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숨겨진 보화
김태정 목사마태복음 13:44약 7분 분량
<성경>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복음의 설명하고 상기시킬 때,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단 한 구절을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인데, 그것은 “숨겨진 보화”의 비유입니다.
이곳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조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가장 짧은 비유로서, ‘헬라’어로 단지 31개의 단어만이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의 의미는 매우 심오합니다.
우리가 이 비유를 해석하고 이해하기 전에 명심해 두어야 할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대개 한 비유에는 한 가지 주제만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제를 찾지 못하면 흔히 ‘알레고리’가 판을 치게 됩니다. 밖으로 드러난 이 비유의 주제는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 주제를 설명해주는 두 단어는 “보화”와 “감추인”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비유에 대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주제보다 더 깊은 의미를 알기 위해서 한 가지 질문을 먼저 해봅시다. 먼저 이 사람을 주목해 봅시다:
“이 사람은 지금 들판에 왜 나가있습니까?”
“이 사람은 무작정 이리저리 거닐다가 보물을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 밭이 팔리기 위해 내 놓은 것이라, 그 밭을 살 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조사해보러 나왔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왜 밭에 나와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바는, 그 사람은 우연히 거기 있었고, 우연히 보물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 뿐입니다. 한 가지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은 그 사람은 매우 영리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보물을 발견하자말자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그것을 다시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도 그 보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생각으로는 그가 밭주인에게로 가서, 이렇게 말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당신 밭에서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밭을 사고 싶습니다. 제게 팔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보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밭은 사기 위해서 돈을 구하러 나갔을 뿐입니다. 행여나 다른 사람이 그 보물을 발견하고 사려고 할 줄 알고 초조하고 떨리는 가슴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사람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당신이 만일 중고차를 구입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대개 중고자 가게에 가면 우리는 이런 말을 듣습니다: “아직 조금 밖에 사용하지 않았고, 고장 한 번 난 적도 없습니다. 정말 멋진 차이니 한 바퀴 시험 운전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 사람 말을 듣고 그 차를 둘러봅니다. 정말 고장 난 경력이 없는지, 타이어를 차보기도 하고, 스페어타이어는 제대로 있는지 트렁크를 열어봅니다. 그런데 스페어타이어를 보는 중에 타이어 밑에 고무줄로 묶여진 꾸러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호기심에 무엇인가 하고 열어보니 엄청난 양의 현금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나라면 이 경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중고차 판매인에게 가서, “여기 차 안에 돈 뭉치가 들어있군요. 이 차를 판 사람이 돈을 여기 둔 줄도 모르고 팔아버린 것이 분명합니다. 이 돈을 원 주인에게 돌려주어야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돈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그 차를 사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처럼 말입니다.
이 사람이 정직했든 그렇지 않든 우리가 최소한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사람은 적어도 한 가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보물을 보았고, 그 가치를 알았고,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싶어 했으며, 그래서 그 밭의 가격이 얼마인지 상관하지 않고, 그 밭을 사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람이 그가 한 일에 대해서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어느 누구도 그가 밭을 사는 일을 가로막을 수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한 지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예 아무런 목표도 없거나, 아니면 늘 셀 수 없이 많은 목표가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본인은 후자의 경우에 속합니다. 나는 교수로서 아주 성공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목회자로서도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교수도 하면서 목사도 하느냐고 하면서 경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대접을 받을 때마다 실은 가슴이 뜨끔해집니다. 두 가지 중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즉 한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이 사람처럼 비윤리적인 행동을 해도 눈감아 주어야합니까? 즉 정당한 목표를 위해서 방법이나 수단이 어떠하든 상관없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 비유에 그보다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업이나 심지어 신앙의 영역에서조차 소위 “성공신학”이 만연해 있습니다. 그것은 이것입니다: “하면 된다. 가서 하십시오”(You can do it. Just do it!). 이것은 ‘나이키’ 운동화 광고의 표어이기도 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소위 “적극적 사고방식” 역시 이와 같은 정신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나라 프로 야구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팀은 모두 아홉입니다. 이들 팀에 속한 선수는 모두 한 결 같이 감독이나 코치로부터 이와 같은 독려를 들어가면서 연습이나 시합에 임합니다. 그러나 막상 리그가 끝나고 나면 우승하는 팀은 단 하나 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패자인 셈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모두는 패자가 아닙니까!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돈을 모아도 그 밭의 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처음부터 그 보화를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산삼을 캐러 산을 헤매는 사람들이 많지만 모두들 “심 봤다”고 외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아예 그 밭이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평생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비유의 의미가 성공 추구 일변도의 소위 성공신학의 가르침보다 훨씬 더 깊은 듯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비유에서 초점을 잘못 맞추어 온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심인물은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보화를 땅에 묻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보화를 땅 속에 묻은 사람은 중고차를 팔려고 내놓은 사람처럼 실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 보화가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성경> 본문을 살펴보기로 하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보물을 찾는 사람과 같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밭에 숨겨져 있다가 누군가가 발견한 보화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초점은 보화와 그것을 감춘 사람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화를 처음 땅에 묻고서는 나무 뒤에 숨어서 언제, 누가 그것을 찾는지를 망원경으로 애타게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을 생생하게 그려보아야 합니다. 간혹 TV 예능 프로에서 “보물찾기”하는 등장인물들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 모습을 연상해보면 이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밭의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역시, “야, 저기 한 여자가 가까이 오고 있구나. 그래. 저 사람이 발견할 수 있겠구나. 야호! 드디어 보화를 찾았구나. 찾았어!라고 외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비유에서 말하는 보화는 그러나 완전히 다른 종류의 보화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보화가 있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발견하여 자기 것으로 주장하고 가져가 버리면 그 보화는 없어지고, 그 장소는 비게 됩니다. 그러나 이 보화는 가져가도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행인이 지나갈 때도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실로 사람들은 이천 년 이상 이 보화를 발견해 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밭으로 가서 우리에게 남겨진 보화를 발견할 차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보화를 발견할 때, “내가 이 보화를 갖는데 아무도 방해할 수 없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가지고 가서 기뻐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외친 환희의 절규와 같습니다: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9상).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 보물을 찾았다고 상상해 봅시다. 나는 모든 것들, 모든 재산을 모아서 하나의 수표로 만듭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가서 그 밭을 사야지.” 그리고 주인에게 가서 “제가 밭을 사겠습니다. 나는 그 밭을 원합니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이 여기 있습니다. 여기 그 밭 값으로 수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그분은 내 말을 무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야, 나는 너의 수표를 원치 않아. 나는 네 돈이 필요 없어.” 나는 실망하여 주저 않습니다. 너무나 그 밭을 원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계산대에 앉아있던 그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지만 너에게 좋은 소식이 있단다. 정말로 그 밭은 이제 네 것이야. 내가 네 돈과 수표가 필요하지 않는 이유는 누군가 그 값을 이미 지불했기 때문이지. 그렇습니다. 그 값은 이미 지불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군가 지불한 밭의 값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