떠날 시각이 가까워오고” 있습니다(딤후 4:6).
‘존 스토트’ 목사님은 이 책에 대한 주해서의 서문(序文)에서, “눈시울 적시지 않고는 이 책을 읽을 수 없다.”고 했던 ‘핸들리 모울’의 고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글에서 이전에 그가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써내려가면서 보여주었던 위풍당당한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가 ‘디모데’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겨우 겉옷 나부랭이와 읽던 책 정도이니 말입니다.
사도 자신은 한 때 ‘디모데’에게 “읽는 일에 착념하라”고 권고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물론 그가 교회에서 회중들 앞에서 <구약>을 읽어주라는 것이겠지만, 그의 권고는 다른 분야의 독서를 위해서도 아주 적절하게 적용해야 할 권면이기도 합니다. 사도가 ‘디모데’에게 가져오기를 바라는 책이 무엇이었을까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합니다. 혹자는 사도 자신이 <구약>에 대한 주해서와 ‘유대’ 역사서 그리고 자신이 설교에 인용했던 몇몇 이교도 시집들 정도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이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며, 또 한 편으로는 “주님의 말씀이나 사역에 대한 초기의 공식자료”(흔히 Q자료로 알려져 있는 것)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무엇이든 간에 이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는 ‘바울’은 죽는 날까지 배우고 읽기를 결코 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들의 한 결 같은 공통점은 독서에 대한 열의와 습관이라는 사실입니다. <디모데 후서>에 관한 몇몇 주해서를 읽어보면, ‘바울’보다 훨씬 훗날 1536년 역시 감옥에서 순교했던 ‘틴달’(W. Tyndale)이 그의 총독에게 보낸 편지와 함께 이 서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온열 모자, 양초 한 개, 내 정강이 받이를 댄 옷 한 번...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은 나의 히브리어 성경과 히브리어 문법책과 히브리어 사전이며, 내가 이것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에 재촉해 주시며, 그래서 내가 그것으로 공부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바울’과 ‘틴달’ 모두 순교하기 전, 하루하루를 독서하며 공부하는데 몰두했습니다. 두 지도자의 공통된 모습입니다.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독서를 즐겨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떠했을까요?
자아의 발전. ‘바울’ 사도는 어떻게 그처럼 멋진 서신과 신학 논문을 쓸 수 있었을까? ‘샌더스’(Sanders)는 그의 책에서 “영적으로나 지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계속적으로 책에 몰두해야 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베이컨’(Bacon)도 독서의 규율에 대해서 쓰면서 “반대하고 논박하거나 또는 믿고 동의하기 위해서, 또는 이야기 거리를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가치를 알고 연구하기 위해서 독서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렇게 할 때만이 우리의 영감의 우물이 채워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홍정길 목사님은 한 달에 꼭 두 권의 책을 읽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요한 웨슬러’는 적어도 수천 권의 책을 읽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 그 유명한 <그리스도를 본받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설적인 침례교 목회자이자 신학자인 ‘찰스 스펄젼’(C. Spurgeon)은 <천로역정>을 통해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존 스토트’ 목사님의 독서에 대한 열의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분은 설교를 위해서 선택한 본문에 대해서 적어도 200회 정도는 반복해서 읽고 연구한다고 했습니다.
이점과 관련해서 본인은 부끄러운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설교 준비를 위해서 <성경>을 마주하고 있으면, 서재에 참고할 만 한 서적이 절대적으로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이점 성경공부 준비를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부분입니다. 본인의 이런 안타까운 심정을 잘 이해하는 교인들도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는 설교를 영혼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양식으로 보기보다는, 예배에서 필요한 하나의 요식 절차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필자에게 “목사님 영혼뿐만 아니라, 우리교회 전체 성도들을 위해서 이 책을 읽고 설교에 참고하십시오.”하며 책을 선물하는 교인을 별로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목사가 책을 선정해서 소개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제대로 읽으면 다행이겠습니다만. 참고로, 오래 전에 제 생일에 한 제자가 선물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제 일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 중의 하나임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독서는 실로 정신적인 자극이나 설교나 또는 자신의 스타일의 개발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성공의 조건. 독서는 영적인 자아 발전 내지 성숙 외에도 과연 세속적인 성공도 보장해 줄까? 그렇습니다. 누구든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성공하기를 원하는 자라면 독서는 그 첫 번째 요건이 될 것입니다. 나의 경우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해서 참고한 책이나 타인의 논문이 대략 140여 권에 이릅니다. 물론 학위 과정 중에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참고 서적이나 논문들을 읽었지만, 이 수는 직접적으로 본인의 논문 작성에 필요했던 것들입니다. 지난 이야기이지만 대학의 운동권 진영에서 후배 운동권 학생들에게 이념 관련 서적 400여 권을 읽힌다고 합니다. 이 정도의 독서로 무장한 사람이라면 웬만한 논쟁에서 상대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우리가 가진 소망에 대해서 묻는 자에게 항상 대답할 준비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이들 운동권 학생들은 자신이 가진 소망에 대해서 이처럼 중무장을 하고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합니다.
독서는 일종의 간접 체험입니다만, 우리가 얻을 수 없는 정보,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위대한 지도자들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독서를 통해서 그들이 구사했던 훌륭한 표현, 정확한 어휘 구사력, 상대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표현, 정곡을 찌르는 논리 등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 지도자들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선배 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유명한 과학자의 논문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무엇을 읽을까?
이 질문은 “왜 독서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버금가는 중요한 질문일 것입니다. 이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내가 가진 시간이 얼마나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유한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대답은 “가장 좋은 책들만 골라 읽으라.”가 될 것입니다. 가장 좋은 책이란 결국 인류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누군가 우스개로 고전에 대해서, “누구나 읽어야 된다고 말하지만 실은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는 책”이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만, 독서를 말할 때 고전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고전 중의 고전. 고전이란 시대를 두고 변치 않는 사랑을 받아 온 책들로서, 고전 중의 고전은 역시 <성경>일 것입니다. <성경>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라, 더 이상의 언급이 필요치는 않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선배 목사로서 후배 목사이자, 영적 아들이기도 한 ‘디모데’에게 강조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알다시피 목사의 가장 으뜸 되는 소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일 텐데, 이 구절에서 ‘바울’ 사도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다른 사도들 역시 말씀을 읽고 가르치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으면, 그 외의 모든 사역들은 집사들을 따로 떼어 맡도록 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내 자식들에게나, 이웃에게나, 제자들에게나, 또는 직장 동료들에게 얼마나 이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후로 과연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 구절을 실천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고 있습니까? 내 인생의 의미나 목표가 과연 “대 위임령” 즉 “제자 삼기”입니까? 더 나아가 내 제자가 다른 사람을 제자 삼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늘 앵무새처럼 말로써만, 기도로써만,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타인에게는 없고 자신에게만 있는 것을 자랑하기 마련입니다. 부자는 돈을, 정치가는 권력을, 운동선수는 재능을.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자랑합니까? 내가 가진 복음을 단 한 번이라도 자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성경> 지식을 자랑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해서 변변한 대답을 할 수 없다면 나는 정말 심각하게 내 자신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왜 하나님께 열심을 품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혹시나 하나님이 나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내가 하나님을 모르고 있든지 말입니다.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피상적인 성경공부의 위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늘 듣기는 하나 더 이상 내 가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뜨거워지거나 아프지 않습니다. 열심과 흥미를 가지고 절실하게 연구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 한 가지, 누구나 가르치면서 배우는 법입니다. 이번 주 설교할 일이 없다면 나는 성경연구에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대학에서 강의할 책임이 없다면, 강의 준비를 위해서 연구하고 독서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 공부 인도할 일이 없다면, <성경> 연구도 필요 없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간에 누군가에게 <성경>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단 한 번이라도 치열하게 싸워본 적이 없다면, 말씀 연구에 별 흥미가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예배 시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건대, 그 이웃이 누구든 <성경>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요? 모르면 자랑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기이하게도 많은 성도들은 <성경>을 모르는 것을 자랑삼아 말하고 다닙니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겸손함을 드러내는 것인 줄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겸손할 일이 따로 있지,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주일에 한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그 일에 목숨을 거시기 바랍니다. 결단할 수 있겠습니까? 예배 후 결단의 시간에 나와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고전과 고전적 가치. 그런데 우리가 <성경> 가르치는 일에 목숨을 걸기 위해서는 <성경>을 제대로 아는 일이 필요한데, 아쉽게도 <성경>은 그 자체로 읽기가 아주 힘듭니다. 오늘날 성도와는 문화적으로나 시대적으로 너무나 다른 상황에서 기록되고 편집된 책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에 <성경> 외의 독서들에 대한 읽기가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 인류가 고전으로 꾸준히 읽어온 것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굳이 기독교 고전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설교는 <성경>만 읽어서는 어렵습니다.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 주해서만 읽을 수도 없습니다.
기독교 고전 외에도 수없이 많은 일반 고전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일반 성도의 경우에는 신학서적들을 읽는 시간에 일반 기독교 고전이나 일반 고전들을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인 독서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전이라 해서 반드시 오래된 것일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고전적 가치를 지니는 현대의 책들도 아주 많습니다.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해서 아주 깊은 통찰력을 갖게 해주는 책들을 이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최근 내가 읽은 책 중에 그런 것들이 있습니까? 한 번 소개해 봅시다.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읽어보셨습니까?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어떻습니까? ‘유진 피터슨’의 네 권의 영성 시리즈, <현실, 하나님의 세계>, <이 책을 먹으라>, <그 길을 걸어라>, 그리고 <비유로 말하라>는 어떻습니까?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은 어떻습니까? ‘프란시스 쉐퍼’의 걸작들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필립 얀시’의 책들은 얼마나 읽어보았습니까? 이들 작가들은 모두 오늘날 베스트셀러 작가들로 알려져 있는 분들입니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이들 책들을 통해서 영성을 새롭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읽을까?
마지막으로 어떻게 효과적으로 독서를 할 것인가에 관한 소고(小考)입니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독서 계획이나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만, 필자가 견지하고 있는 일련의 원칙들이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첫째, 다양한 독서를 합니다. 다양함은 다양한 분야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역사, 철학, 문학 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입니다. 심지어 영화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소설류도 꽤나 좋아했었는데, 목사가 된 후로는 시간에 쫓겨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가끔 읽는 소설이나 관람하는 영화는 필자의 설교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꿈과 용기를 심어줍니다. 그리고 <성경> 공부 교재를 만들 때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둘째, 쉽게 읽을 수 있거나 버릴 것은 읽지 않습니다. 이 중에 수필이나, 간증집, 기타 소위 베스트셀러로 알려진 것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셋째, 손에 펜을 들고 읽습니다. 이 말은 독서 중에 생각난 여러 가지 생각이나 의문 또는 아이디어들을 여백에 적어가면서 정리와 묵상을 겸하여 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한 권의 책에 대해서 두 번 이상은 꼭 읽습니다. 필자가 가진 책 중에서 어떤 책은 수십 번 읽은 것도 있습니다.
다섯째, <성경> 읽기는 조용한 새벽 시간에 묵상을 위해서 1-2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하며, 일반 독서는 저녁이나 쉬는 시간에 가볍게 합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여행은 주로 열차를 이용하려 하는데 독서를 위해서입니다.
여섯째, 좋은 책은 두 권을 삽니다. 독서 중에 펜을 가지고 책의 여백에 쓰거나 줄을 긋기도 하기 때문에, 고전적 가치를 지니는 좋은 책의 경우에는 한 권은 장서용으로 추가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비닐 등으로 겉표지를 싸둡니다.
신학교에서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책 한 권은 성도 한 사람”이라는 말을 합니다. 책 한 권 읽을 때마다 성도 한 사람 는다는 농담 섞인 충고입니다만, 목회지가 책을 읽지 않고 목회를 할 수는 없음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어찌 목사에게만 국한될 수 있겠습니까? 독서는 우리 모두에게 꿈과 이상을 제공해 줍니다. 가벼움과 피상성에서 탈피하여 신중함과 깊은 영성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독서는 우리를 지도자로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전문인과 성공을 보장해 줍니다. 그래도 독서를 게을리 하시겠습니까? 필자가 만든 警句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Passion and Practice Promise Prosperity!”
기독교 교육과 교회학교
교회학교의 주된 교육의 대상은 책이며, 독서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을 살펴보았으므로 이제 남은 문제는 “교회학교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입니다. 전자(前者)가 기독교 교육의 내용에 관한 질문이라면, 후자(後者)는 그 방법에 관한 질문이 될 것입니다. 이들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하기 전에 우선 기독교 교육의 정의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정의
기독교 교육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인바, 보다 좁은 의미에서의 기독교 교육은 그야말로 “기독교에 관한 교육”(Education of Christianity)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정의에 따르면 가르치는 내용은 성경 공부를 위시해서 신학이나 기타 기독교의 기본 진리 등에 관한 교육으로 한정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기독교 교육은 “기독교적 교육”(Christian Education),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적(또는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교육”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광의(廣義)의 정의에 따르면, 교회학교에서 교육하게 될 교과목들은 일반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문의 전 영역을 포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장의 서두(序頭)에서 인용하고 있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선언이나 <골로새서>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골 1:16),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을 것이므로, 교회학교의 교과과정은 기독교 교육에 관한 광의의 정의를 따라 구성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기독교 교육에 관한 고전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번’(Hebert W. Byrne)의 저서, <기독교 교육: A Christian Approach to Education>에서 제안하고 있는 방식을 다소 수정하여 가능한 분야들을 총괄해 보면 아래 그림에서처럼 크게 네 분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H. W. Byrne, <A Christian Approach to Education>. Mott Media: Milford, MI: 1981.

이 구분에 따르면, 교회학교는 단순히 성경공부나 기독교의 기본 지식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일반 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거의 전 영역을 비록 개론적 수준에 머문다 할지라도 모두 포함시킴이 그리스도인의 전인적 훈련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목적
우리교회 학교는 가정교회를 지향하는 이상과 정신에 따라, 교회 목장에 속한 모든 성도가 제사장과 사역자가 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기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충조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2-14)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세우려 함이니(골 1:28)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무엇보다 지적 훈련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면서 늘 의학백과 사전을 들여다보아야 할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러한 사람에게 수술을 해 달라고 자신의 몸을 맡기는 환자는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의사라면 신체 각 부위의 위치나 기능에 대해서 달통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 의사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제반 문제들에 대해서 <성경>적 대안을 항상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야말로 가장 신학교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상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바, 지식이나 믿음에 대해서 조리 있게 제시하지 못합니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지식을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는 그나마 알고 있는 바도 제대로 표현하는 훈련을 쌓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학교>의 일차적이고 우선적인 목표는 <성경>과 기독교 진리에 대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지식을 쌓도록 하는데 두어야 할 것입니다.
입학
자격 및 조건. 본 교회의 회원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습니다. 단 목자의 확인 및 추천과 함께, 본인의 서약서를 제출하면 됩니다. 서약서 양식은 별첨과 같습니다. 교회 학교 입학 시에 서약서를 제시하도록 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교회학교의 권위와 가치를 인식시키기 위함입니다. 대부분의 성도가 교회학교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는 일반 교육기관을 대하는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실로 한심한 수준입니다. 일반 학교는 입학에서부터 졸업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철저하게 제도화 및 법제화 되어 있어 학생 개개인이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학생 본인은 물론 학부모 중 어느 누구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경비로 전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힘이 들어도 끝까지 견딜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학교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학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있다 해도 교회교육은 교회 사역의 우선순위에서 늘 최하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배, 찬양, 봉사, 선교, 기도, 교제 등에 의해서 늘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교육 예산 또는 교회학교 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10% 이상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교회학교에 대한 인식이 이러할진대, 교육에 임하는 교인의 자세 또한 열성적이거나 진지하지 못합니다. 혹시 나는 교회학교에서 과제물을 내주는 교회가 있으며, 또한 과제물을 제출하는 성도를 본 적이 있습니까? 출석 점검하는 교회학교 보았습니까? 출석이나 성적이 좋지 못하여 이수(履修)에 실패하는 성도를 본 적이 있습니까? 교회학교에 등록비를 요구하는 교회를 보았습니까? 일반 학교처럼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다양한 과목과 교사들이 교육하는 교회를 본 적이 있습니까? 저학년에서 고학년에 이르는 일련의 이수 연한을 갖추고 있는 교회학교를 본 적이 있습니까?
대부분의 교회에서 교회학교와 관련한 조직이나 체계가 없는 이유는 목회자는 물론 일반 성도에 이르기까지 교회학교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학교 입학 시에 본인의 서약서를 받는 일은 이 모든 잘못된 관행이나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첫 걸음에 불과한 것일 뿐입니다.
둘째, 본인의 서약서를 통해서 본인의 교회교육 이력을 확인하고 점검하기 위함입니다. 교회학교는 앞서 언급한 바대로, 횡적이고 종적인 체계나 편제가 필요합니다. 횡적인 체계라 함은 교회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이수 과목을 말하는 것이고, 종적인 체계라 함은 일종의 선수과목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의 서약서나 또는 성적 증명서에 그가 이수한 전체 과목에 대한 목록이 기재되어 있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서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성경적 세계관을 갖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등록비. 등록비는 매년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등록비는 교재비 및 기타 비용에 충당될 것입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하였으니, 이수하려는 과목에 등록비를 냄으로써 그 과목에 대한 관심과 열성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입니다. 대학에서 돈 안내고 소위 청강(聽講)하는 사람치고 공부 잘 하는 사람 드뭅니다. 선물로 받은 <성경> 읽는 사람 제대로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기타 교육에 필요한 경비가 있다면 교회 예산에서 충당하게 될 것입니다.
입학 시기. 교회학교 입학은 매년 1월과 7월에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입학원서는 학기 개시 1주 전에 제출합니다. 단 학기 중에 새 가족이 된 회원에 대해서는 해당 목자의 확인에 의해 청강이 가능합니다만, 성정 처리는 되지 않습니다. 단 전체 수업일수 3/4 이상을 출성한 회원에 한하여 정상 등록한 것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학사 관리
학사 일정. 학기는 1월과 7월에 시작하는 두 학기제로 운영합니다. 단 각 학기 중간에 특별 행사나 세미나 등으로 휴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적 관리. 성적처리는 다음 세 가지 원칙에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 (1) 성적은 합격 및 불합격으로 처리됩니다; (2) 해당 학기에 3회 이상 결석 시에는 실격 처리됩니다. 잦은 결석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침체시킨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3) 담당 교사가 요구하는 모든 숙제와 독서와 시험을 필해야 합니다.
이수 학점. 각 학년에 개설된 학점 총수는, 교과과정표에 보듯이 매 과목 당 3학점을 기준으로 할 때, 20 학점 전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매 학기 당 두 과목(6학점) 정도를 수강하여 짧은 시일 내에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만, 교사 확보가 관건이니 만치 당분간은 한 과목 수강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두 과목 이상의 수강은 목장 모임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고 교사가 확보되면 과목 선택의 폭도 넓어질 것이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교과 과정
기본 정신. 교과 편성의 정신은, 앞에서 천명한 기독교 교육 정신 즉 “모든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라는 통합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이 정신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서, 크게 다섯 분야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1) 기독교(100); (2) 인문학(200); (3) 사회과학(300); (4) 자연과학(400); (5) 문화예술 및 언어(500). 교회가 이들 분야를 망라하여 교육하기 위해서는 교회학교는 일종의 평생교육기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림잡아 한 분야를 대학 4년 과정으로 본다면, 전체 다섯 분야 모두를 교육하는 데에는 적어도 20년은 족히 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 과목의 괄호 안에 든 숫자는 분야별 대(大) 분류 번호에 해당하며, 이는 다시 중∙소분야로 나누어집니다: (예) 100 > 110 > 111 > 111-A. 예컨대, 기독교(100)의 경우 중∙대 분야만을 구분해 보면 아래 그림과 같이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기독교 100 교육 과정은 그 내용에 따라 네 개의 중(中) 분야로 나누어집니다: (1) 복음(110); (2) 성경(120); (3) 역사(130); 선교(140). 이들 각 분야는 신학적 주제에 따라 각기 조직신학, 성경신학, 역사신학, 및 실천신학으로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바깥에서 두 번째 동심원 참고). 기독교 100 과정의 특징은 주로 <성경>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에 관한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만, 지나치게 신학 일변도가 되지 않도록 유념하였습니다. 소(小) 분야와 그 이하는 별도 도표에 수록해 놓았습니다(아래 도표 참고). 동심원의 가장 바깥에는 교육의 대상자를 구분해 놓았는데, 교회회원으로 등록한 연륜에 따른 것입니다. 이처럼 대상자를 구분해 놓은 것은 나름대로 교육의 수평적이고 수직적인 체계를 고려한 것인데, 예컨대, 조직신학의 경우 기독교 기본 진리나 교리를 다룬 것으로서, 그 대상은 주로 신입 교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동심원의 가장 중심원 “초청”(101-109)은 신입회원 내지는 불신자를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위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100 과정>만으로도 적어도 4년의 교육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100 과정>에 포함될 수 있는 과목들을 주제에 따라 소(小) 분야와 각 학년 별 교과목을 정리해 보면 아래 도표와 같습니다. 이 표는 수강의 순서와는 상관없으며, 앞으로 교사가 확보되는 대로 전 학년의 과목들이 매 학기마다 동시에 개설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초청. <101-109> 과정은 교회 회원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불신자를 위한 일종의 다리 놓기 사역으로서, 수시로 교회학교와는 별도로 회원 각자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또는 목장 별로 수행할 수 있는 초청, 전도 및 봉사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각 회원은 나름대로의 은사를 체험하고 활용할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교회 회원이 다양해질수록 이 영역의 과목은 더욱 다양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복음. 이 주제는 주로 1년차 교과과정의 주제로서 교과번호 <110-119>가 이에 포함됩니다. 신학적 주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주로 조직신학적인 것으로, 그 내용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 내지는 기본 소양에 관한 것들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본 교회의 <이상과 정신>에 관한 내용과 <영정 훈련과 성장>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재는 주로 <성경>에서 복음의 기본 진리를 다루고 있는 <신약>의 일부 책들이 될 것이며, 그 외에도 이와 연관된 부교재들을 함께 사용할 것입니다. 기타 필요에 따라 새로운 교과목들이 추가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복음>의 주 대상은 교회의 신입회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경. 제 2학년 교과 과정의 신학적 주제는 “성경 신학”으로서 교과번호 120에서 129까지가 이 주제를 다루게 될 것입니다. 다루게 될 내용은 <구약 개론> 및 <신약 개론> 등을 통해서 <성경>의 전반적인 골격과 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경> 해석의 원리와 방법론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구체적인 <성경 해석학>의 실 예를 각 책의 해석을 통해서 실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역사. 제 3학년의 주제는 역사입니다. 교과번호는 <130-139>가 될 것이며, 다루게 될 내용은 <원 역사>, <족장사>, <이스라엘의 역사>, <신구약 중간사> 그리고 <기독교회사> 등이 될 것입니다. 제 3학년에 이르러 대부분의 신자는 이미 성숙의 단계를 지났다고 사료되며, 따라서 이때부터 교회의 사역자 즉 적어도 목자로서의 부르심을 자각하고 이에 필요한 훈련도 아울러 거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선교. 제 4학년의 주제는 선교입니다. 고학년에 이를수록 점차 신학적 관심도 이론적인 것에서 실천신학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교과번호는 <140-149>에 이릅니다. 선교는 로잔언약의 정신을 그대로 따랐으며, 교수 내용으로는 선교의 원리에서부터 전도실습 및 봉사활동, 비전여행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선교의 주체가 교회인 만큼 <교회론>과 관련한 일련의 주제들을 동시에 수강하게 될 것인데, 예컨대 <교회와 예배>, <기독교 윤리>, <교회와 종말론> 등에 관해서도 배울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룬 교과목은 모두 100-140에 이르는 것들로서, 협의(狹義)의 기독교 교육 교과과정, 즉 <성경>과 기독교 진리에 관한 제반 교육 과정입니다(아래 그림 참조). 보다 광의(廣義)의 기독교 교육과 관련한 분야의 교과목들은 추후 교회 성장과 더불어 점진적으로 추가하게 될 것입니다.
연습과 토의
1. 교회가 가장 좋은 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토의해 봅시다.
2. 교회학교가 통합적 세계관에 입각한 교과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3. 누군가 나에게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얼마나 잘 대답할 수 있습니까?
4. 기독교인의 지적 훈련은 무엇이며, 이것은 왜 필요합니까?
5. 이곳에서 제시한 지적 훈련의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우리교회 학교의 이상과 정신에 입각해서 정리해 봅시다.
6. 우리교회 학교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6. 우리교회 학교는 교과목에 제시한 내용들을 가르칠 적절한 교사들이 학보되어 있습니까? 아니라면 이를 해결할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