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목회적 지도 체제 1: 감독
김태정 목사약 10분 분량
오늘 우리는 이 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두 가지 의식을 동시에 행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우리의 <헌장과 언약>을 통과시키면서 재 헌신의 뜻으로 우리 각자 헌신의 언약을 드리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결의한 <헌장과 언약>에 기초하여 새로운 목사 한 분을 임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 중에 우리 각자는 순서에 따라 하나님과 회중 앞에서 헌신의 언약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예배는 각별히 엄숙하고, 동시에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본인 또한 개인적으로 정말 기쁘고, 홀가분하기도 하며, 흥분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동안 거의 사문화(死文化) 되다 시피한 우리의 <이상과 정신>, 그리고 <헌장과 언약>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되었고, 우리 교회가 체제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고 있다는 자평(自評)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도 그에 걸맞게 성숙하고 성장해 갈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오늘의 예배도 그런 점에서 하나님 앞에서 특별히 새롭게 헌신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목회적 지도 체제를 갖추고,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자격을 정하는 것은 정말 중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건강은 안수 받은 지도자들의 신실함과 그들의 가르침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지도자는 교회의 제반 행습과 전통을 형성함에 있어 역할 모델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듣게 될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의 지도자 임명을 위한 대표적인 본문으로서, 우선 서론적인 요점부터 밝히는 것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먼저 본인은 본문 해석을 위하여 여러 유면한 주석가들의 책을 참고하였는데, 전통적인 주석서에서부터 비교적 자유주의에 가깝다는 ‘윌리엄 바클리’의 주석, 그리고 양측으로부터 균형 잡힌 시각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존 스토트’의 주석 등을 망라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심. 우선 본문에 대한 서론적인 요약은 크게 두 가지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목회자를 두기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는 <사도행전>이나 사도 ‘바울’의 여러 <목회서신>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바이므로 이곳에서 상세하게 소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추가적인 참고 본문. 행 14:23; 엡 4:11; 행 20:28; 딛 1:5).
둘째, 하나님은 지도 체제의 형태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규정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본문 1-7절에서 감독의 자격을 읽게 되고, 8-13절에서 집사의 자격을 읽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관해서는 교회가 처한 환경, 즉 역사와 문화에 따라 가변적이며 다양한 모습을 지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성경 해석에 관한 교회의 책임과 자유가 있다 하겠습니다.
감독과 장로. 오늘 우리는 두 직분 중에서 특별히 감독에 대해서 알아볼 것입니다 (집사에 대해서는 추후 집사 임직 예배에서 상세하게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감독이란 어떤 사람이었으며, 무슨 자격이 필요했으며, 무슨 일을 했을까?
“감독”이란 <헬라어 성경>의 ‘에피스코포스’(ejpiskopos)를 번역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를 감독으로 번역하는 것은 분명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스토트’ 목사님은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성공회나 로마카톨릭에서는 감독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bishop을 사용하고 있기는 합니다. 감독이란 일종의 계급 사회에서 상급자로서, 여러 사람을 다스리고 지휘하는 일을 맡아 하는 직책을 말합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감독의 역할은 여러 교회를 감독하고 목회자들을 세우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감독” 즉 ‘에피스코포스’와 함께 “장로”(presbuvteros, 프레스뷔테로스)도 등장하고 있는데, 이 두 단어는 실은 같은 직책을 가리키는 칭호였습니다. 우리는 <신약>의 여러 곳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7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28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17, 28)
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감독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벧전 5:1-2)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빌 1:1)
5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7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딛 1:5-7)
그렇다면 왜 같은 사람에게 두 개의 다른 호칭을 사용했을까? 적어도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로는 유대적 뿌리를 갖고 있으며(유대 회당에는 장로가 있었습니다), 목회자가 연장자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편 감독은 헬라적 뿌리를 갖고 있으면서(시의 관리나 부속 도시를 다스리는 관원들을 일컫는 데 사용되었다), 목회자의 사역 중 감독하는 측면을 나타낸다 하겠습니다. 정리하자면 감독은 기능을 나타내고, 장로는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결국 감독이든 장로든 오늘날 목사 또는 목자(poimhvn, 포이멘)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감독의 자격. 그러면 과연 누가 목사가 될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목사 안수식에서 안수위원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 본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심의 경험이 있었는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소명이 있었는가?
교리적 입장이 어떠한가?
최근 목사 안수를 받은 하 목사님도 아마 비슷한 과정을 거쳤으리라 짐작됩니다.
물론 이 세 가지 질문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며, 하등 잘못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첫 번째 질문인 회심의 경험과 관련해서, 교회의 지도자는 반드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또한 목회자가 되는 것이 개인적인 열망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 사실을 분명하게 확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행 20:28)
그리고 세 번째로 목사가 건전한 신학적 교리를 지니고 있어야 함도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서 가르쳐야 할 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 세 가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한 사람이 진정 회심을 경험했으며, 목회를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교리적 건전성을 견지하고 있어 양 무리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목회자의 자격 요건을 따져보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비추어 당사자를 평가하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많은 목사안수 위원회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자격 요건들은 간과하고, 대신에 <성경>에 있지도 않는 이런 저런 조건들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 따르면, 세 가지 핵심적인 요소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당연히 하나님의 부르심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음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조금 전에 언급했듯이, 사도 ‘바울’이 다른 곳에서 진술하고 있는 바를 그대로 확증하는 선에서 받아들이면 될 것입니다.
오히려 본문은 하나님의 부르심보다는 자원하는 자들의 내적인 열망을 더 강조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1절). “사모하다”로 번역하고 있는 헬라 단어 ‘에피뒤메오’(ejpiqumevw)는 “욕심을 내다” 또는 “탐을 내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 사도도 억지로 감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벧전 5:2).
어떤 내적인 음성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목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과 생각을 계발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선하고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욕구를 자극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모하고 탐내는 일은 그 사람 본인에게 달려 있다 하겠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비단 목사가 되려는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집사에 대해서도 똑 같은 원리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집사 역시 교회의 섬기는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하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시킬 수도 없고, 맡기는 일을 하기 싫다고 피해서도 안 될 일일 것입니다. 집사에 대해서는 추후 상고해 볼 기회가 있을 것이기에 이 자리에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조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과 본인의 열망에 이어, 세 번째 요건은 교회의 평가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뚜렷하고, 본인의 열망이 있다 해도 이 평가가 부정적이라면 그는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자격시험과도 같은 것입니다.
교회의 평가 항목 중에서 첫 번째로 나오면서 가장 일반적인 조건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2절상). 물론 이것은 그가 완벽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담’의 후손 가운데 이런 자격을 갖춘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다만 이 말은 그가 공적인 평가에서 “눈에 띄는 행동이 책망할 것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스토트).
이 지침은 교회가 목회자를 임명할 때 그들의 신원조회서나, 증명서, 기타 추천서를 받을 수 있는 성경적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침이야말로 목회자를 가장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교회가 가장 무시하고 넘어가는 지침이기도 합니다.
이제 자격 요건은 일반적인 것에서부터 특수한 영역 즉 윤리․도덕적인 영역으로 옮아갑니다: 신실한 결혼 생활; 자제력과 분별력; 나그네를 대접하는 마음; 술버릇; 혈기와 기질; 돈을 대하는 태도; 가정생활; 가르치는 능력; 영적 성숙도; 외부적 평가.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모두 열 가지 항목입니다.
이중 일곱 가지가 대충 윤리․도덕적인 영역에 관한 것으로서, 이들에 대해서는 따로 특별히 언급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나머지 세 가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나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가 전문적인 자질인 “가르치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결국 목회자는 교사가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자를 교회가 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새로 입교한 자”는 안 된다는 언급입니다. 즉 목사가 회심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 사람이 아니라, 나이가 지긋하게 든 장로로서 믿음에 성숙한 자라야 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젊은 청년에게 목사 안수를 주고, 교회 지도자로 세우는 일에 좀 더 사려 깊은 행동이 요구된다 하겠습니다.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젊은이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주게 되면 필경 교만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타인의 평가”입니다. 여기서 타인의 평가라 함은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의 평가도 포함합니다. 이 둘 중 더 정확하기는 후자일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보다 직장이나, 가정이나, 학교에서, 내 모습이 보다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그 사람의 대인관계라든지, 성실함이라든지, 진지함이나, 너그러움이나, 정직함 등에 대해서 대개 타인의 평가는 정확하고 예리합니다. 때로는 악의적이기도 할 것입니다. 마귀는 복음을 훼손하려는 악한 열심을 품고 교인이나 교회 지도자들의 평판을 훼손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타인의 평가와 관련해서 교회가 가장 간과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교회가 이 항목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 한 목사 지망생에게 때로 다음과 같이 말할 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을 잘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당신이 성격상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하나님의 양을 돌보는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그 부분부터 개선할 수 있도록 시간 여유를 갖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회자를 임명하거나 초청함에 있어, 본문에서 열거하고 있는 자질이나 자격에 대해서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고 고려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교회는 신약의 이상과 정신을 구현하고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출발한 만큼, 본문의 충고를 가능한 한 성실하게 준수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이지만, 동시에 회중 가운데서 나와야 하고, 회중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지도자의 권위는 회중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회중이 지도자를 직접 안수하는 의식은 형식적으로 비취기도 합니다만, 이는 성경적이며, 역사적이기도 합니다. 이제 본인의 간증과 헌신의 고백에 이어, 우리 모두가 목사님에게 안수를 행함으로써, 우리의 헌신과 순종의 고백을 함께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멘!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