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기적과 은사주의
김태정 목사요한복음 1:3약 6분 분량
마지막으로, 기적에 관한 논의 중에서 가장 어려운 주제를 다루어보아야겠습니다. 그 주제는 다음 질문으로 대변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기적을 행하시는가?”
이들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다시 한 번 기적의 정의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하나님께 금전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달라고 기도했더니 정확히 돈이 필요한 그 날에 우편배달부가 수표를 가져다 주는 것이 기적입니까? 오래 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에게 전화를 했는데, 마침 그 때가 그 친구에게 격려가 필요한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기적입니까? 방안에서 놀던 아기가 전기 콘센트에 손을 집어넣으려는 순간, 아기 엄마가 밖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방에 들어와 위험천만한 순간을 모면하는 것이 기적입니까?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장소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응답해 주시는 것을 기적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한가 입니다. 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런 일들을 기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우리는 앞에서 이와 유사한 경우를 통 털어 “섭리의 기적” (즉 등급 B의 기적)으로 부른다고 말한 바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예로 든 일들은 “섭리의 기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해야 더 적절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 특히 카톨릭 교회나 개신 교회 안에서 신비주의나 소위 은사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신비하거나 불가사의한 현상을 보게 되면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의 모든 기적들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계시면서 섭리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히 1:3), 동시에 세상과 인간사에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시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초대교회 시대 이후 지금까지 조금도 줄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분명히 구원은 언제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이며 기적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기적들을 오늘날에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에도 죽은 자들이 부활해서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누군가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하자면 지금도 ‘모세’나, ‘엘리야’나, 다른 선지자들이나,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행한 것과 같은 기적을 행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시대 이후 성령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들 특별한 하나님의 도구들에게 주신 것과 같은 은사를 주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기적을 행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더 중요하게도 그 시대가 언제인지 알아봄으로써, 우리의 주장을 더욱 확고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기적을 일으킨 당사자는 크게 네 무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성부 하나님; (2) ‘모세’, ‘엘리야’, ‘엘리사’ 등과 같은 선지자; (3) 예수님; (4) 사도들. 그런데 천지창조의 경우를 제외하고 나면 <성경>의 기적들은 대부분 하나님께서 인간을 도구로 사용해서 간접적으로 행하신 것입니다. 그나마 이들 기적의 대부분은 <성경>의 역사에서 비교적 짧은 세 시기에 일어났으며, 그 기간도 모두 백 년 이상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이들 세 시기 중에서 특히 기적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시기를 주목해 보면, “출애굽”와 예수님과 사도 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는 다른 어떤 시대와도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적의 빈도가 잦았습니다. 사실상 ‘유대’ 땅에서 질병이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축사와 치유와 소생의 기적 등등, 그야말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시대였습니다. 왜 이들 세 시기에 그처럼 많은 기적들이 집중해 있었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이들 세 시기에 특별히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인간사에 개입하셨을까? 이유가 있고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 모든 기적은 “하나님 나라”와 <성경>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국가의 시작, 그리고 그리스도와 사도시대는 새로운 이스라엘 즉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입니다. ‘모세’나 예수님의 사도들은 이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한 기적은 그 나라의 엄위와 권위와 능력에 대한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 왕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도록 설득하고자 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기적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광야를 지나가는 여정에 늘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이 수여되는 동안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처음으로 ‘모세’에게 임했을 때, ‘모세’ 자신조차 두려워 떨 정도로 극적인 현상들이 일어났습니다: 불; 연기; 나팔소리; 땅의 진동(히 12:18-21). ‘엘리야’와 ‘엘리사’의 기적에 대해서도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왕상 18:39-40)
특히 예수님의 기적들은 모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자 하나님들의 아들임을 확증해 주는 표적이라고 <요한복음>은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성경>의 기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를 <오경>과 떼어놓을 수 없고, <신약>의 대부분은 사도들이 쓴 것이었습니다. <구약>과 <신약>이 완결되었을 때, 하나님의 계시는 완성되었습니다(참조. 히 1:1-2). 많은 표적과 기사(또는 이적)를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책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말씀 즉 <성경>이 참되다는 것을 증거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대도 아직도 기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뒷받침해야 할 지속적인 필요가 있을까요? 아직도 어떤 이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믿음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람들의 수요(需要)에 따라 기적을 행하십니까? 오늘날 표적, 기사, 치유, 축사 등으로 선전하고 있는 현상들을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행한 기적과 조금이라도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성경>의 어떤 구절도 사도 시대 이후에도 기적이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기적적인 성령의 역사를 구하라고 권면하지도 않습니다. <신약>의 모든 <서신서>를 통틀어 성령과 관련한 계명은 다음 다섯 가지 뿐입니다:
성령으로 행할지니(갈 5:25)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 4:30)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살전 5:19)
성령으로 기도하며(유 20)
이중 어떤 것도 성령을 기적과 연계시키고 있지 않으며, <신약>에 기적을 구하라는 계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성경>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우리가 소망을 원한다면, 우리가 닻을 원한다면, 우리가 자신을 생명으로 인도할 것을 원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성경>입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우리는 기적을 추구하거나 행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교회에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진 대변인이나 사도를 두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순종할 의무와 권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고후 5:7).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말씀대로, 정말 신령한 자라면, 정말 영성신학을 전공했다고 주장하는 자라면, 기적의 능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죄”에 대한 깊은 자각을 가진 자라야 할 것입니다.
원문을 살려 옮겼고, 오타와 연락처만 정리했습니다.