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제15과
제 15과: 슴리의 희생자들
김태정 목사여호수아 12:1-24약 19분 분량
승리의 희생자들
(12:1-24)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1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 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 (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7절)
누구에게나 싫어하는 과목이 있기 마련입니다. 필자는 수학과 과학 그리고 지리를 가장 싫어했습니다. 수학이나 과학을 싫어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가 있겠으나, 왜 지리과목을 싫어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외워야 할 지명이나 인명 등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것도 한 번도 가본적도 없는 지역의 문화나 기후 풍토 등에 대해서 교실에서 단순히 책을 통해서 배워야 했으니 무슨 흥미와 유익이 있었겠습니까?
이 점은 <성경>을 읽을 때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 숫자나 가계나 족보 그리고 지명 등이 등장하는 본문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따분함과 지루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본문은 구성상 아무런 극적 요소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현대 독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역의 경우 그들은 더 이상 오늘날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그 위치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라 더욱 그러합니다. 모르긴 해도 특별히 성서 고고학이나 역사학에 관심을 가진 학자가 아니라면 이런 본문을 만날 때마다 피하고 싶은 심정은 비단 필자 뿐만은 아닐 것이라 여겨집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본문을 설교 본문으로 삼고 싶은 설교자는 더더욱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호수아서> 12장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무수히도 많은 지명과 인명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자의 관심사는 이러한 지명이나 인명의 목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본문이 책의 제 1부의 결론으로 삼고 있는 의도를 파악하는 것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본문의 내용에 가장 충실한 가나안 땅의 지도를 본 장의 마지막에 첨부하였습니다(참고서적 2에서 취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염두에 둘 수 있는 일련의 질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책의 제 1부의 주제는 무엇인가?”; “본문은 그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하고 있는가? 즉 본문의 문학적이고도 신학적인 특징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는가?”
문학과 역사
본문에 이르러 여호수아서 제 1부는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제 1부의 주제가 ‘땅의 정복’ 내지는 ‘약속의 획득’ 이었던 만큼, 그 사실을 본문의 처음과 마지막 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1절)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도합 삼십 일 왕이었더라(24절) 24절에서 전쟁의 희생자들이 모두 31명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이야기의 한 단위를 마무리하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구조를 보다 세분해 보면 다시 두 개의 작은 단락으로 나누어짐을 알 수 있는데, 1절과 7절에서 각각 유사한 서론에 해당하는 언급으로 단락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개의 단락은 내용 면에 있어 일종의 유사 병행의 관계로 연결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두 단락은 닮은 유사성뿐만 아니라, 뚜렷한 차이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각 단락은 첫 구절에서 강조하는 바가 다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1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 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7절)
바로 이러한 차이로 인해서 본문 전체의 이중적인 기능 즉 회고와 전망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화자는 첫 단락이 강조하는 바가 정복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두 번째 <여호수아서> 제 2부의 주제인 ‘그 땅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본문은 형식상으로는 병행반복의 기법을 따르면서, 내용상으로는 상이한 두 개의 단락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각 단락이 강조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물론 두 번째 단락은 첫 번째 단락에서 등장하고 있는 지명이나 인명을 그대로 단순 복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첫 단락에서 다루고 있는 지역은 ‘모세’의 지휘 하에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요단’강 동편으로서, 단지 두 명의 왕과 그들이 통치하던 지역을 비교적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 반면 두 번째 단락은 ‘여호수아’의 지휘 하에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요단’ 서편에 관한 이야기로서, 화자는 이곳에서 그 땅 전체를 먼저 개괄한 다음(8절), 기자는 요단 서편 땅을 다음과 같이 개괄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산지와 평지와 아라바와 경사지와 광야와 남방”(8절).
각 지역의 왕들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도합 31명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목록 또한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다루면서도 왜 이처럼 차이가 있는 것일까? 학자들은 화자가 아마 두 개의 다른 전승을 참조하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 가지 가능한 설명으로 첫 번째 단락에 소개한 내용은 <신명기> 1-3장을 참고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된 관심은 ‘요단’ 서편 지역의 왕들의 목록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역시 그 정확한 출처를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이들 목록의 전승과 관련하여 대략 세 가지 정도의 학설이 알려져 있습니다. Butler, T. C. 134쪽(참고도서 1).
첫째는, 10-24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목록은 ‘솔로몬’ 왕 당시 존재했던 요새(要塞)들을 대표하는 것이며, 9절의 내용은 단순히 <여호수아> 6-8장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두 번째는, 이 모든 이름들이 <민수기>나 <여호수아서>에서 다루고 있는 초기 ‘가나안’ 정복 이야기 속에 보존되어있던(당시 기자에게는 알려져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내용일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세 번째로, 아주 오래된 전승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 단락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여호수아서> 1-11장의 내용과 불일치하고 있으며, 이 지역에 대한 지리적 묘사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정확하고 상세하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9절은 이 책의 6-8장의 이야기를 요약하고 있으며, 10-12절은 10:3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는 여리고 왕이요 하나는 벧엘 곁의 아이 왕이요(9절)
하나는 예루살렘 왕이요 하나는 헤브론 왕이요 하나는 야르뭇 왕이요, 하나는 라기스 왕이요, 하나는 에글론 왕이요 하나는 게셀 왕이요(10-12절)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가로되(수 10:3)
일부 학자들은 10장에 소개하고 있는 이름들은 12장에 근거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나, 확실치는 않습니다. 오히려 화자는 12장을 기록함에 있어 이전의 전승을 참고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볼 수 있는데, 1-9장의 기록 방식이 이런 입장을 지지해 주는 듯합니다.
12절에 보면 ‘에글론’ 다음으로 ‘게셀’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 역시 10:33에 의존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에 게셀 왕 호람이 라기스를 도우려고 올라오므로 여호수아가 그와 그 백성을 쳐서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라기스에서 에글론으로 나아가서 대진하고 싸워(10:33-34). ‘게셀’이 ‘라기스’와 ‘에글론’에 이어 멸망을 당했다고 이 구절이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드빌’이 13절에 등장하고 있는데 10:36-38에서 다루고 있는 순서와 흡사합니다. 이런 저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12:14-24에서 제공하고 있는 정보들은 <여호수아서> 외의 전승에 의존한 것처럼 보입니다.
신학과 신앙
1. 요단 동편 이야기(1-6절)
화자는 ‘요단’ 동편을 언급하면서 단지 두 명의 왕(‘시혼’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그들이 통치하던 지역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우선 이스라엘이 정복하여 취한 ‘요단’ 동편의 북쪽 한계를 ‘헬몬’ 산으로, 남쪽 한계를 ‘아르논’ 골짜기로 규정한 다음, 그 두 지역 사이에 두 왕국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수 12:1). 신명기에서도 이와 유사한 표제어 기능을 하는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 1:1; 4:44; 28:69.
당시 ‘팔레스타인’의 지도를 보면, 이 두 지역을 경계로 그 사이에 네 개의 큰 강이 동서로 흐르고 있는데 남쪽으로부터 북쪽으로 이르기까지 차례로 ‘예렛’ 강, ‘아르논’ 강, ‘얍복’ 강, 그리고 ‘야르묵’ 강이 그들입니다. 그리고 이들 강을 경계로 하여 ‘에돔’, ‘모압’, ‘암몬’, ‘길르앗’, 그리고 ‘아람’ 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시혼’이 통치하는 ‘아모리’ 왕국은 ‘헤스본’을 중심으로(2절), 동쪽으로는 ‘얍복’ 강 하류를 경계로 ‘암몬’족과 대치하며(2절하), 남과 북의 한계는 각각 ‘아르논’ 강과(2절) ‘얍복’ 강(내지는 ‘긴네롯’ 바다 즉 오늘의 갈릴리 호수)까지 이르고 있었습니다(3절): 시혼 왕국의 지역적 경계에 대해서 2-3절에서 여러 각도에서 설명하고 있으나 정확치는 않습니다. 보다 상세한 설명을 위해서는 다음 두 서적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참고 도서 1과 2).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라 그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지경 얍복강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 긴네롯 바다까지며 또 동방 아라바의 바다 곧 염해의 벧여시못으로 통한 길까지와 남편으로 비스가 산록까지며(2-3절)
이스라엘이 이 왕국을 취했다는 이야기는 <민수기>에 처음 등장하고 있고(민 21:21-30), <신명기>에서 다시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신 1:4; 2:24-37; 29:7-8).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에서 이 왕국을 궤멸했다는 소식은 근처 ‘요단’ 서편에 살고 있던 ‘기브온’ 족속들을 놀라게 했을 것이며(수 2:10; 9:10), 이후 이어지는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는 초석이 되었을 것입니다.
‘시혼’ 왕이 다스리던 지역에 대해서 비교적 길고 상세하게 설명한 것과는 달리, ‘바산’ 왕 ‘옥’에 대해서는 간단히 처리하고 있습니다. ‘바산’ 왕국은 ‘시혼’ 왕국에 비해 ‘야르묵’ 강 이북에 소재하고 있었는데, 북으로는 ‘헬몬’ 산까지 그 경계가 이르고 있었고(5절상), 남쪽 경계는 2절에서 그대로 취하여 ‘길르앗’의 북쪽 절반으로 ‘시혼’ 왕국과 그 경계를 삼고 있었습니다(5절하). ‘길르앗’은 요단 동편의 ‘얍복’ 강 남북 지역을 지칭하는 다소 애매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동쪽 경계는 ‘살르가’로서 아마도 오늘날 ‘살카드’로 불리는 방어기지가 있는 곳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옥’을 ‘르바임’의 남은 족속이라고 부르고 있는데(4절), 이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었으며(창 14:5; 15:20), ‘바산’ 왕국도 이들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신 3:13; 수 17:15). 전승에 의하면 여러 다른 족속들이 ‘르바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신 2:11, 20),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족속이 ‘옥’이었던 것 같습니다(신 3:11; 수 13:12). ‘아스다롯’은 이 왕국의 가장 큰 도시였던 것이며, 갈릴리 바다 동쪽 약 30 킬로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약의 여러 곳에서 이 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창14:5; 신1:4; 수 9:10; 13:12, 31; 대상 6:56).
‘바산’ 지역은 전체적으로 땅이 비옥하고(암 4:1), 산과 숲이 많았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사 2:13; 33:9). 그래서인지 이 지역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이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윗 왕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복이 가능했던 곳입니다(삼상 27:8; 삼하 10:6-14). 5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술’ 사람과 ‘마아가’ 사람이 바로 그들로서 이들은 이스라엘과 함께 상당 기간 동안 그곳에서 내쫒기지 않고 살았습니다(13:2, 13). 다윗은 후에 ‘그술’ 왕의 딸을 ‘압살롬’의 아내로 맞아들이기도 했으며(삼하 3:3),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킨 후 이곳으로 도망하기도 했습니다(삼하 13:37-15:8).
2. 요단 서편 이야기(7-24절)
두 번째 단락에 이르러 화자의 서술 방식이 약간 달라지고 있습니다. 전반부에서는 단지 두 사람의 왕에 대해서만 언급하면서 그들이 다스리던 영토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던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모든 지역과 그곳의 왕들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록에 소개하고 있는 순서는 대략 그동안의 정복 이야기 순서를 따르고 있습니다만(6-11장), 새로운 이름도 간혹 등장하기도 합니다.
우선 ‘여리고’와 ‘아이’의 왕을 가장 먼저 소개하면서, ‘아이’ 성 곁에 ‘벧엘’이 있었다고 언급함으로써 이 지역 역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9절). 이어서 ‘예루살렘’과 함께 남부 동맹을 결성했던(10:3, 23) 다섯 도시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헤브론’, ‘야르뭇’, ‘라기스’, ‘에글론’(10-12절). 단지 이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게셀’ 왕은 ‘라기스’를 도와 이스라엘에 대항했다고 앞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10:33). ‘드빌’(13절) 역시 다섯 도시 연맹에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이 또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남방 정벌 시에 함께 소탕한 지역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10:38).
이어서 등장하는 세 이름 ‘게델’(13절) 및 ‘호르마’와 ‘아랏’(14절)은 앞의 이야기에서는 없었던 이름들입니다. 혹자는 ‘게델’이 ‘게셀’에 인접한 지역으로서 필경(筆經) 상의 오류일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만 그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호르마’는 이스라엘의 영욕이 어린 곳으로서 승리와 패배를 함께 경험했던 곳이기도 합니다(민 14:45; 신 1:44; 민 21:3). ‘호르마’는 유다 남방에 위치한 곳으로서(수 15:30) 나중에 ‘시므온’ 지파에 속하게 됩니다(19:4). <사사기>는 ‘유다’와 ‘시므온’이 힘을 합하여 이 지역을 점령했다고 전합니다(삿 1:17). 후에 이곳에서 ‘다윗’은 왕으로서 추대받기도 합니다(삼상 33:30). ‘아랏’은 항상 ‘호르마’와 함께 등장하고 있는데(민 21:1-3) ‘겐’ 족이 이곳에서 정착하여 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삿 1:16).
‘아둘만’(15절)은 유다 남쪽의 한 도시로서(5:35; 느 11:30) <미가서>에서 멸망의 운명을 받은 한 도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믹 1:15). 이곳 근처 한 동굴에서 ‘다윗’이 숨어 지내기도 했으며(삼상 22:1; 삼하 23:13), 그보다 더 오래는 <야곱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창 38). ‘립나’와 ‘막게다’(15절)는 남방 정벌 이야기(10:28-30) 때의 순서와는 반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답부아’(17절)는 두 지역의 이름으로서 한 곳은 ‘유다’ 땅 내에 있는 한 도시의 이름이고(15:34), 또 한 곳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경계에 있었던 도시 이름이기도 합니다(17:7-8; 1:8). 이곳에서는 후자를 일컫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헤벨’은(17절) ‘므낫세’ 지파 중의 한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서(민 26:33; 27:1; 수 17:2-3), 열왕기에서 다시 이 지역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왕상 4:10).
‘아벡’(18절)은 ‘야르묵’ 강 입구 근처인 것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이와 함께 거명하고 있는 ‘랏사론’은 ‘샤론’ 평야일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다낙’(21절)은 ‘므낫세’ 지파의 요단 서쪽에 속하는 지역으로서(수 21:25), 이스라엘이 한참 후에나 정복한 곳입니다(삿 1:27). 그 유명한 ‘메기도’ 전투가 있었던 곳이며(삿 5:19), ‘솔로몬’ 재위 시에는 왕에게 식물을 바치기 위해서 제정했던 열두 관장 중의 하나였습니다(왕상 4:12). ‘게데스’(22절)는 여러 지역을 칭하는 이름으로서 본문에서 그 정확한 위치를 가려내는 것 또한 어렵습니다. ‘욕느암’(22절하)은 ‘스불론’ 경계에 위치해 있었으며(19:11) ‘레위’ 성읍 중의 하나였습니다(21:34). ‘돌’ 왕에 대한 표현, “돌의 높은 곳의 돌 왕”(23절)의 의미는 불분명합니다. 함께 소개하고 있는 ‘길갈’은 <여호수아>에서 여러 차례 등장할 정도로 중요한 지역입니다. 이 성읍은 ‘가나안’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길갈’의 ‘고임’ 왕은 <사사기> 4장에 등장하고 있는 ‘하로셋-하고임’ 이라는 이름의 일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디르사’는 중앙 고지의 여러 도시 중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되며(16-17절), 이 이름을 ‘므낫세’ 지파의 가계 중에서 한 여자의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민 26:33; 27:1; 36:11; 수 17:3). 후에 이곳은 북 왕국의 수도로 잠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왕상 14:17-16:23).
교훈 및 적용
지난 1992년 미국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 ‘부시’를 누르고 무명의 ‘알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을 당선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한 구호가 있습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Stupid, It's Economy)!” 당시 걸프전 승리로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던 ‘부시’가 경제 실정을 외면함으로써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는 수모를 당한 것입니다. 이 글의 일부는 장훈 교수님의 칼럼에서 그대로 취한 것입니다(조선일보, 2002년 3월 1일, 제 6면).
역사는 반복하는 것인지 그의 아들인 현직 ‘부시’ 대통령도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운명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들 부시 대통령의 최대의 실책은 “이라크 침공”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가 많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2007년도 대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각 당의 대선 후보는 TV 토론회에서 소위 “스마트 공약”이라 하여 한 결 같이 “문제는 경제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특정 후보는 자신이 경제 전문가임을 내세워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과연 한국의 작금의 문제가 경제적인 것입니까?
<여호수아서>의 화자 역시 오늘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모르긴 해도 그가 처한 상황은 한 민족이 두 개의 국가로 갈라져 적대국으로 마주하고 있었거나, 또는 두 나라 모두 외세에 의하며 멸망을 당하고 나라의 정체성마저 상실한 채 남의 땅 ‘바벨론’에서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던 상황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가 내리는 처방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그 역시 오늘날 각 정당 후보들처럼 “문제는 경제야!”하며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1. 요단 동편 이야기(1-6절)
요단 동편 정복은 ‘여호수아’가 아니라 ‘모세’의 지휘 아래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입니다. ‘모세’는 그 땅을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에게 이미 할당해 준 바 있습니다(신 3:12-13; 수 13:8-32). 따라서 화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도 다시 한 번 수고스럽게도 그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결국 첫 번째 단락의 문학적이고도 신학적인 기능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한 양 팀은 민족 통일을 염원하는 뜻에서 한반도를 그린 깃발을 들고 입장한 바 있습니다. 그 의도도 좋았고, 각국의 반응 또한 열렬했습니다. 평화와 화해의 대제전에 걸 맞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은 원래 남이 아니고 단일 민족이라는 사실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는데, 그 깃발에 독도가 빠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뒤에 항의도 하고 개탄도 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이 아니냐는 것이죠. 그렇잖아도 일본이 심심하면 자기 땅이라고 우겨대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그 땅을 빼버렸으니 참으로 경솔했고 한심한 일이었다는 것이겠지요. 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우리가 일본 영토인 독도를 강점하고 있다는 점을 국가의 공식 견해로 채택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헌법에도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의 분노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북통일이나 연합에 지대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점 화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의 최대의 관심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그 땅을 빼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는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누가 이스라엘인가? 그 나라 속에 누가 포함되어야 마땅한가? 열두 지파인가 아니면 요단 동편에 살게 될 두 지파 반을 뺀 나머지 지파들인가?”
대한민국 지도에 독도가 포함됨이 마땅합니까? 독도는 우리 땅입니까? 그렇다면 ‘요단’ 동편의 땅도 이스라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 역시 이스라엘입니다. 비록 그들이 ‘요단’을 사이에 두고 동과 서로 나누어 살고 있지만, 분명 그들은 한 분 하나님의 하나의 백성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 봅시다: “독도가 우리 땅인 것과 마찬가지로 ‘요단’ 동편은 이스라엘의 땅입니다. 북한의 주민이 우리와 동일한 한민족인 것처럼 요단 동편에 살고 있는 두 지파 반 역시 하나의 이스라엘 족속입니다.”
화자가 ‘가나안’ 땅을 이야기하면서 왜 ‘요단’ 동편도 포함시키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합니다. 바로 여기에 첫 번째 단락의 문학적이고 신학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따라서 1절은 문학적으로는 일종의 표제어와 같은 기능을 하면서 이야기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편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방 온 아라바를 점령하고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수 12:1)
화자는 말합니다: “독도가 대한민국의 땅인 것과 마찬가지로 ‘요단’ 동편도 이스라엘의 땅입니다. 북한의 주민이 동일한 한민족인 것처럼 ‘요단’ 동편에 살고 있는 두 지파 반 역시 하나의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하나님도 한 분이시오, 그 땅도 하나이며, 이스라엘도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공동체 여러분, 지금 우리 앞에는 정복하고 차지해야 할 땅이 광활하게 널려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렇게 흩어져 살아도 괜찮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말입니다. ‘요단’ 동편이 이스라엘의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 ‘모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고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 땅을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더라(6절)
2. 요단 서편 이야기(7-24절)
‘모세’를 통해서 그 땅의 동편을 주신 하나님께서, 나머지 서편 지역도 ‘여호수아’를 통해서 모두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이편 곧 서편 레바논 골짜기의 바알갓에서부터 세일로 올라가는 곳 할락 산까지에서 쳐서 멸한 왕들은 이러하니(그 땅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구별을 따라 그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니(7절)
수차례 언급하였듯이 이 선언은 1절과 6절에 병행하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즉 ‘모세’가 이스라엘을 지휘하여 ‘요단’ 동편의 땅을 정복했던 것처럼, ‘여호수아’ 역시 충실하게 그의 모범을 따라 ‘요단’ 서편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이스라엘의 지파를 따라 나누어주었다고 화자는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가장 모범적인 지도자로서 ‘모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가 정복한 서른 한 개의 지역과 그 왕들에 대한 긴 목록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따랐는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화자의 마지막 권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체 여러분,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와 함께 하는 신실한 믿음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땅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돌아갑시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신실한 지도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 한 사람을 지금 찾고 계십니다. 그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지금 당장 일어나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여호수아’의 모범을 보입시다!”
연습과 토의
1. 본문은 유난히도 인명과 지명이 많은 곳입니다. 본문이 <여호수아서> 제 1부의 결론이 되어야 할 당위성에 대해서 토의해 봅시다. 참고로, 이 책 제 1부의 주제는 “그 땅을 정복하라”입니다.
2. 본문은 ‘모세’와 ‘여호수아’를 동시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화자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3. 화자는 본문에서 ‘요단’ 동(東)과 서(西) 편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의도를 파악해 봅시다.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